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이승현칼럼] ‘고칠 개(改)’에 담긴 용기를 생각한다

관련이슈 이승현 칼럼

입력 : 2015-05-14 21:42:11 수정 : 2015-05-15 06:17:49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해피엔딩은 기대난인 공무원연금 개혁 쟁론
용기 없는 자들 빼고 논의 절차 재구성해 1·2단계로 결론 내자
싸움이 길어지면 상처와 고통, 원한만 남는다. 말싸움도 그렇다. 어떻게 끝나도 해피엔딩은 기대하기 어렵다. 불행하게도, 정치권의 연금 쟁론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그제 “박근혜 대통령이 ‘공무원연금 개혁을 생각하면 한숨만 나온다’고 했는데 저는 이 문제만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터질 듯이 답답하다”고 했다. 연금 개혁 앞에 서면 ‘대통령은 한숨, 여당 대표는 가슴’인 모양이다. 여야 간만이 아니라 당·청 간에 서로 주고받는 상처가 커지고 있다는 뜻이다. 17일 열린다던 당·정·청 대책회의가 청와대 요청으로 어제 갑자기 보류된 것도 의미심장하다.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는 보류 이유에 대해 “나는 모르겠다”고 했다. 감정이 좋아도 그렇게 썰렁하게 말했을까. 원한으로 가는 다리가 저 너머에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쩐지 아슬아슬하다.

공무원연금 개혁은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는다. 재정 부담 완화, 연금 형평성 강화 등 대의명분도 차고 넘친다. 4대 개혁의 첫 열쇠이기도 하다. 그 중차대한 과제가 왜 말싸움만 낳게 된 것일까. 왜 이 지경인가. 개혁 목표와 무관하게 느닷없이 불거진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등 세부 쟁점을 열거하자면 밑도 끝도 없다. 하지만 본질은 다른 데 있다. 바로 용기의 문제다.

다들 용기가 없다. 배가 산으로 가는 진짜 이유다. 공무원노조는 상대적으로 후한 기득권을 내려놓을 용기가 없다. 여야는 합리적 개혁 논의를 위해 일단 노조를 배제해야 했는데도 그럴 엄두도 내지 못했다. 외려 막바지까지 공무원 눈치를 봤다. 공무원 표밭을 의식한 탓이고, 근본적으론 용기가 없는 탓이다. 청와대도 오십보백보다. 헌신적 희생의 솔선수범이 필요한 국면에 왜 리모트 컨트롤만 켰다 껐다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국민은 입만 열면 개혁을 부르짖는 시대를 보고 있다. 희극인지 비극인지 알 길이 없다. 개혁은 그렇게 쉽지 않다. 비겁한 자들은 개혁 비슷한 것도 할 수 없는 법이다. 개혁의 ‘고칠 개(改)’를 보라. 왼쪽의 기(己)는 삼각형 머리의 독사를 가리키는 갑골문 문양에서 나왔다. 오른쪽은 사람이 막대기를 들고 뱀을 공격하는 모습이다. ‘고칠 개’는 재앙을 제거하는 용감한 행동인 것이다. 아무나 할 수 있겠나. 무자격자들이 ‘무늬만 개혁’을 한답시고 난장판을 벌이니 나라 꼴이 우습게 되는 것이다.

이제 어찌해야 하나. 연금 개혁에 관한 한 용기가 없을 수밖에 없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다시 판을 짜야 한다. 정치권과 공무원노조가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자기 이해에 반하는 결정을 어찌 내리겠나. 처지가 그런 이들은 생산적 논의를 위해 잠시 자리를 비워주는 것이 낫다.

이승현 논설위원
새 의사결정 절차는 2단계로 재구성해야 한다. 1단계는 납세자들의 선택 과정, 2단계는 국회 추인 과정이다. 1단계가 핵심이다. 용기 없는 이들이 떠난 자리를 메울 방법은 많다. 우선 객관적으로, 이성적으로 엉킨 실타래를 풀 전문가가 필요하다. 공무원연금 문제의 진정한 당사자인 납세자 대표들이 그들과 함께 결단을 내려야 한다. 대표 선정이 암초일 수 있다. 하지만 난제는 아니다. 정치색을 경계하면서 시민·사회단체의 적격자들을 위촉할 수도 있고, 시민 배심원단을 구성하는 방식을 원용할 수도 있다. 성인 연령대의 전 국민 대상으로 무작위 추첨을 해도 된다. 어느 쪽으로 해도 여야의 ‘사회적 합의’보다는 나은 결실을 끌어낼 수 있다.

국회도 할 일이 있다. 1단계 결단이 내려지면 2단계는 국회 몫 아닌가. 국회는 1단계 안에 대해 찬반 투표를 하면 된다. 일자일획도 손대는 것은 금물이다. 끝없는 말싸움이 다시 이어질 뿐이니까. 국회는 아울러 공무원노조를 설득하는 고역도 맡아야 한다. 그렇게 밥값을 해야 한다.

물론 여야가 법에 보장된 기존 방식으로 국회에서 타결을 짓겠다고 고집을 부릴 수도 있다. 하지만 싹이 노랗다. 국민 박수를 받을 성과도 없을 것이다. 정치권은 알아야 한다. 국민이 더 화가 나면 작대기를 들지도 모른다는 것을. 또 작대기를 드는 날엔 뱀이 아닌 다른 것이 잡힐지도 모른다는 것을.

이승현 논설위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제나 '깜찍하게'
  • 정은지 '해맑은 미소'
  • 에스파 카리나 '여신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