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표현 폭 좁은 악기… 기승전결 구성 힘들었어요"

입력 : 2015-07-26 20:22:08 수정 : 2015-07-26 20:22:08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첫 하프시코드 연주 피아니스트 손열음
피아니스트 손열음(29)의 손끝에서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흘러나왔다. 산뜻하고 청초했다. 기름기·조미료가 쏙 빠진 소리에 귀가 가벼워졌다. 소박한 아름다움에 마음마저 편해지게 만든 이 연주는 피아노가 아닌 하프시코드로 이뤄졌다. 손열음은 24일 강원 평창군에서 열린 대관령국제음악제에서 하프시코드에 손을 얹었다. 공식 연주회에서 그가 하프시코드를 친 건 이날이 처음이다. 다음날 평창군 알펜시아리조트에서 만난 손열음은 “아직도 끝났다는 게 실감이 안 난다”며 웃었다.

피아니스트 손열음은 “하프시코드는 피아노와 달라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소리의 매력이 풍부한 악기”라고 말했다.
대관령국제음악제 제공

“며칠 동안 이 연주에 너무 집중했어요. 규모가 작은 악기라 훨씬 예민해지고 힘들었어요. 어제 아침에 일어나 ‘내가 오늘 하프시코드를 친단 말이지’ 생각했다니까요. 설레기도 하고 걱정됐죠.”

더 크고 화려한 무대 경험이 많은 그가 이토록 신경 쓴 이유가 뭘까. 하프시코드는 피아노의 먼 조상쯤 되는 악기다. 대충 보면 생김새도 비슷하다. 비슷한 건반악기이니 거저 연주할 수 있을 법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하프시코드는 피아노와 달리 셈여림, 비브라토가 안 된다. 페달도 없다. 그만큼 연주자에게 허용된 표현의 폭이 좁다. 피아노의 농후함, 격정, 강렬함은 표현하기 힘들다.

“하프시코드는 음악적으로 제가 만들 수 있는 게 정말 적어요. 소리나는 대로 따라가야 해요. 연주자가 많이 내려놓고 생긴 대로 쳐야 해요. 저는 음악적으로 기승전결을 만드는 걸 중요시하는데 클라이맥스도 못 만드니 그걸 어떻게 풀지가 제일 힘들었어요.”

하프시코드는 까다롭고 예민하다. 그는 “한번 조율하고 조명을 켜면 다시 조율해야 할 정도로 예민하고 온습도에도 민감하다”고 설명했다. 공연 당일에도 악기 상태를 걱정해야 했다. 그럼에도 하프시코드는 매력이 풍부한 악기였다.

“피아노보다 내밀해요. 에너지를 발산하는 게 아니라 조용해서 실내연주에 딱 맞죠. 연주하기에 따라 다섯 가지 소리를 낼 수 있어 재미도 있어요. 또 바로크음악 시대에는 장식적인 요소가 중요해 악보에 없는 장식음을 넣어야 했어요. 이걸 피아노로 하면 무겁게 들려요. 하프시코드로 치니 훨씬 가볍고 산뜻하더라고요.”

그가 하프시코드와 마주한 건 순전히 골드베르크 변주곡 때문이었다. 10년 전쯤 그는 이 곡을 하프시코드로 친 칼 리히터 음반을 듣고 크게 놀랐다. 그때부터 꿈을 꿨다. “피아노로는 이 곡이 사유적이고 깊게 들어가는 곡인데 하프시코드로는 화려하고 드라마틱해서 그런 식의 접근을 하고 싶었다”고 한다.

“피아노로 바흐의 골드베르크를 연주하는 건 재창조에 가까워요. 하프시코드로는 바흐의 의도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것 같아요.”

이 곡은 불면증에 시달리던 카이저링크 백작이 바흐에게 작곡을 의뢰했다는 통설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음악을 듣다 보면 과연 불면증에 도움이 될지 갸우뚱하게 된다. 손열음은 “불면증설이 견고했는데 요새는 안 믿는 추세 같다”며 “골드베르크가 당시 11살이었다고 하니 낭설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24일 강원 평창군 알펜시아리조트 콘서트홀에서 하프시코드로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하고 있다.
대관령국제음악제 제공

“이 곡은 뒤로 갈수록 복잡해져요. 의도적으로 그렇게 작곡한 게 보여요. 마지막 바리에이션 30이 독일 민요를 패러디한 곡이에요. 바리에이션 29까지 열심히 힘들게 듣다가 30에 이르면 ‘이렇게 농담 같은 거였어’ 하고 웃게 되는 결말이래요. 갑자기 ‘학교종이 땡땡땡’이 나오는 식인 거죠. 골드베르크가 요새 생각하듯 철학적이라기보다 당시에는 화려한 음악으로 쓴 것 같아요.”

그는 언젠가 이 곡을 음반으로 낼 생각이다. 구체적 시기를 묻자 한참을 가늠하다 “나이로 치면 40살쯤”이라고 답한 그는 “기술적으로 어려운 곡이라 활발하게 근육을 쓸 수 있을 때 하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하프시코드를 치는 모습을 보는 건 당분간 기대하기 힘들 듯하다.

“하프시코드로 다른 곡을 치고 싶지는 않아요. 원래 1부에 하프시코드, 2부에 피아노로 골드베르크를 연주하고 싶었어요. 이번에 해보니 불가능한 꿈이더라고요. 엄청 어렵게 하프시코드에 몸을 적응시켰는데 2부에 피아노를 치기는 힘들겠더라고요. 그래도 언젠가 해보고 싶어요.”

평창=송은아 기자 sea@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아일릿 이로하 '매력적인 미소'
  • 아일릿 민주 '귀여운 토끼상'
  • 임수향 '시크한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