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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 애절한 음조, 참여·저항시의 ‘애도 정치학’

입력 : 2015-06-04 20:25:22 수정 : 2015-06-04 20:2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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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희 시인 ‘애도와 우울(증)의 현대시’ “님 계신 곳 내 고향을 내 못 가네 내 못 가네/ 오다가다 야속타 아하 삼수갑산이 날 가두었네 아하하// 내 고향을 가고지고 오호 삼수갑산 날 가두었네/ 불귀로다 내 몸이야 아하 삼수갑산 못 벗어난다 아하하”

김소월(1902∼1934)은 아편을 먹고 죽음을 맞이했다. 소월이 ‘삼수갑산’에서 지면에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아하하’였다. 김승희 시인(63·서강대 국문과 교수·사진)은 최근 펴낸 ‘애도와 우울(증)의 현대시’(서강대학교 출판부)에서 “‘아하하’는 우울증적 주체가 더 이상 아무것도 욕망하지 않고 상징적 언어마저도 무효화되고 치명적 비통함과의 결합 속에 불안 없이 자멸하게 하는 대양적 공허”라고 분석했다. 김 시인은 “승화만이 죽음에 대한 저항인데 이 시에는 더 이상 아름다움의 승화조차 없다”면서 “우울(증)의 시인은 이제 ‘아하하’라는 비통의 간투사 외엔 더 이상 남길 말이 없다”고 덧붙였다.

김 시인은 이 책에서 김소월뿐 아니라 박인환, 고은, 박두진, 전봉건을 비롯해 김수영, 김지하, 신동엽 같은 참여시인은 물론 노천명, 고정희, 나혜석 등 여류시인까지 애도의 프리즘으로 분석했다. 그는 전후(戰後) 시에 관한 논문을 쓰려고 1950년대 시를 읽다가 한국 현대시는 ‘끝나지 않는 애도와 우울(증)의 시’라는 생각을 했다. ‘상실’이야말로 한국 현대시를 끌어당기는 만유인력의 구심점 같은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는 “그동안 참여시는 애도의 관점으로 연구된 적이 없는데 참여시, 저항시야말로 ‘애도의 주제’와 밀접하게 연관된 눈부신 시 세계”라고 보았다. 이 경우 상실의 대상은 “4·19정신이나 동학정신 혹은 민주주의와 같은 이상이나 이념적인 것”이라며 “애도를 다하지 못한 언어들은 시인의 무의식에 우울의 기호들로 남아 우울(증)의 증상을 남기고 다하지 못한 역사의 꿈을 ‘애도의 정치학’과 연관시켜 노래 불러왔다”고 지적한다.

“고독이 성처럼 나를 두르고/ 캄캄한 어둠이 어서 밀려오고/ 달도 없어주// 눈이 내려라 비도 퍼부어라/ 가슴의 장미를 뜯어버리는 날은/ 하늘에 불이 났다”

노천명(1912∼1957)의 이 시편 ‘사슴의 노래’는 죽음처럼 처참한 후기 삶을 잘 드러낸다고 보았다. 멜런컬리가 파괴적 에너지로 변하면 자아와 세계를 최후의 파멸적 어둠에 매몰하는 공격적 에너지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민요 ‘아리랑’까지 ‘애도와 우울증, 열락의 언어’로 분석해낸 김 시인은 “예술적 자아는 늘 어두운 우울증의 물결에 시달려야 한다”면서 “소월은 허물어지는 자아를 부여안고 자살의 길로 가면서도 그 애절한 음조의 찬란한 시들을 남긴 것”이라고 서문에 적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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