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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땅’ 그리스에서 聖을 보고,‘현실의 땅’ 터키에서 俗을 보다

입력 : 2015-07-18 10:00:00 수정 : 2015-07-18 1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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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기행 에세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임홍빈 옮김/마쓰무라 에이조 사진/문학사상사/1만4000원
비 내리는 그리스에서 불볕천지 터키까지/무라카미 하루키 지음/임홍빈 옮김/마쓰무라 에이조 사진/문학사상사/1만4000원

일본의 인기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여행을 즐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루키는 여행 이후 의미 있는 에세이 여러 권을 묶어냈는데 1990년대 중반 출간한 ‘먼 북소리’가 첫 작품이다. ‘먼 북소리’가 유럽에서 생활하면서 자기 생애를 관조한 작품이라면, 이번에 나온 ‘비 내리는 그리스에서 불볕천지 터키까지’는 완전한 여행 에세이다. 1986부터 수년간 그리스와 이탈리아, 터키를 여행한 소감을 밝힌 책이다. 하루키 기행 에세이의 백미라 해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하루키는 “나는 책에서 아토스에 관한 얘기를 읽은 후로 어떻게 해서든 꼭 한 번 터키에 와보고 싶었다. 그곳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실제 내 눈으로 보고 싶었다. 나는 터키에 이끌렸다. 왠지 모르게 터키의 공기의 질이 나를 인도한 것 같다”고 했다.
하루키는 지중해와 맞닿은 에게해부터 해발 2000m 험준한 산이 치솟은 아토스 반도를, 곳곳의 수도원에 묵어가며 걸었다. 그리스정교의 땅인 그리스에서 하루키는 현실세계 너머의 성스러움을 경험한다. 길은 끝없이 험하고 날씨는 험악하고 식사는 형편없다. 그럼에도 하루키는 수도원을 거치면서 유럽 문명의 원조를 경험한다. 세속적 쾌락과는 동떨어진 그리스정교의 수도사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성(聖)’에 대해 생각한다. 신들의 땅이라는 그리스에서 유럽인의 원형을 찾는다.

터키에서는 자동차가 아니면 갈 수 없는 길을 걸어서 동부 국경지대까지 갔다. 어딜 가나 군인으로 가득하다. 사진 한 장 마음대로 찍을 수 없다. 테러의 위험과 먼지와 양 떼가 가득한 그곳에서 하루키는 진실하고 깊은 인간 세상을 들여다본다. 

그리스에서 성을 추구했다면, 정반대로 공공연히 뇌물로 담배를 요구하고 호텔 직원조차 융단을 파는 데 혈안이 된 터키의 현실에서 ‘속(俗)’을 떠올린다. 하루키는 뚜렷한 ‘성과 속’의 대비와 거기서 자연스레 얻어지는 인생의 깨달음을 말하고 싶었다. 하루키는 “터키 말을 할 줄 알았다면 그들과 좀 더 여러 가지 얘기를 할 수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우리는 극히 단순한 터키 말과 영어로 아주 짧은 대화만을 나눌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담배 한 개비, 껌 하나로 그들과 어울릴 수 있었다”고 했다.

하루키는 기행문을 쓰는 이유에 대해 “소설 특히 장편소설만 계속 쓰다 보면, 정신적으로 산소 결핍 상태가 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다른 종류의 글쓰기를 통해 여기저기 닫혀 있는 창문을 열고 신선한 공기를 방 안으로 끌어들인다”고 했다.

임홍빈씨는 역자 후기에서 “험난한 기후와 거친 식사, 지친 몸 상태임에도 하루키는 이른바 순문학 작가로서는 지극히 보기 드문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로 성장하기까지 ‘장대한 피로’, 일종의 정신적 허탈감을 메우기 위해 기행문을 쓴다”고 밝혔다.

스물아홉 살 때인 19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군조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이래 36년간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하루키는 매년 노벨상 후보에 오르는 아시아 대표적 작가이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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