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독으로 피로하겠지만 박 대통령은 국정 공백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조치부터 취해야 한다. 박 대통령이 해외 출장 중 이완구 총리의 사의를 수용한다고 한 만큼 이 총리 사퇴는 시간 끌 일이 아니다. 정부조직법상 2인자인 국무총리의 부재로 정국이 흔들릴 수도 있다. 이런 비상시국일수록 긴 눈으로 국민을 보고 가는 정치를 펴야 한다. 안보에 틈이 생기지 않도록, 경제가 위축되지 않도록 내각의 고삐를 단단히 좨야 한다.
박 대통령은 귀국 다음날 국무회의에서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할 것으로 전해진다. 이제까지 박 대통령의 방식과 화법으로 봐서 그 가능성은 커 보인다. 하지만 그게 최선인지 의문이다. 성완종 사건은 다른 것도 아닌 현 정권 실력자들의 도덕성과 연관돼 있다. 박 대통령의 정체성·정치적 기반 등과 무관할 수 없다. 이번만큼은 국민 앞에서 직접 사과하고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 옳다. 그것은 현직 총리 부재라는 엄중한 시국을 어떻게 보고, 성완종 사건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에 대해 국민에게 설명하는 자리여야 한다.
박 대통령은 성완종 사건 이후 정치개혁의 카드를 내보였다. 이를 이루는 전제조건은 성역 없는 수사다. 현 정권의 실력자에 대해선 수사를 대충하면서 야당 의원에게로 표적이 이동하면 국민적 공감대를 쉽게 얻어내기 어렵다. 전화위복의 디딤돌을 놓자면 읍참마속의 결기가 필요하다. 엄정한 수사를 위해 야당이 제안한 특검안에 대해서도 허심탄회하게 논의해야 할 것이다.
여야는 당장 눈앞에 다가온 4·29 재보선의 유불리에 신경이 곤두서 있다. 이번 재보선으로 여당의 국회 과반수가 위험해지는 것도 아니다. 박 대통령은 정파적 이해관계를 넘어서야 한다. 박 대통령은 차제에 사회 전반의 비리와 적폐를 들어내고 개혁의 주춧돌을 놓겠다고 공언했다. 크게 보지 않고 멀리 보지 않으면 이뤄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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