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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깨는 ‘도끼’로 한국문학의 편견 쪼갤 것”

입력 : 2015-07-09 21:12:30 수정 : 2015-07-09 21: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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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전문 문예서평지 ‘악스트’ 창간 “많은 작가들이 쉽게 소개됐으면 좋겠어요. 너무 권위적인 거, 어깨에서 힘을 빼는 자세가 필요해요. 문예지들은 여전히 어렵고 무겁고 독자와 괴리가 심한 느낌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문예지를 안 읽게 돼요. 우리가 놀 (수 있는) 판이 필요했습니다.”

이 발언을 한 사람은 최근 창간된 격월간 문예지 ‘Axt’(사진) 편집위원 중 한 사람인 소설가 백가흠이고, ‘우리’란 다른 두 편집위원 소설가 배수아·정용준을 포함한, 이런 취지에 공감하는 문예대중인 셈이다. 소설가 이응준이 신경숙 표절 의혹을 제기하면서 광풍의 시기를 지나왔는데, 이들이 이 잡지를 창간하기 위해 준비한 건 이미 1년 전이다. 공교롭게도 이 잡지의 커버 인터뷰로 발언한 소설가 천명관은, 신경숙 표절 파문 전에 인터뷰한 내용인데, 자신이 생각하는 한국문학의 구조적 문제를 솔직하게 털어놓아 뜨거운 이슈에 동승한 형국이다. 그는 이 인터뷰에서 ‘선생님’들이 들으면 짜증날 발언들을 많이 했다.

“처음엔 나도 다들 외로우시니까 잔칫상에 와서 한두 숟가락 떠 드시는 거라고 좋게 생각했다. 나아가 문학을 사랑하는 충정이라고까지 이해했다. 하지만 한두 숟가락 정도가 아니라 아예 문학의 형질을 바꿔놓고 있다는 게 문제다. 자신들의 권위를 위해 문학을 고립무원의 산중으로 끌고 들어가 작가와 독자의 거리를 점점 더 벌려놓고 있다”

천명관은 문학상을 ‘수집’한다는 표현이 가능해질 정도로 한 작가가 여러 문학상을 돌아가며 수상하는 사실을 적시하면서 “그것은 마치 하나님과 신도들 사이에 끼어 권력을 누리던 중세의 성직자들과 같은 것”이라거나 “선생님들이 문단을 점령한 것은 콤플렉스 때문”이라고까지 나아갔다. 기성작가의 작품들을 두고 심사를 하는 주요 문학상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이러한 문제 제기는 충분히 가능하지만 심사위원들이 특별히 특정 작가를 어여삐 여겨 만날 상을 주는 것은 아닐 터이다. 그들이 문학을 보는 안목과 세계관이 그렇다는 것인데, 문제는 ‘그들’이 여러 상을 동시에 심사하거나, 그들이 주는 상의 권위를 곁눈질해 비슷하게 맞추려는 다른 상들의 ‘타성’을 천명관은 지적한 것 같다.

신경숙 표절 파문 광풍 뒤에 등장한 격월간 문예지 ‘Axt’는 적시타를 날렸다. 편집위원 백가흠의 말처럼 이 잡지는 작가들의 작품을 쉽게 소개하는 서평에 무게중심이 실려 있다. 창간호에는 국내 작가로는 이인성 은희경 박상륭 전성태 황현진 김태용 최진영을, 해외에서는 조르주 페렉, 안드레이 플라토노프, 파스칼 키냐르, 존 쿳시, 존 스칼지, 이창래, 라파예트 부인의 작품들을 다루었다. 윤경희 황현경 함성호 김금희 금정연 정지돈 박솔뫼 정지현 박민정 조재룡 변현태 류재화 임옥희 노승영 정영목 최미경이 서평자로 참여했다. 이들의 서평은 일간지 문학면 톱기사의 분량을 조금 상회하는 200자 원고지 15장 내외로, 짧다는 게 ‘매력’이다. 전경린 배수아 김경욱의 단편, 이기호 김이설 최정화의 장편 연재도 수록됐다.

격월간 문예지 ‘Axt’ 편집위원 소설가 백가흠 배수아 정용준(왼쪽부터). 이들은 “놀이처럼 시작했는데 각광이 부담스럽다”면서도 “생각처럼 되지 않아도 힘껏 놀아보겠다”고 환하게 웃었다.
발간 1주일 만에 재판에 돌입한 이 잡지 발행인 주연선 ‘은행나무’ 대표는 “포털, 서점, 기업들에 이 잡지의 콘텐츠를 제공하고 매월 약정금을 받는 조건으로 스폰서도 찾을 예정”이라면서 “후원자들이 늘어나면 모두 필자들의 원고료를 올리는 데 쓸 것”이라고 밝혔다. 광고가 없는 창간호 256쪽짜리 이 문예지는 일본 사례를 참고해 무가지로 발행하려다 “가장 값이 싼 이미지의 하한선”인 2900원으로 가격을 매겼다. 제호 ‘Axt(악스트)’는 독일에서 살았고 독일어 텍스트를 국내에 핍진하게 번역해온 편집위원 배수아의 아이디어로, ‘도끼’라는 독일 단어다. 영어로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예술(Art)과 작품(Text)의 결합어일 수도 있다. 편집위원을 대표해서 백가흠은 이 잡지 말미에 썼다.

“우리는 우리이기 위해 도끼를 들었습니다. 조금 덜 지루하고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은 것뿐입니다. 책 읽는 것 좋아하고 글 쓰는 것 좋아하는 사람의 놀이터를 만들어 보고자 합니다. 끝까지 살아남은 책의 운명을 존중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들고 있는 도끼가 가장 먼저 쪼갤 것은 문학이 지루하다는 편견입니다. …이제 도끼를 들고 춤을 추어도 좋겠습니다. 생각을 깨는 도끼, 얼어붙은 감정의 바다를 깨는 도끼, ‘Axt’를 들고 말입니다.”

글·사진=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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