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설왕설래] 위안부 할머니

관련이슈 설왕설래

입력 : 2015-05-29 03:13:00 수정 : 2015-05-29 03:38:21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세계 전쟁사상 유례 없는 군대 위안부를 만들었다. 부끄러운 일이라는 생각은 들었는지 이를 철저히 숨겼다. 1945년 해방 후 징병·징용으로 끌려간 남성들은 속속 돌아왔지만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여성 상당수가 돌아오지 않았다. 일본에 정착한 김춘자 할머니의 말이 이들의 입장을 대변한다. “고향에 가고 싶어도 못 가고 있다. 이미 어머니에게서 받은 몸이 아니다.” 위안부 피해자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시간이 한참 흐른 뒤였다.

윤정옥 이화여대 교수가 1988년 기생관광 문제를 다룬 세미나에서 위안부의 실상을 최초로 알렸고, 1990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창설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이듬해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자 중 처음으로 TV에 나와 공개 증언을 해 세상에 충격을 줬다.

“정말 분하고 원통해서 그 말을 어떻게 다 할 수 있겠어요. 당하면서도 어떻게 기가 막히고 가슴이 아픈지 말이 안 나와요. 그때 생각을 안 해야지 하면서도 내 이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김 할머니는 일장기만 보면 가슴이 울렁거리고, 위안부 이야기만 나오면 지병인 천식이 도져 숨이 막힌다고 했다.

이제 위안부 문제는 피해자가 없는 뜬소문에 불과한 일이 아니었다. 일본 과거사 문제의 핵심 현안이 됐다. 정대협 창립멤버인 김혜원은 “사람들의 천시를 무릅쓰고 ‘내가 바로 그 위안부요’ 하고 나선 김 할머니의 용기에 고무됐다”고 했다. 김 할머니가 증언한 날(8월14일)은 2013년에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로 지정됐다.

최근 세계의 저명 역사학자들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위안부 문제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정면으로 인정할 것을 촉구하는 집단성명을 발표한 데 이어 일본 16개 역사 연구·교육 단체들도 일본 정부에 위안부 문제 왜곡 중단을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하지만 위안부 할머니들은 아직 일본의 공식 사죄를 받지 못했다.

17살의 나이에 위안부로 끌려가 대만과 중국, 싱가포르, 베트남 등지에서 고초를 겪은 이효순 할머니가 27일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8명 중 생존자는 52명으로 줄었다. 할아버지 세대는 위안부로 끌려가는 꽃다운 나이의 처녀들을 지켜주지 못했고, 우리는 그들의 명예를 회복해주지 못했다.

박완규 논설위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아일릿 이로하 '매력적인 미소'
  • 아일릿 민주 '귀여운 토끼상'
  • 임수향 '시크한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