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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모 돌보는 개호자… 그들 삶의 독백

입력 : 2015-07-18 10:00:00 수정 : 2015-07-18 1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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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효도 해봐야지” 시작했지만
밀려오는 정신적 고통에 좌절도
日 자살원인 ‘개호 피로’ 증가세
야마무라 모토키 지음/이소담 옮김/코난북스/1만5000원
나홀로 부모를 떠안다/야마무라 모토키 지음/이소담 옮김/코난북스/1만5000원

“밤중에 몇 번이고 이름이 불려 잠에서 깬 구라이시는 어쩔 수 없이 어머니 방으로 갔다. ‘얼른 자.’ 이 말만 하고 구라이시는 방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또 몇 시간, 몇십 분 혹은 몇 분 후에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체력만큼은 자신 있던 구라이시였지만 이쯤 되니 지치기에 이르렀다. ‘이러다가 죽여 버릴지도 몰라.’ 구라이시가 자신에게 불안을 느끼기 시작한 게 바로 그 시점이었다.”

“집에서 개호를 한다는 것은 곧 ‘구분이 없는 생활’을 의미한다. 평범하게 일하는 사람이라면 대개 일과 가정(사생활)을 구분함으로써 머릿 속을 전환한다. 그러나 개호(介護)를 해야 하는 대상이 집에 있으면 일과 가정(개호/사생활)이라는 구조가 된다. 그러면 일을 마치고 돌아와도 더 피곤해지는 개호와 마주해야 한다.”

신간 ‘나홀로 부모를 떠안다’에 나오는 한 개호자의 독백이다. 개호는 간병과 수발을 포함해 돌보는 일을 가리키는 용어다. 특히 노부모를 돌보는 개호는 한국과 일본에서 사회적 부담으로 떠오른 지 오래다. 하지만 아직 뚜렷한 해결 방안은 없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이 책은 노부모를 봉양하는 개호자들의 삶을 밀착 취재한 고령사회 르포르타주다. 노인 삶을 다룬 책들은 많았지만 이들을 보살피는 개호자들에 관한 얘기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일본 지방자치단체가 세운 한 노인복지시설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이다.
전문 르포 작가인 야마무라 모토키는 100여명의 개호자들을 만나서 들은 고민과 고통을 책에 담아냈다. 저자는 “개호를 시작하는 시점에서는 대개 신중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그저 가볍게 단기간을 예상하고 마치 출근하는 기분으로 개호를 시작한다. ‘지금까지 부모님이 돌봐주셨으니까 나도 한 번 효도를 해봐야지’ 이런 마음도 개호를 부추긴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개호자들은 봉양 기간이 생각보다 길고 정신적인 고통도 상당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런 게 아니었는데 하는 후회가 덮친다”고 했다.

저자는 “노부모를 둔 사람이라면 누구나 언제인가 닥칠지 모를 일이기에 마음의 준비를 할 것, 그리고 언젠가 시설에 맡기기로 했다면 그 시기를 결정하는 기준선 즉 혼자 화장실에 못 가게 될 때, 식사 시중을 들어야 할 때 등을 미리 결정해두라”고 조언한다.

일본에서는 1980년대부터 개호와 관련한 사건들이 자주 발생한다. 일본 경찰청이 2013년 발표한 자살 통계에 따르면 ‘개호 및 간병의 피로’에 의해 자살한 사람이 268명인 것으로 나타나 있다. 문제는 이런 유형의 자살이 매년 늘어나는 추세라는 점이다.

현재 일본에서는 개호를 병원이나 시설이 아니라 가족 등 개인이 돌보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10여년 전부터 국가가 떠맡기보다는 가족이나 지인에게 개호를 맡기는 정책으로 바뀌고 있다. 저자는 책을 통해 일본 사회 개호의 재택화 흐름을 짚고 있다. 이 책은 소설처럼 얘기를 풀어나가 읽기에 지루하지 않다. 이 책이 우리나라에 던지는 시사점도 적지 않다. 유소년인구 100명당 65세 이상 인구를 나타내는 노령화지수는 서울 기준 1996년 21에서 2015년 6월 기준 100.4다. 65세 이상 인구가 유소년인구와 맞먹는 게 현실이다.

늙고 병든 부모를 직접 모실 것인가, 시설에 맡길 것인가. 개호와 개인 생활을 양립할 것인가, 한쪽을 포기할 것인가. 특히 혼자서 병든 부모를 돌봐야 하는 경우라면 문제는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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