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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망 다시 짜자] 전문가 3인이 본 메르스 사태

입력 : 2015-07-02 19:14:44 수정 : 2015-07-02 23:3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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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대응 실패 철저히 규명… 보건의료체계 대수술 나서야"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계기로 방역망을 비롯한 보건의료체계를 대대적으로 수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어내 제2의 메르스 사태에 대비해야 할 것인가. 메르스 퇴치 전쟁을 진두지휘한 안명옥 국립중앙의료원 원장과 과거 신종플루와 맞서 싸웠던 전병율 전 질병관리본부장(현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 방역 전문가인 강대희 서울대 의과대학장이 2일 세계일보 지면을 통해 지상 대담을 가졌다.
안명옥 국립중앙의료원장

―이번 메르스 사태를 악화시킨 주범은 무엇이라고 진단하나.

▲안명옥(이하 안)=준비가 부족했다. 공공보건의료시스템이 통일된 형태로 만들어져 있지 않아 초반에 혼란스러웠다. 그동안 공공의료기관이 탄탄히 성장해 왔다면 메르스 사태와 같은 혼란은 없었을 것이다.

▲전병율(이하 전)=삼성서울병원에서 첫 번째 환자가 확진 판정을 받았을 때 질병관리본부가 현장을 장악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수사관이 범죄현장에서 수사를 하는 것처럼 역학조사관이 감염경로를 확인하고 철저하게 격리시켰어야 한다. 무엇 때문에 초기 대응을 하지 못했는지 확실하게 밝혀야 한다.

▲강대희(이하 강)=초기대응 미숙이 가장 큰 문제였다. 우리 의료시스템이 공공과 민간의 역할 분담이 제대로 안 돼 있어 생긴 일이다. 전염병 보고체계가 안 갖춰져 있고 문제상황에 대한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점이 가장 큰 숙제로 남았다.

―대형병원 선호 풍토 때문에 메르스 환자의 대부분이 서울의 대형병원에서 발생했다.

▲안=빈익빈부익부의 문제다. 대규모 자본이 있는 대형종합병원에서는 새로운 의료장비를 위한 투자가 되고 당연히 환자들이 몰린다. 응급실 과밀화도 이런 현상 중의 하나다. 당장 우리 동네, 내 옆의 의사를 믿고 따르는 것부터 시작하는 의료전달체계의 전환이 필요하다.

▲전=국민이 함께 내는 보험료로 개인의 진료비를 충당한다는 인식이 부족하다. 우리나라는 건강보험제도가 잘돼 있어서 의료기관에 대한 접근성이 높다 보니 진료를 받기 위해 여러 병원을 전전하는 일이 잦다. 내가 가벼운 질병으로 많은 진료를 받으면 더 아픈 사람들이 진료를 받을 수 없다는 배려의식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강=의료전달체계가 저비용 고효율을 추구하다 보니 접근성이 너무 좋다. 수가를 높여서 접근 장벽을 높이는 방법은 잘 되지 않았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동네병원과 상급종합병원의 역할 분담이 잘 다듬어지길 바란다.
전병율 전 질병관리본부장

―메르스 사태를 거치면서 공공의료기관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다.

▲안=공공보건의료의 존재 이유는 너무나 명백하다. 양질의 서비스를 모든 국민에게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예측불허의 위기관리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투자를 해야 하고 대응능력을 키워야 한다.

▲전=마을마다 소방서가 있어서 화재가 발생하면 불을 끄듯 공공의료기관이 감염병이 발생했을 때 나설 수 있어야 하는데 구조적으로 그렇게 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의 건강보험 수가체계하에서는 공공병원이 살아남을 수 없는데 당국은 민간병원과 공공병원 영역을 나눠서 민간병원이 할 수 없는 역할을 공공병원에 맡기고 투자해야 한다. 당국은 무엇이 우선순위인지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강=보건소나 시의료원 등 공공의료기관들이 단순히 분류만 돼 있고 역할 분담이 없다 보니 결국엔 민간병원들이 공공역할을 했다. 시의료원에 음압병실 만들자는 주장이 제기됐는데 여기에는 반대한다. 전국을 몇 개 거점으로 나눠서 큰 병원 몇 개에 집중적으로 시설을 제공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공공의료기관은 진료기능 외에 교육 등 다른 공공기능을 수행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민간병원이라도 음압시설 등을 주고 잘 운영되도록만 하면 된다.

―차제에 질병관리본부를 외청으로 격상시키거나 보건차관을 신설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안=당장 한두 군데를 고친다고 병폐의 근본이 해결될 것으로 보지 않는다. 결국은 최종 결정을 누가 하는 것이냐 하는 부분이다.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끝장토론이 필요하다.

▲강=질병관리본부가 청으로 독립한다고 해도 여러 단계의 보고체계를 거칠 수밖에 없는 현 상황에서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할 수 있는 수준으로 가기는 어려워 보인다. 파격적인 조직 개편보다는 기본적인 체계를 갖추면서 역할을 다듬는 게 맞는 방향이라고 본다.
강대희 서울대 의과대학장

―정부의 신종플루 백서가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안=백서를 제작한 후엔 그에 맞는 후속조치가 있어야 한다. 공공의료기관이 200여개가 있지만 인수인계는커녕 제대로 된 전달체계가 없었다.

▲전=공무원의 교육과 훈련에서 큰 맹점이 있었다. 재난이나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 교육하고 숙지해야 하는데 매우 제한적으로 하고 있다. 백서를 만들었으면 공무원들이 이를 계속 공부하고 대비하도록 해야 한다.

▲강=독립적이고 객관적인 기구에서 이번 메르스 사태를 조명하는 백서를 만들어야 한다. 복지부에서는 자신의 치부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 힘들기 때문에 철저하게 규명하기 어렵고, 민관 합동 특별위원회를 구성해서 몇 년이 걸리더라도 꼭 해야 한다.

―메르스 대응과정에서 의료진의 희생이 컸다.

▲안=의료진은 헌신을 넘어서 자신의 생명을 내놓고, 다른 생명을 돌보고 있다. 국가의 홀대에도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대한민국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전사들이다. 하지만 앞으로 재난상황마다 이들에게 기댈 수는 없다. 공공의료기관에 대한 투자와 지원이 필요하다.

▲전=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 존재하는데 국가가 실패한 일을 의료진 개개인의 희생으로 막은 셈인데 국가가 이 부분에 대해서 깊이 반성해야 한다. 치료제, 의료장비, 격리시설 등을 정부가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다가 질병관리에 실패하니까 민간 의료기관이 희생양이 됐다.

▲강=메르스 사태는 국가가 실수하고 민간의 영역에서 해결을 했다고 봐야 한다. 메르스 사태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방역 당국의 컨트롤타워가 부재했다는 점인데 국가가 책임을 민간에 떠넘기고 있다. 당국이 보다 적극적으로 책임과 의무를 나눠 지고 민간과 정부가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파트너십을 공공이 해야 한다.

▲전=메르스 관련 이른바 왕따 현상을 보면서 많은 실망을 느꼈고 한국사회가 아직 멀었구나라고 생각했다. 환자들에게 일종의 낙인이 찍힌 셈인데 환자와 접촉하거나 격리된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다 보니까 역학조사에서 숨기는 일까지 생겼다. 사회 전체가 이번 일에 대해서 반성해야 한다.

정리·사진=조병욱·김민순·이재호 기자 brightw@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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