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의 남북한 병사들이 서로를 주시하며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현 정부 들어서도 남북 당국 간 대화는 좀처럼 재개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
6·15공동선언 15주년을 맞아 북한이 작심하고 내놓은 정부 성명에 대한 정부의 알맹이 없는 대응과 뒤이어 나온 독자적 대북금융제재 발표는 대북정책에 대한 정부의 혼선과 전략 부재를 여실히 드러낸 대표적인 사례다. 북한은 입장발표 형식 중 최고 수위인 ‘공화국 정부 성명’을 통해 “하루빨리 대결을 끝장내고 화합과 통일의 길로 나가야 한다”면서도 전제조건을 주렁주렁 달았다. 북한이 내세운 전제 조건은 ▲국제공조 중단 ▲체제 통일 시도 중단 ▲한·미 군사훈련 중단 ▲남북관계 개선을 가로막는 법적·제도적 장치 철폐(5·24조치 해제) ▲6·15 공동선언 및 10·4 선언 이행 등 5가지다. 구체적 대화 제의 없이 전제 조건을 열거했다는 점에서 북한의 대화 의지와 진정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판문점에서 한국군 병사가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현 정부 들어서도 남북 당국 간 대화는 좀처럼 재개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남북 간 ‘성명전’ 이후에는 웃지 못할 ‘코미디’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대북 정책 수장인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개성공단 상회 방문 자리(6월17일)와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6월25일) 모두발언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정부의 대북 대화 의지를 강조했다. 그러나 26일 외교부와 기획재정부는 불쑥 정부의 첫 독자 대북 금융제재 대상을 발표했다. 그러잖아도 유엔 인권사무소 개소 문제에 거센 반발을 했던 북한의 대남 비난 수위는 한층 높아졌다. 전직 고위관료는 “통일부는 대화하자며 교류협력 확대를 이야기하고, 외교부는 독자 제재를 들고 나오니 부처별로 딴소리를 하는 것”이라며 “외교안보 부처의 대북 메시지는 일관성이 있어야 하고 발표 시점을 조율해 불필요한 오해와 반발을 사는 일은 피했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큰 그림을 그리는 전략도 없고 정교한 정책 조율도 이뤄지지도 않았다는 지적이다.
이를 두고 정책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할 국가안보실이 제 구실을 못하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많다. 안보실 내 대북 전략가 부재와 폐쇄적인 내부 의사 결정 방식이 그 원인으로 지적된다. 안보실이 대북 정책의 전문성을 갖춘 통일부가 아닌 국방부와 외교부 인사로 채워진 탓이라는 문제 제기는 안보실 출범 이후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그래서 정부가 대북 대화 제의 방식과 시점 등을 놓고 ‘아마추어’ 행태를 보이는 일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지난해 한·미 군사연습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 기간인 8월19일에 남북 고위급 접촉을 갖자고 제의한 것은 전문가들 사이에 아직까지 회자되는 ‘몰상식적’ 대북 대화 제의로 거론된다. 이명박정부 시절의 외교안보 핵심 관계자는 “경제인 출신인 이 대통령은 대외·대북 정책과 관련해서는 관련 전문가를 참모로 대거 등용해 곁에 두고 그들의 말을 경청했다”며 “박 대통령은 관료 의존도가 높은데, 관료들이 대통령 눈치보기 바쁘면 대통령 혼자 모든 것을 결정하게 된다”고 꼬집었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통일부는 “정부는 대북정책 기조와 원칙을 일관되게 견지하고 있다”며 “주요 외교안보 정책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등 회의체를 통해 유관부처 간 긴밀히 협력해 오고 있다”고 말했다.
김민서 기자 spice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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