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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진의청심청담] 권력의 정치 아닌 축제의 정치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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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7-20 21:18:22 수정 : 2015-07-20 21: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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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위·권력에 매인 사회는 ‘네 탓’만
관계·소통 기반한 열린사회 만들길
한국정치는 극단적으로 당파적이고, 사사건건 대립으로 경색되어 있다. 마치 중증 고혈압 환자와 같다. 이는 모두 기존에 형성된 이데올로기나 사회적 자기 위치, 즉 명사적 자기 입장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위로는 대통령에서부터 아래로는 필부필부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스스로 규정한 자기 속에 갇혀 있는 셈이다.

법과 원칙을 준수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떠들고, 추상 같은 청문회를 실시하지만 사회 실상은 범법투성이이고, 원칙은 준수되지 않고, 혼탁하기 그지없는 위선사회다. 어쩌면 실상이 그 반대이기 때문에 청문회는 요란을 떨고 있는지도 모른다. 특히 국회의원들은 스스로를 정의한(正義漢)이라고 규정하고 스스로에게 속고 있는지도 모른다.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대는 정치가 아니라 축제 같은 정치가 그립다. 그렇게 되기에는 아직 우리의 민주주의 수준과 문화역량이 미흡하지만, 이제 여유와 유머 속에서 때로는 멋도 부릴 줄 아는 사회적 지도자들과 국민이 그립다. 모두 자신의 명사 속에서 빠져나와 동사 속에서 활기찬 삶을 누려야 할 것이다. 명사가 아닌 동사의 정치가 그립다. 명사의 정치는 기존에 정해진 지위와 권력에 매인 ‘권위의 정치’라면, 동사의 정치는 그것을 벗어나 관계와 소통을 추구하는 ‘축제의 정치’이다. 명사에 머물면 정치는 정지된 채 꽁꽁 얼어붙고, 동사가 되면 서로 왕래하고 소통하게 된다.

현재 한국정치는 모두 명사와 권위에 머물려하면서 꽁꽁 얼어붙어 한 치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고정된 사회는 죽은 사회이다. 정치인들이 그러하니 국민들은 얼어붙어 심하게는 모두 신경강박증에 걸려 있다. 얼어붙은 사회는 사회체계가 있어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 끝내 죽음을 부르게 된다. 이런 죽음의 사회, 귀신의 사회는 여야 정치인은 물론이고 국민 모두의 책임이다. 국민은 괜찮은데 정치만 수준미달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국민적 기만에 불과하다. 우리 모두는 스스로에게 속고 있다. 그래서 잘못된 일은 모두 ‘남의 탓’이다. 한때 우리 사회에 ‘내 탓이오’라는 캠페인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것도 없다. 모두 분노와 복수심과 욕심에 빠져 있다. 남의 잘못이나 다름에 대해서 조금의 아량이나 여유도 없이 어떻게 통일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인가. 국민 모두의 책임이라는 반성과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으면 통일은 고사하고 개인의 기쁨이나 행복도 낙관할 수 없다. 누구에겐가 선물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 한다.

누구의 책임이라고 따질수록 신경증은 심해지고 귀신은 더욱 준동하게 되어 있다. 분노와 복수심은 자멸과 함께 퇴락만 불러올 뿐이다. 세계에서 청소년 자살률이 최고인 것은 그 징표이다. 모두 각자의 입장에서 여유와 만족을 갖고 축제와 같은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힘든 노동만 있고 축제가 없는 사회라면 얼마나 슬픈가! 슬기로운 나라는 ‘축제 같은 노동’을 하고, 어리석은 나라는 ‘노동 같은 축제’를 한다고 한다. 축제 같은 노동을 하려면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삶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어디에서 일하든 주인의식이 있어야 하고, 이것이 문화시스템으로서 자리 잡아야 선진국이 된다. 우리 사회는 항상 남(선진국)을 기준으로 삼고, 남을 모델로 삼아 지금에 이르렀다. 진선미도 남의 기준이었다. 그래서 아름다움도 내면의 아름다움보다는 외면의 아름다움과 성형열풍에 빠져 있다. 이제 나의 기준을 마련할 때이다. 

박정진 객원논설위원·문화평론가
우리 사회는 선진국의 문턱에서 뒷걸음질치고 있다. 스스로 축제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욕망과 욕심의 노예가 되어 있는 어른들은 정신 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 문화의 세계화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주체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바로 세계화와 주체화의 경계에서 창조적인 삶이 개척될 것이다. 인간의 삶이 존재냐 관계냐, 존재냐 소통이냐를 두고 철학자들은 많은 고심을 해왔다. 그런데 요즘은 관계나 소통이 더 중요하다고 한다. 존재의 삶은 명사형의 삶이지만 관계나 소통은 동사형의 삶이다. 명사형의 삶은 정지상태의 삶이지만, 동사형의 삶은 움직이는 삶이다. 정지상태의 삶은 죽음의 삶이고, 동사형의 삶은 살아있는 삶이다. ‘삶’은 글자 그대로 ‘살아있음’을 말한다. 그런데 살아있는 삶을 살기는 쉽지 않다.

청와대는 물론이고, 여야 정치권에서도 공식적인 모임 이외에 비공식적인 모임을 자주 갖고 소통해야 한다. 비단 술자리만이 아니라 다과회나 가벼운 대화모임, 혹은 식사(식사도 작은 잔치이다)자리라도 자주 가지면서 소통에 골몰하여야 할 때이다.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하고 때로는 통사정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여야 우리 사회가 동맥경화증에서 벗어날 것 같다. 비공식적인 모임일수록 축제의 장소가 되기 쉽다.

한국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여성 대통령을 뽑아놓고는, 종래와는 사뭇 달라진 낯선 풍토에서 대화통로와 채널을 찾지 못해 숨통이 막혀 있다. 때로는 쉽게 해결할 과제나 안건도 어렵게 풀고 있는지 모른다. 명사와 권위의 정치가 아니라 동사와 축제의 정치가 그립다.

박정진 객원논설위원·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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