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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초등생의 ‘잔혹 동시’ 충격…그것을 책으로 낸 어른들

입력 : 2015-05-04 18:05:37 수정 : 2015-05-05 00: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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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에 가고 싶지 않을 땐
엄마를 ××먹어 ××먹어’
피 범벅 삽화까지 섬뜩
학부모·교사들 우려 커
출판사 “작가 의도 존중, 예술로 판단” 황당 해명
학원에 가고 싶지 않을 땐/ 이렇게// 엄마를 씹어 먹어/ 삶아 먹고 구워 먹어/ 눈깔을 파먹어(‘학원 가기 싫은 날’ 중)

초등학생이 펴낸 동시집에 실린 시(사진)의 일부다. 초등학생의 시라고 보기엔 내용이 너무 폭력적이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대다수 학부모와 교사들은 “섬뜩하다”면서 고개를 가로저었으나 또래 아이들 사이에선 “무섭지만 심정은 이해가 된다”는 반응도 나왔다. 출판사는 어린 작가의 의도를 생각해 가감 없이 실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출간된 이모(10)양의 동시집에 수록된 ‘학원 가기 싫은 날’에는 여자아이가 쓰러진 어머니로 보이는 여성 옆에서 입가에 피를 묻히고 심장을 먹고 있는 삽화가 곁들여져 있다. 이 책의 주 독자층은 초등학생들이다.
동시집 ‘솔로강아지’ 중 ‘학원 가기 싫은 날’

학부모인 강모(33·여)씨는 “초등학생 아이를 둔 엄마의 입장에서 시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며 “내 아이에게는 절대로 읽히고 싶지 않은 책”이라고 잘라 말했다. 김모(35)씨도 “학부모 상담을 위해 학교를 찾았는데 담임선생님이 나를 상어로 묘사한 아들의 그림을 보여준 적이 있다”며 “그때도 실망감이 들었지만 이렇게까지 묘사할 정도라면 미디어를 끊고 시골로 이사라도 가야 하나 싶다”고 허탈해했다.
자유가 없는 아이들. 세계일보 자료

성인 작가가 그린 삽화도 도마 위에 올랐다. 서울시내 한 초등학교 교사 김모(28·여)씨는 “시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삽화를 누가 그렸는지 궁금하다. 어른이 그린 것으로 보이는데 굳이 이렇게 자극적으로 출간했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반면 또래 학생들은 “무섭지만 어느 정도는 공감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모(13)군은 “그림을 보고 소름이 돋았지만 내용은 공감이 된다”며 “얼마나 학원에 가기 싫었으면 저런 글을 썼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출판사 측은 “작가의 의도를 존중했으며, 예술로서 발표의 장이 확보돼야 한다는 판단으로 출간했다”고 말했다.

이 시집을 발간한 김숙분 발행인은 “성인 동시 작가가 어린이를 위해 썼다면 출간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어린이가 자기의 이야기를 쓴 책이기 때문에 가감 없이 출간했다”고 말했다.

이어 “시집에 실린 모든 작품에 조금도 수정을 가하지 않았고, 여기에 실린 시들은 섬뜩하지만 예술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 발행인은 삽화에 대해서도 “글이 작가의 고유한 영역인 만큼 그림을 그리는 화가도 자기 영역이 있다고 판단해 존중했다”면서 “이것을 보고 시대의 슬픈 자화상을 발견하고 어른들의 잘못된 교육에 대해 반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양의 어머니는 “그 시를 읽고는 아이가 다니기 싫어하는 학원에는 더 이상 보내지 않았다”며 “이렇게 싫어하는 줄은 나 역시 알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어 “시가 아니고 다른 방식으로 이런 말을 들었다면 엄마로서 화를 냈을 것”이라며 “하지만 시는 시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딸은 이전에도 많은 시를 썼으며, 다른 아름다운 시도 많은데 이 시만 가지고 논란이 불거지는 것은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이우중 기자 lo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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