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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리포트] 美·日 '신밀월' 110년 전 英·日동맹과 판박이… 한국외교는 '낮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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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5-05 19:35:07 수정 : 2015-05-06 10: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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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부재 외교 비판에 귀 닫은 청와대·정부… 우려 고조
‘(중략) 어느 쪽이든 조약 체결 당사국이… 자국의 영토권과 특수한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전쟁에 들어가야 할 경우, 상대 조약 체결 당사국은 즉각 그 동맹국에 대한 지원에 들어갈 것이며, 나아가 공동으로 전쟁을 수행하고 상호 합의 하에 강화를 맺을 것이다.’(1905년 영·일 동맹 조약 제2조)

‘일본은 한국에서 정치·군사·경제적으로 최우선적인 권리를 차지하고 있으므로, 영국은 모든 국가의 상공업에 대한 기회 균등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일본이 한국에서 그런 권리를 보호, 주창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적절한 지도·통제·보호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한다.’(〃 제3조)

미국에 대한 일본의 군사 지원 지역을 전 세계로 확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 개정을 놓고 일본의 한반도 내 영향력을 강화한 결과를 초래한 1905년 제2차 영·일 동맹을 연상시킨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열강의 각축전이 치열하지만 ‘한국 외교’가 ‘실종’됐다는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한반도의 운명이 강대국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됐던 뼈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자아도취’에서 벗어나 전략적·적극적 실리 외교를 추구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미·중·일·러 한반도 주변 4강 외교 기반이 흔들리는 시점에서 북한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문이 많지만 이에 대한 전망은 불투명하다.

◆“미·일 가이드라인=110년 전 영·일동맹의 재연”

1902년의 영·일 동맹 조약을 개정한 1905년 제2차 영·일 동맹 조약을 통해 일본은 동맹 적용 범위를 인도까지 확대해 달라는 영국의 요구를 수용하는 대신 한반도 ‘보호권’을 인정받는 실익을 챙겼다. 강성학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는 저서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사무라이’에서 1905년 영·일 동맹 조약은 단순히 1902년 조약의 갱신이 아니라 ‘완전히 공수 동맹 조약’이며, ‘당사국 중 하나가 제3국에 의해 공격을 받으면 다른 당사국은 제4국이 제3국을 지원하지 않은 경우조차도 즉각적으로 도움을 줄 의무를 지니는 것’으로 평가했다. 이 조약을 계기로 일본의 한반도 내 특권은 더 확대되고 강화된다. 석 달 뒤 체결된 을사늑약의 전조였던 셈이다.

영국이 동북아 지역 내 러시아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을 끌어들인 1905년의 상황은 미국이 중국을 사실상 잠재적인 적으로 간주하고 일본과의 동맹을 강화한 2015년 상황과 놀라울 정도로 흡사하다. 이번에 개정된 신(新) 미·일 가이드라인은 ▲외부의 무력 공격이 있거나 예상되는 경우 공동 대응 ▲일본이 아닌 제3국이 공격을 받는 경우 해당 국가 주권을 고려해 미·일이 공동 대응 ▲자위대의 전 세계적 미군 후방활동 지원 등을 골자로 한다. 이 같은 내용을 놓고 중국 견제를 위한 일본의 군사력 증강에 따른 한반도 주변국의 군비 경쟁 심화, 한반도 유사시 일본 자위대의 개입 등 부작용을 염려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안일한 현실 인식… ‘귀 닫은 정부’


정부는 유사시 자위대의 한반도 개입은 어떤 경우에도 우리 정부의 요청이나 사전 동의가 있어야 한다며 펄쩍 뛰지만 국제관계 전문가들은 사태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 전직 고위 외교 관료는 “이번 미·일 가이드라인은 1905년 영·일 동맹이 재연된 것이나 다름없다”며 “우리와 역대 최강의 동맹관계를 맺고 있다는 미국은 아시아에서 안보 파트너로 우리가 아닌 일본 손을 확실히 들어줬고, 중국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논란 과정에서 한국이 결정적 순간에 미국 편을 든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미·중 양쪽에서 ‘신뢰’를 잃었다는 얘기다. 대일 관계는 처참한 수준이고 대러 관계는 관심권에서 살짝 비켜나 겉돌고 있다.

정부 안팎에서 외교 전략 부재를 질타하는 소리가 크지만 청와대와 정부는 귀를 닫은 모습이다. 4일 진행된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한국 외교가 소외된 것 아니냐는 지적에 이어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주장까지 나올 지경에 이르렀으나 정부는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날 수석비서관 회의 주재로 공식 활동을 재개한 박근혜 대통령은 한·미 원자력 협상 타결 등을 ‘외교적 성과’로 거론했을 뿐 대미·대일 외교 실패라는 비판과 우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피해갔다. 전직 고위 관료는 “박 대통령의 중남미 순방기간 동안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반둥회의에 참석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양자회담을 했다”며 “대통령의 상황 인식이 바람직한지 의문이고 보신주의에 능한 외교 관료들이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고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김민서 기자 spice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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