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려오는 정신적 고통에 좌절도
日 자살원인 ‘개호 피로’ 증가세
야마무라 모토키 지음/이소담 옮김/코난북스/1만5000원 |
“밤중에 몇 번이고 이름이 불려 잠에서 깬 구라이시는 어쩔 수 없이 어머니 방으로 갔다. ‘얼른 자.’ 이 말만 하고 구라이시는 방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또 몇 시간, 몇십 분 혹은 몇 분 후에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체력만큼은 자신 있던 구라이시였지만 이쯤 되니 지치기에 이르렀다. ‘이러다가 죽여 버릴지도 몰라.’ 구라이시가 자신에게 불안을 느끼기 시작한 게 바로 그 시점이었다.”
“집에서 개호를 한다는 것은 곧 ‘구분이 없는 생활’을 의미한다. 평범하게 일하는 사람이라면 대개 일과 가정(사생활)을 구분함으로써 머릿 속을 전환한다. 그러나 개호(介護)를 해야 하는 대상이 집에 있으면 일과 가정(개호/사생활)이라는 구조가 된다. 그러면 일을 마치고 돌아와도 더 피곤해지는 개호와 마주해야 한다.”
신간 ‘나홀로 부모를 떠안다’에 나오는 한 개호자의 독백이다. 개호는 간병과 수발을 포함해 돌보는 일을 가리키는 용어다. 특히 노부모를 돌보는 개호는 한국과 일본에서 사회적 부담으로 떠오른 지 오래다. 하지만 아직 뚜렷한 해결 방안은 없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이 책은 노부모를 봉양하는 개호자들의 삶을 밀착 취재한 고령사회 르포르타주다. 노인 삶을 다룬 책들은 많았지만 이들을 보살피는 개호자들에 관한 얘기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일본 지방자치단체가 세운 한 노인복지시설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이다. |
저자는 “노부모를 둔 사람이라면 누구나 언제인가 닥칠지 모를 일이기에 마음의 준비를 할 것, 그리고 언젠가 시설에 맡기기로 했다면 그 시기를 결정하는 기준선 즉 혼자 화장실에 못 가게 될 때, 식사 시중을 들어야 할 때 등을 미리 결정해두라”고 조언한다.
일본에서는 1980년대부터 개호와 관련한 사건들이 자주 발생한다. 일본 경찰청이 2013년 발표한 자살 통계에 따르면 ‘개호 및 간병의 피로’에 의해 자살한 사람이 268명인 것으로 나타나 있다. 문제는 이런 유형의 자살이 매년 늘어나는 추세라는 점이다.
현재 일본에서는 개호를 병원이나 시설이 아니라 가족 등 개인이 돌보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10여년 전부터 국가가 떠맡기보다는 가족이나 지인에게 개호를 맡기는 정책으로 바뀌고 있다. 저자는 책을 통해 일본 사회 개호의 재택화 흐름을 짚고 있다. 이 책은 소설처럼 얘기를 풀어나가 읽기에 지루하지 않다. 이 책이 우리나라에 던지는 시사점도 적지 않다. 유소년인구 100명당 65세 이상 인구를 나타내는 노령화지수는 서울 기준 1996년 21에서 2015년 6월 기준 100.4다. 65세 이상 인구가 유소년인구와 맞먹는 게 현실이다.
늙고 병든 부모를 직접 모실 것인가, 시설에 맡길 것인가. 개호와 개인 생활을 양립할 것인가, 한쪽을 포기할 것인가. 특히 혼자서 병든 부모를 돌봐야 하는 경우라면 문제는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