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체된 소설 작단을 깨울 새로운 기획출판 시리즈가 출범했다. 문학평론가 임우기(59)씨가 대표인 솔출판사의 ‘소설판’ 총서가 그것이다.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전 16권을 완간하고 이문구 소설 전집을 처음으로 기획한 것을 비롯해 김소진의 소설을 태동시킨 왕년의 문학명가가 소설 출판을 접은 지 10여년 만에 다시 기지개를 켠 것이다. 임우기씨는 “상업주의적 의식을 버리지 못한 채로 대중들의 낡은 감각과 의식에 호소하는 기존의 소설 의식을 타개 극복하고, 현실 생활에 깊이 뿌리 내린 진정한 이질적 개성의 소설 문체의식, 고유한 창작정신을 발굴하고 이를 뒷바라지하는, 새로운 소설 시리즈로서 ‘소설판’ 총서를 기획 출판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안용복이 서계를 품고 귀국하던 조선 숙종 19년(1693년)이야말로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 땅이 아닌 조선의 땅임을 분명하게 공식화한 시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정작 안용복은 조정의 허락 없이 국경을 넘나들었다는 죄목으로 2년간 옥살이를 하고 유배까지 당했다. 작가는 40여년 전 청계천의 고서점에서 안용복에 대한 짧은 이야기를 발견하고 충격을 받은 뒤 일본의 연이은 망언에 자극받아 사명감으로 이 소설을 써내려갔다고 한다.
2012년 타계한 소설가 김문수. 조선시대 독도 지킴이 안용복의 활약을 다룬 유고작이 소설 선집으로 묶였다. 솔출판사 제공 |
‘심씨의 하루’에 등장하는 샐러리맨 남자의 하루는 서글프다. 일가붙이들이 가 있는 나라로 이민 가자고 졸라대는 아내를 달래가며 심씨는 하루하루를 버텨나간다. 고아원 출신인 그는 이산가족찾기 열풍이 지나간 뒤 자신도 피붙이를 찾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것이다. 추석을 앞두고 얄팍한 떡값 봉투를 받아 아내의 금목걸이까지 사들고 우여곡절 끝에 집에 당도하지만 아내는 편지 한 장 달랑 써놓고 전세금을 빼내 사라지고 없다. 이 사내는 아내 대신 술청의 여자에게 목걸이를 건네주며 운다. ‘지문’에 등장하는 맞벌이부부는 주민등록증을 신청하기 위해 모처럼 나들이 기분으로 김밥까지 싸서 출타해 아이들 앞세우고 창경원도 가려 했는데, 그만 지문이 나오지 않아 어렵게 잡은 화려한 외출이 망가지고 만다. 미장이 남편과 남의 집을 전전하며 허드렛일로 살아가는 부부의 서글픈 우화 같은 이야기다.
‘소설판’ 총서 시리즈를 기획한 문학평론가 임우기. 세계일보 자료사진 |
임우기씨는 ‘소설판’ 총서로 지역 작가 발굴에도 힘을 쏟을 예정이다. 임씨는 “웹(web)시대의 문화적 과제인, 지역과 지역 간의 연대와 소통을 위한 ‘지역적 개인으로서의 작가’들을 찾아 그 문학성을 널리 알리는 데 주력할 것”이라며 “지역마다 절차탁마하는 고유의 이질적 작가 정신들을 찾아 그 문학적 내용과 가치를 온전히 독자들에게 전하겠다”고 말했다. 두 번째 ‘소설판’ 시리즈로 전남 함평에 사는 김희저의 작품이 다음달 출간될 예정이다. 한국 소설 작단에 새로운 ‘판’이 열릴지 지켜볼 일이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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