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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애의 영화이야기] 67년 만의 발굴! '해연'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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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7-11 14:03:00 수정 : 2015-12-05 14: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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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한국영상자료원에서는 1948년작인 ‘해연’(일명 갈매기, 감독 이규환)의 발굴공개 시사회가 열렸다.   
옛 영화 발굴소식은 언제나 기쁘다. 지난 3월에도 발굴 소식을 다룬 적이 있지만, 이번 칼럼에서는 몇몇 수치들과 영화를 보면서 문득 들었던 짧은 생각 등과 함께 또 한 번 다뤄볼까 한다. 

사실 누군가는 일단 ‘발굴(發掘)’이라는 표현부터 어색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비록 땅에서 뭘 파낸 경우에만 사용하는 단어는 아닌데 말이다. 하지만 사라진 줄 알았던 영화를 67년 만에 찾아냈는데, 그저 ‘발견(發見)’했다고 표현하는 것으로는 뭔가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1910년대 후반부터 영화제작이 시작된 우리나라에서 1940년대 영화 한 편 찾았다고 해서 ‘발굴’이니 어쩌니, 호들갑이라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현재 영상자료원에서 보유하고 있는 영화 중 1940년대 영화는 당시 제작된 89편중 16편(보유율 18%)에 불과하다는 점은 눈여겨 볼 만하다. 

또한 ‘해연’ 이전의 영화 중 보존된 영화도 많지 않아, ‘해연’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영화 ‘Top20’에는 낄 수 있을 듯하다.

참여한 인력들도 화려하다. ‘해연’을 연출한 이규환 감독은 일제강점기 최대 히트작 중 하나인 1932년 ‘임자없는 나룻배’부터 1974년 ‘남사당’까지 20편의 영화를 연출했다. ‘해연’의 발굴 이전엔 ‘남사당’만이 유일하게 보존되고 있던 터였다. ‘해연’은 배우 조미령의 데뷔작이기도 하다.

1948년 11월21일 중앙극장에서 개봉된 ‘해연’은 흥행적으로 큰 히트작도, 그렇다고 실패작도 아니었다고 한다. 당시 기사들을 찾아보면 음악을 작곡한 정종길에 대한 호평도 발견되고, 개봉 전 문교부에서 우수한 영화로 지정했다는 소식도 발견된다. 

연간 2~3편의 한국영화가 제작되던 당시 해방 직후에 제작된 몇 안 되는 영화로서 주목하는 기사들도 보인다. 1950년대 기사 중에는 ‘해연’이 하와이로 수출됐다는 내용도 있었다. 이래저래 ‘해연’의 발굴은 충분히 호들갑 떨만하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얘기 나온 김에 ‘해연’ 이전과 이후 영화들의 한국영상자료원 보유율을 살펴보면, 1910년대 제작된 영화 7편과 1920년대 제작된 영화 60편은 현재 모두 남아있지 않다.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보유하고 있는 1930년대 영화들은 5편으로 당시 제작된 74편 중 6.8%에 해당된다. ‘해연’ 이후 시기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아서, 1950년대 제작된 309편 중 18.8%인 58편만이 남아있다.

물론 현재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해서 영영 사라진 영화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미보유 영화들 중 어딘가에서 누군가에 의해 소장되고 있는 영화들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해연’은 고베영화자료관(Kobe Planet Film Archive)에서 발굴, 수집된 영화로, 고베영화자료관은 이 영화를 2011년 고물상에서 발굴해 보관하고 있었다고 한다.

자료관과 고물상 모두 자신들의 자세한 발굴 경위는 공개하고 있지 않다고 하는데, 해방 후 영화이니 당시 한일 영화인들의 교류 속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필름을 개인이 소장하고 있던 것으로 추정해본다. 세대를 이어 소장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이고. 과연 그동안 ‘해연’ 필름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인지 정말 궁금해진다.

영화 '해연'(1948) 속 여배우 조미령



다행히도 심하게 손상되거나 삭제되지 않은 상태로 발굴되어 공개된 ‘해연’을 보면서 배우 조미령의 데뷔작에서의 모습과 서울시내 모습, 바닷가 풍경 등 낯선 볼거리를 즐겼고, 요즘 영화들에 비하면 조잡하게 느껴지지만 당시에는 높은 평가를 받았던 편집, 배경 음악 등에도 주의를 기울여 보았다. 그리고 슬픈 장면마저 웃기게 만드는 마력의 당시 말투를 들으며 웃지 않으려 애도 써 보았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만약 이 영화가 국내에만 필름이 남아 있고, 재개봉을 통해 여러 차례 상영이 된 바 있다면 현재처럼 온전한 모습으로 감상할 수 있었을까.

해방 직후 영화를 얘기할 때, ‘해연’ 보다도 자주 거론되는 영화는 1946년 최인규 감독의 ‘자유만세’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독립의 기쁨이 고스란히 드러난 영화였고, 흥행에도 크게 성공했다.

‘자유만세’는 현재 한국영상자료원 VOD 서비스로 집에서도 편히 볼 수 있는 영화이지만, 엔딩을 포함해 꽤 여러 장면이 삭제된 버전이다.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갑자기 ‘끝’이라는 자막이 나온다. 세월의 힘 속에 필름이 닳고 닳아 이렇게 된 것은 아니다.

1975년 기사를 보면, 광복30돌을 맞아 전국적으로 우수영화 12편을 상영하는데, 그 중에는 당시에 유일하게 남아있던 1940년대 영화인 ‘자유만세’도 포함되어 있다는 소식을 전하며, 아쉽게도 월북 배우가 나오는 장면이 검열의 가위질을 당해 50분 분량만 남았다고 전하고 있다.

‘해연’을 보면서 ‘자유만세’가 떠오른 건, ‘해연’에도 월북 배우가 나오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을 치루고, 군사정권이 들어서고, 점점 강력한 검열이 시행되는 과정에서 월북배우가 영화의 처음 시작과 마지막에 등장하는 ‘해연’은 과연 온전하게 남아 있을 수 있었을까.

발굴 소식은 언제나 반갑지만, 1940년대 해방 전후 척박했던 우리 영화 상황들, ‘해연’에 참여했던 인력들을 살피다 보니, 필자가 늘 관심을 갖고 있는 ‘표현의 자유’라는 쟁점이 떠올라 씁쓸한 상상을 해버리고 말았다.

1940년대 영화 상황을 비롯해 남은 얘기들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지금도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보관하고 있을, 현재로서는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많은 영화들이 본모습 그대로 더 돌아와 주길 간절히 바라본다.  

‘해연’은 오는 15일과 19일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 지하 시네마테크KOFA 1관에서 일반 상영회가 예정돼 있으니 참고하시길.

서일대 영화방송과 외래교수
사진=한국영상자료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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