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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자연이 선물한 ‘연초록 데칼코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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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5-07 19:12:55 수정 : 2015-05-07 19: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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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록의 향연’ 청송 주산지
주산지는 경상북도 청송 주왕산 자락 깊은 산속에 자리 잡은 조용한 호수다. 이른 아침 햇살이 호수를 비추면 물속에 감춰진 또 다른 절경이 나타난다.
  “내가 숲 속으로 들어간 것은 내 인생을 오로지 내 뜻대로 살아보기 위해서였다. 나는 인생의 본질적인 것들만 만나고 싶었다. 내가 진정 아끼는 만병통치약은 순수한 숲 속의 아침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이다.”

1800년대 중반 미국의 철학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숲 속 호숫가에 집을 짓고 은거했다. 팍팍한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 진정한 삶을 찾기 위해서다. 그곳에서 이어진 2년2개월간의 삶을 글로 적은 것이 세계적인 명수필로 꼽히는 ‘월든’이다. 소로 같은 철학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라도 탈출을 꿈꾼다. 새소리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깊은 숲 속의 잔잔한 호숫가에서 삶을 묵상해보고 싶다. 소로가 그랬던 것처럼 순수한 숲 속 아침 공기를 들이마셔도 좋다. 긴 시간을 숨어 살 수는 없어도 하루만이라도 도시를 탈출해보는 건 어떨까.

이런 꿈을 꾸는 도시인들에게 숲 속 호숫가 공간을 내어주는 곳이 경상북도 청송 주왕산 자락에 자리한 주산지다. 사과꽃이 보기 좋게 피어 있는 시골마을 과수원을 지나 조용한 도로를 한참을 걸어올라가야 이곳이 나타난다. 조금은 가파른 산길이지만 걷는 게 힘들거나 지루하지는 않다. 산세가 준수해 ‘경북의 소금강’으로 불리는 주왕산의 멋진 경치와 이름 모를 새소리, 물소리를 감상할 수 있다. 그렇게 20여분을 천천히 걸으면 갑자기 시야가 트이며 놀랍게도 산속의 작은 호수가 나타난다. 조선 경종 때인 1721년 민초들이 직접 지은 인공저수지로 300년 가까이 그 자리를 지켜오며 절경을 품어왔다.

호숫가에 서면 진짜 숲 속이라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온통 나무들의 향연이다. 마침 때는 신록의 계절인 5월이다. 봄 한철 동안 새 생명의 싹을 피워냈던 나무들이 이제 본격적으로 푸름을 발산할 시기다. 주산지는 호숫가뿐 아니라 호수 안에도 아름다움이 있다. 물이 맑고 공기가 깨끗해 숲 속 나무들의 자태가 물 위로 그대로 비친다. 호수 속에 또 다른 숲이 있는 듯한 모습이다. 빛의 반사가 만들어낸 흔한 자연의 한 작용일 뿐이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풍경은 감동적이다. 숲 속뿐 아니라 호수 위에서까지 아찔한 신록의 향연이 펼쳐진다.
호수 속에 뿌리를 박고 자유롭게 자란 주산지 왕버들. 아름다운 자태로 자연이 만든 예술품이 됐다.

아름다움을 배가하는 게 주산지의 명물인 20여 그루 왕버들이다. 왕버들은 버드나무 중 가장 큰 수종으로, 한반도 중남부지방에서 주로 만날 수 있다. 물을 좋아해 보통 냇가에서 자라지만, 이곳의 왕버들은 아예 호수 속에 뿌리를 박았다. 왕버들은 주산지의 맑은 물을 양분 삼아 짧게는 100년, 길게는 200여년간 크고 우람하게 자랐다. ‘버들’이란 뿌리와 줄기가 ‘뻗어간다’는 뜻이다. 그 이름처럼 주산지의 왕버들은 물속으로, 물 위로 끝모를 정도로 가지를 뻗친다. 긴 시간을 자유롭게 자라면서 자연이 완성한 하나의 예술품이 됐다. 그렇게 깊은 숲 속 호수에서는 고목과 푸른 나무들, 깨끗한 물이 만들어내는 풍광이 이어진다. 

이 아름다움은 신록의 계절뿐이 아니다. 형형색색의 단풍이 화려함을 더하는 가을이며 소복이 쌓인 눈이 더없이 운치 있는 겨울까지 주산지는 사계절이 모두 한 폭의 그림 같다고 한다.

이 절경은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통해 스크린에 펼쳐지기도 했다. 영화 속 호숫가 사찰은 촬영을 위해 임시로 지어졌던 것으로 지금은 철거돼 사라졌다. 하지만 자연이 만들어낸 나머지 작품들은 여전히 남아 여행객을 반긴다.

안타깝게도 주산지의 주인공인 왕버들은 시름시름 앓는 상태라고 한다. 물속에서 자라기 때문에 보통 왕버들보다 민감한 데다 영화의 영향으로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으면서 훼손된 까닭이다. 

다행히도 지난해부터 기존 왕버들을 치료하고, 새로운 왕버들을 옮겨심는 복원사업이 시작됐다. 청송군 내에서 자생하는 네 그루의 왕버들이 이사오기도 했다. 복원사업이 끝나면 한층 더 생생해진 왕버들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때까지는 주산지를 찾으면 나무가 더 아프지 않도록 조심조심하며 호숫가 경치만 가슴에 담고 오면 좋겠다.

청송=글·사진 서필웅 기자 seose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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