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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칼럼] 우리 마음 속의 피라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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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7-23 21:11:02 수정 : 2015-07-23 21: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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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지 물 다 빼내고 진흙 바닥 훑어도
‘식인 물고기’를 우리 산천에 풀어놓는
반사회 풍조는 못 잡아 이놈을 대체 어찌하나
19만㎡ 저수지 물을 빼내고 진흙 바닥까지 훑었다. 인근 섬강 유역엔 잠수부를 투입했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환경 당국이 그렇게 애를 썼지만 안심은 잘 안 되니 탈이다. 얼마 전 강원도 횡성 마옥저수지에서 3마리가 잡혀 대소동을 빚은 남미산 육식어종 피라니아 얘기다.

안타깝게도 ‘식인 물고기’는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멀리 돌아볼 것도 없다. 서울 청계천 일대에서도 쉽게 그리고 싸게(심지어 ‘마리당 7000원’에) 살 수 있다고 한다. 인터넷 등의 구입 통로도 넓게 열려 있다. 제2, 제3의 소동이 없으리라고 어찌 장담하겠나. 이런 변이 없다. 왜 지구 반대편의 육식어종 때문에 속을 끓이고 비용을 치러야 하는 것일까.

자연 생태계가 극히 취약하다는 사실을 인간이 깨우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비싼 교습비도 내야 했다. 지구촌에서 야생 낙타가 가장 많은 나라는 어디일까. 호주다. 내륙 황무지 개척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도입했다가 졸지에 낙타의 나라가 됐다. 야생고양이도 있다. 약 200년 전 호주에 들어간 고양이와 여우 때문에 토종동물 21%가 멸종 위기에 몰렸다고 한다. 정부는 급기야 최근 야생고양이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토끼 문제는 더 심각하다. 호주는 19세기 여우 사냥을 위해 여우 먹잇감으로 토끼를 도입했다가 토끼의 나라로 거듭났다. 1905년 추정 개체수는 5억마리였다. 호주 정부는 과잉 개체수를 줄이기 위해 총, 다이너마이트, 불도저를 동원했고 토끼 병균까지 퍼뜨렸다. 별무효과였다. 자연 생태계를 망쳐 놓으면 수습할 길이 없는 것이다.

하와이 사례도 유명하다. 하와이의 자연환경은 오늘날에도 훌륭하고 생물 다양성도 풍부하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흔히 볼 수 있는 동식물이 대부분 외래종인 것이다. 미국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생명의 미래’에서 “하와이에는 한때 1만여종에 달하는 동식물 원산종이 있었다”면서 ‘원시 하와이의 몰락’을 아쉬워했다. 무분별한 서식지 파괴와 외래종 도입이 그런 화를 불렀다.

대한민국도 큰 문제다. 저수지의 피라니아가 그렇게 웅변한다. 공포 영화에서나 볼 열대성 육식어종이 대체 왜 동네 저수지에서 헤엄치느냐는 말이다. 환경 당국은 누군가 관상어로 기르다가 풀어놓은 것으로 추정하는 모양이다. 말문이 막힌다. 제멋대로 기르다 제멋대로 버리면 그만인가.

물론 위안거리는 있다. 피라니아가 남아 있다 해도 살아남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위해 우려종’ 지정 등의 대책도 나왔다. 피라니아 위험 인식이 과장됐다는 지적도 있다. 어쩌면 저수지의 피라니아에 대한 걱정은 떨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황소개구리, 배스 등과는 다를 것이라 굳게 믿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 ‘우리 마음속의 피라니아’는 어찌할 것이냐는 문제다.

이승현 논설위원
저수지의 피라니아 배후에는 우리 마음속의 피라니아가 존재한다. 자기 잇속만 챙길 뿐 공공의 가치는 돌아보지도 않는 반사회적 풍조다. 어린 승객들을 침몰하는 선박에 방치한 세월호 선장 행태가 어디서 나왔겠는가. 국가안보야 어찌 되든 군 기밀을 해외에 팔아먹는 작태는 또 어디서 나왔겠는가.

어제 조간에는 ‘폐차 직전 버스 타고 수학여행 간 아이들’이란 제하의 기사가 게재됐다. 노후차량을 수학여행용 전세버스로 굴린 악덕업체·업자가 무더기로 적발됐다는 기사였다. 세월호에서도 교훈을 얻지 못한 이들이 허다하다는 뜻이다. 우리 마음속의 피라니아가 결코 만만한 놈이 아니라는 뜻도 된다. 그 귀결은 뻔하다. 이익의 사유화, 비용의 사회화다. 불안, 불신의 병이 도지는 것도 불가피하다.

최근 동료 교수들과 함께 ‘위험사회와 국가정책’을 낸 연세대 하연섭 교수는 대한민국 사회를 “규칙을 어겨야 이익을 보는 사회”라 규정했다. 우리 마음속의 피라니아를 통렬히 고발한 셈이다. 이 무형무색의 피라니아는 저수지에서 잡힌 3마리 피라니아와 달리 전국의 저수지 물을 백날 빼내고 바닥을 샅샅이 훑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정말 흉악하다. 대체 이놈을 어찌할 것인가.

이승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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