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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격호 총괄회장 창업서 퇴진까지

입력 : 2015-07-28 21:59:25 수정 : 2015-07-29 06: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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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일로 번 5만엔으로 1946년 공장 세워
장남 편 들려다 2선 물러나… ‘파란만장’
28일 오후 롯데그룹 신격호 총괄회장이 휠체어를 타고 서울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신 총괄회장은 이날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에 해임돼 사실상 경영 2선으로 물러나게 됐다.
연합뉴스
롯데그룹 창업자인 신격호 총괄회장이 28일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에서 해임되고, 명예회장으로 추대됐다. 한국 롯데그룹에 이어 일본 롯데 경영까지 손을 떼면서 67년 만에 경영 2선으로 물러났다. 93세 고령의 건강 상태, 그룹 내 권력구도 변화 등을 고려할 때 그가 더 이상 경영에 관여하기는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1922년 경남 울산 삼남면에서 5남5녀의 맏이로 태어난 신 총괄회장은 1941년 만 19세의 나이에 사촌형이 마련해준 여비를 갖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학비를 벌기 위해 신문과 우유 배달을 하던 중 일본인 사업가 하나미쓰에게서 5만엔을 빌려주겠다는 제안을 받는다. 그는 이 돈으로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44년 도쿄 근교에 윤활유 공장을 세웠으나 미군의 폭격으로 불타 버렸다. 남은 건 5만엔의 빚뿐이었다. 해방이 되자 친구들의 귀국 권유를 뿌리치고 다시 우유 배달과 공사장 막일로 사업자금을 마련했다. 이렇게 해서 1946년 도쿄에 ‘히카리특수화학연구소’라는 공장을 짓고 비누 크림 등을 만들어 팔았다. 1년 반 만에 빚을 다 갚고 1948년 제과회사 롯데를 설립했다. 신 총괄회장은 이어 미군이 주둔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된 껌 사업에서 성공을 거둔다. 제법 큰돈을 만지게 된 그는 자본금 100만엔, 종업원 10명의 법인사업체를 만들고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여주인공 이름인 ‘롯데’를 따 간판도 내걸었다.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전 세계 20개국에 74개 계열사를 거느린 롯데그룹의 첫 걸음이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이고 기발한 마케팅 기법으로 껌 사업에 성공한 그는 1961년 초콜릿 사업으로 눈을 돌린다. ‘제과업계의 중공업’으로 불릴 만큼 까다로운 초콜릿 제조를 위해 유럽에서 최고의 기술진과 시설을 들여와 다시 사업가로서의 수완을 발휘한다. 이후 캔디, 비스킷, 아이스크림, 청량음료 등으로 영역을 넓히면서 종합 식품 메이커로 부상했다. 그는 한·일 수교로 투자의 길이 열리자 1967년 국내에 롯데제과를 설립해 모국에 대한 투자를 시작했다. 1974년 칠성한미음료를 인수해 롯데칠성음료를, 1977년 삼강산업을 인수해 롯데삼강을 각각 세우면서 국내 최대 식품기업의 면모를 갖췄다. 1973년에는 롯데호텔을 열어 관광산업 현대화의 기반을 마련했고, 1979년에는 롯데쇼핑을 설립해 유통 현대화의 토대를 구축했다. 식품·관광·건설·화학 등 진용을 갖춘 롯데그룹은 1980년대 고속 성장기를 거친다. 1990년대는 편의점(코리아세븐), 정보기술(롯데정보통신), 할인점(롯데마트), 영화(롯데시네마)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롯데를 재계 5위 그룹의 반열에 올려놨다.

김기환 유통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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