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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현실과 무대 경계서… 분노를 내면화 하는 일본인들

입력 : 2015-06-27 07:26:09 수정 : 2015-06-27 07:2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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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에키 쇼이치 지음/노영희 옮김/한울/2만8000원
일본인의 자서전―자서전을 통해 보는 일본인의 자아와 삶/사에키 쇼이치 지음/노영희 옮김/한울/2만8000원

최근 한국과 일본 사이에 관계 개선의 움직임이 활발한 가운데 일본인의 의식세계를 가늠할 수 있는 저서가 나왔다.

문학비평가로 유명한 도쿄대 명예교수 사에키 쇼이치(佐伯彰一·93)가 일본 근·현대 인물들이 쓴 자서전과 글, 문서 등을 자신의 필치로 재해석한 책을 펴냈다. 일본의 지성인들의 민낯을 볼 수 있다. 책에는 자서전론의 대가로 인정받는 사에키 교수의 엄청난 독서량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지금도 유명인들이 자서전을 쓰려면 사에키 교수에게 자문을 구하는 것이 통과의례처럼 돼 있다고 한다.

저자는 서구의 자서전을 크게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으로 시작된 내면적인 고백형과,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기’로 시작된 외면적인 회상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일본의 자서전은 이런 식으로 도식화하기 어려울 만큼 장르가 다양하다고 소개했다.

이를테면 도쿠가와 막부 시대를 대표하는 정치인 아라이 하쿠세키(新井白石·1657∼1725)는 분노를 내면으로 삭이는 일본인의 의식 형성에 영향을 준 인물로 묘사된다. 아라이는 에도 중기의 무사, 유학자 겸 정치인으로 역사, 지리, 언어, 문학에도 뛰어났다. 도쿠가와 막부의 기초를 닦은 아라이가 쓴 ‘분노’는 현대 일본인의 자화상으로 볼 수도 있다. 분노를 내면화하는 전국시대 무사의 체질과 태도는 지금도 이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근대 일본인을 대표하는 지식인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1835∼1901)다. 후쿠자와는 메이지유신 이전 세대에 속한다. 유신이 일어난 해 그는 벌써 30대 중반이었지만 활동기는 메이지시대였다. 사실 후쿠자와는 일본 내에서도 평가가 엇갈린다. 서양 문물을 받아들여 명문 게이오대학을 설립하는 등 일본을 아시아 일등국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지만 조선침략 같은 제국주의적 사상을 받아들인 것도 그였기 때문이다. 저자 사에키가 그를 개방적이면서도 고루하다고 규정한 것은 이 때문으로 보인다.

이치카와 주샤(市川中車·1860∼1936)는 메이지부터 쇼와 전쟁기까지 활약한 가부키 배우다. 교토 환전상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네살 때부터 가부키를 익혔다. 어린이 연극, 순회 공연 등으로 연기 수업을 쌓았다. 저자는 ‘주샤예화’ 제하의 글에서 “주샤는 언제나 무대의 어휘와 연기를 메타포로 말하고 있다”면서 “어디까지가 생생한 행위이고 어디부터가 연기인가. 현실과 연기와의 경계는 미묘하게 흔들리고 있다. 참으로 허실피막(虛實皮膜)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경계의 위험함이 있다”고 평했다. 현대 일본 가부키의 뿌리는 현실과 연기, 삶과 죽음이 모호한 이치카와 주샤라고 규정한다.

에마 사이코(江馬細香·1787∼1861)는 한국의 허난설헌(許蘭雪軒)과 비교되는 여류 한시 작가이다. 섭정, 관백 정치체제를 배경으로 중류 귀족 여성들의 삶을 다룬 그녀의 작품은 근대 일본 여성문학의 뿌리다. 저자는 “문학을 통해 순수한 자신을 추구하려는 근대 여류문학의 원형이 그녀에게서 보인다”면서 “독서를 습관으로 여기는 일본 여성들의 문학적 취향은 에마가 있기에 가능했다”고 자랑한다.

저자는 “자서전을 읽는 즐거움은 여러 가지 생생한 개성을 접할 수 있는 것인데, 단순하게 개성 환원에 멈추지 않는 넓이가 발생한다”면서 “일본인 특유의 비상구를 여기저기서 발견할 수 있다”고 풀이했다.

정승욱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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