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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일상 톡톡] "유가족의 슬픔? 내겐 돈"

입력 : 2015-05-31 05:00:00 수정 : 2015-05-31 13:4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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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사기·환급거부 피해 속출

최근 들어 장례문화가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기존 매장 위주의 문화에서 화장(火葬) 위주로 바뀌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변화인데, 화장 후 수목장(樹木葬·나무 아래 뼛가루를 묻는 방식)을 하거나 평장묘(뼛가루를 땅바닥에 묻고 그 위에 작은 표지석을 세우는 방식)를 만드는 경우도 많아졌다.

이처럼 국민 의식이 변하고 있는데도 과도한 비용을 요구하는 장례문화가 지속되고 있는 데는 상조회사 등 일부 장례업체들의 횡포가 한몫을 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과거 집에서 장례를 치를 때는 친·인척들이 모여 상부상조하는 정신으로 의식을 진행했기 때문에 비용이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편리함을 추구하다 보니 장례절차도 상업적으로 변질된 것인데, 장례업자나 장례식장의 상술에 따라 그 비용이 폭등했다. 가족을 잃은 슬픔에 정신이 없는 유족들이 상조회사나 장례식장에서 권하는 대로 절차를 진행하다 보니 생겨나는 일이다. 특히 핵가족화가 진행되면서 상제가 1~2명인 경우가 많아져 장례식 비용이 부담으로 작용하게 된 것.

전문가들은 이처럼 잘못된 구조를 개선하려면 먼저 유족들의 슬픔을 단순한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는 상조업체 등의 마인드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개선해야 할 장례문화와 일부 상조업체의 상술에 대해 살펴본다.


#1. 수십년간 농사를 지으려 살아온 김모(77·여)씨는 한 달 전부터 한 업체에서 운영하는 사무실에 드나들었다. '강사'라고 불리는 젊은이들은 휴지와 치약을 주고 적적하지 않게 노래도 불러줬다. 김씨는 바쁘다는 이유로 명절에만 얼굴을 비추는 아들·딸보다 강사들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강사들은 어느 날 국산 최고급이라고 하면서 수백만원짜리 수의를 들고 왔다. 김씨는 너무 비싸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렴 어떤가, 내게 이렇게 잘 해주는데'라는 생각으로 한 벌에 200여만원을 주고 수의를 샀다. 그는 “알아보니 이 수의는 한 벌에 10만원짜리 싸구려 중국산이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2. 직장인 박모(44)씨는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가입해둔 상조회사의 장례지도사를 만났다. 가장 무난하다는 400여만원짜리 상품에 가입했지만 막상 장례용품을 보니 성에 차지 않았다. 장례지도사는 "더 좋은 수의, 고급 관에 모셔야 아버지 마지막 가시는 길이 편안하지 않겠느냐"며 재차 권유했다. 경황이 없던 박씨는 장례비용을 아끼면 아버지께 불효하는 것 같다고 생각, 추가 비용을 내고 고급 물품으로 바꿨다. 그는 “결국 예상했던 것보다 2배 더 많은 비용을 들여 장례를 치렀다”고 하소연했다.

#3. 전북 전주에 사는 최모(48)씨는 지난해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장례식장을 찾았다. 가장 무난하게 장례식을 치르려 했지만, 막상 장례용품을 보니 성에 차지 않았다. 최씨는 장례비용을 아끼면 아버지께 불효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버지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해 좀 더 많은 비용을 내고 장례를 치렀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 장례식에 사용된 조화(弔花·조의를 표하는 데 쓰는 꽃)가 이미 다른 상주가 사용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최씨는 분통해 할 수 밖에 없었다.

이처럼 당사자와 유족을 두 번 울리는 장례용품 관련 범죄가 왕왕 발생하고 있다. 이번에 적발된 장례식장은 지난 2013년 5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화훼·장례버스·상례복 등의 업체로부터 독점적으로 납품할 수 있는 계약을 맺고 1억1000만원의 리베이트를 받아 챙겼다. 한 번 납품 받을 때마다 납품 비용의 15~20%의 금액을 받았다.

