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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떡거리는 생에서 건진 간결한 시어의 깊은 울림

입력 : 2015-07-02 19:55:43 수정 : 2015-07-02 19:5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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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래 다섯번째 시집 ‘칭다오 잔교 위’
“머리에 피를 흘리며/ 가방을 꼬옥 쥔 채 빙판길에 쓰러진/ 가장의 출근길// 먹이 사냥을 가서 돌아오지 못하는/ 사바나의 수많은 생명같이/ 사내는 눈을 뜬 채 말이 없다// 구급차가 오고 응급조치를 끝내자/ 사내의 눈꼬리엔 마른 눈물자국// 가족이 올 때까지/ 보살피는 어느 손길/ 창밖엔 피라칸타 열매가 붉다”(‘가족’)

체험 없이는 나오기 힘든 시편이다. 특별한 기교가 필요한 건 아니다. 관찰하는 이의 시선이 있을 뿐이다. 다만 어떤 장면을 선택해 어떻게 보고 보여줄 것인가의 문제다. 조승래(59·사진)의 다섯 번째 시집 ‘칭다오 잔교 위’(서정시학)에는 펄떡거리는 생에서 간결하게 길어 올린 시어의 울림이 크다. 50대에 접어들어 늦깎이로 ‘시와시학’을 통해 등단했지만 청춘기부터 글쓰기에 대한 열망은 뜨거웠다고 했다. 생의 전선에 복무하면서도 그 뜨거움은 내내 식지 않았고, 끝내 분화구를 찾았다. 오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뜨거웠던 만큼 분출된 시들도 만만치 않다.

“무거운 머리/ 가벼운 머리/ 가리지 않고 받아 안아/ 포근한 잠 재웠다// 잔뜩 흐린 세상 이야기/ 치밀어 오른 울화까지/ 받아주느라/ 대청마루에서/ 마당으로 날아다닌/ 그도 이제/ 적막한 무게// 함께한/ 어느 생生과 함께/ 결삭은 나무가 되어/ 조용히 늙어가고 있었다”(‘목침木枕’)

어린시절 부친이 화를 내며 마당으로 내던지던 목침 이미지가 이번 시집 첫머리를 장식했다. 무거운 머리, 가벼운 머리, 흐린 세상 울화까지 모두 받아내던 그 때묻은 나무 뭉치가 이제 ‘결삭은’ 적막이 되었다. 시인은 고향, 그리움, 아쉬움, 서러움 같은 것들이 돌아보니 등단 5년 만에 한꺼번에 쏟아낸 많은 시들의 중심 정조였다고 말한다. 이런 정서는 산문시 ‘꽃집 주인’이 대표적인 절창이다.

생의 전선에 복무하느라 중국에서 12년 동안 살았던 그가 표제작으로 내세운 ‘칭다오靑島 잔교棧橋 위’에 그는 “땅 위의 사람들이/ 파도보다 더 출렁이는/ 칭다오 잔교의 오후”라고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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