여기에 유족들이 버리고 간 조화 수백개와 화환 수천개를 가져가 장례식장에서 사용하거나, 화훼 업자들에게 판매하는 등의 방법으로 2200여만원의 이득을 보기도 했다.

화훼 업자들은 장례식장에서 헐 값에 구입한 조화를 가지고 상태가 좋은 국화 몇 송이를 섞은 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적힌 리본만 바꿔 달고 물을 뿌려 싱싱한 새 꽃처럼 꾸몄다. 이후 새 것으로 둔갑한 조화를 다른 고인의 장례식에 재사용했다.

경찰은 "하나의 꽃장식이 몇 차례나 재사용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라고 혀를 내둘렀다. 장례식장에 독점 계약에 따른 돈을 건네고 한 번 사용한 조화를 새 것으로 속여 판 화훼 업자 등 11명도 무더기로 검거됐다.

경찰은 이들 화훼 유통업자들이 조화를 비롯한 기타 장례용품의 납품 계약을 장례식장과 체결하면서 장례식장에 수수료나 계약금으로 지급하고 있는 구조가 이 같은 불법 행위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결국 이 같은 피해는 수천만원에 달하는 장례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유족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납품업자들의 입장에서는 장례식장으로부터 주문을 지속적으로 받기 위해 리베이트를 상납해야 하고, '납품업체 선정권'이란 권한을 가진 장례식장은 관행적으로 리베이트를 받아 챙겼다"며 "전형적인 갑을 관계가 애꿎은 고인과 유족을 기만하고 소비자들의 지갑을 터는 범죄 행위로 이어졌다"고 전했다.

이어 "부당한 부담을 전가하는 장례식장 등 관행적인 부정비리를 척결하기 위해 단속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장례 전문가들은 "예전에는 집에서 다 치르던 것을 밖에서 하게 됐고, 시간이 지날수록 편리함만 추구하다 보니 장례 절차가 상업적으로 변질된 것 같다"면서 "이 점을 이용해 상업적인 이득을 보려고 달려드는 사람들이 있어 문제가 생긴다"고 말한다.

이런 가운데 최근 수목장 수요가 늘면서 수목장 분양 사기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서울 강동경찰서는 지난달 말 노인들을 대상으로 경기도 광주와 이천시 등 수도권 일대의 수목장에 투자하면 수목장지를 분양해주겠다고 속여 노인 등 52명에게서 투자금 명목으로 17억원을 받아 챙긴 혐의로 이모(47)씨 등 2명을 사기혐의로 구속하고 7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은평경찰서는 지난 2월 평창 동계 올림픽 특구의 수목장 부지에 투자하면 분양권을 받고 돈도 벌 수 있다고 속여 100명에게서 20여억원을 가로챈 허모(51)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이처럼 수목장 관련 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것은 수목장 공급이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1990년대 들어 화장이 본격화하면서 2005년부터는 화장률(52.6%)이 매장률(47.4%)을 넘어섰다. 2013년에는 화장률이 76.9%에 달했다. 보건복지부가 2013년 실시한 국민의식조사에 따르면 화장 후 가장 선호하는 장례법은 ▲수목장 44.2% ▲납골당 안치 37.0% ▲기타 11.8% ▲산소 안치 4.0% 순이었다.

하지만 수목장이 가능한 장지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어서 실제로는 납골당 안치(74%)가 수목장(14%)을 크게 앞섰다.

산림청에 따르면 전국 자연장지 864개소 중 수목장이 가능한 장지는 67개소다. 사설 자연장지(826개소) 중에는 55개소에 수목장림이 있지만, 이 중 39개소는 개인·문중 시설이어서 특정인만 이용이 가능하다. 국가가 운영하는 공설 자연장지(38개소)에서는 12개 장지만 수목장이 가능하다. 공설이든 사설이든 장지를 보유하지 않은 일반인이 이용 가능한 수목장은 28곳에 불과한 실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수목장을 늘리기 위해서는 자연장지 설립을 위한 불필요한 행정절차를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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