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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레드'서는 정보석 "난 아직 아마추어 배우"

입력 : 2015-04-26 14:54:31 수정 : 2015-04-26 14:5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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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웃고 있어도 웃는 게 아니에요. 잠을 못 자요. 자다가 눈 뜨고 자다가 눈 뜨고 심각해요. 이런 연극을 택한 저한테 막 욕도 해요. 바보같은 xx 이러면서.”

배우 정보석(53)은 요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곧 막이 오를 연극 ‘레드’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십몇년 동안 빨간 차를 타고, 몸에 꼭 빨간색을 지닐만큼 빨강을 좋아했는데 이제 레드는 저한테 고통”이라고 말할까. ‘지붕뚫고 하이킥’의 주얼리 정에서 ‘자이언트’의 조필연, 최근작 ‘장밋빛 연인들’의 백만종까지 수십년간 대중을 울고 웃겨온 그다. 어딘지 엄살같지만 그의 말을 들어보면 납득이 간다.

‘레드’는 추상표현주의 화가 마크 로스코와 제자 켄이 등장하는 2인극이다. 1958년 로스코가 뉴욕 포시즌 레스토랑의 벽화를 의뢰받았다 계약을 파기한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푼다. 정보석은 2011년 이 연극을 보고 강렬한 감동을 맛봤다. 이전 세대와 뒷 세대의 충돌이 남 얘기같지 않았다. 그 역시 배우로서 맡는 역할의 범위가 달라지고 후배들이 옛 자리를 차지하면 속상했다. 연극 기획사에 ‘나도 연기해보고 싶다’고 말해놓았다. 그런데 인연이 닿아 막상 연습해보니 “어우∼무슨 이런 인간이 있나” 싶다.

“관객으로서 이 연극을 보면 재밌어요. 그런데 로스코는 도(道)가 튼 사람 같아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을 흡인하는 힘을 지녔어요. 이런 사람을 연기하려니 힘들죠. 난 도에 들어서지조차 않았는데.”

그는 얼마 전 로스코의 그림을 직접 봤다. 오히려 연기하기가 힘들어졌다. 안 봤으면 ‘현학적으로 자기 주장을 한 화가’쯤으로 치부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림들을 보니 ‘로스코는 자기가 아는 걸 정확하게 전하고 싶어서 최대한 비슷한 말을 끌어 쓰면서도 전달이 안 돼 답답해했을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는 그림을 형태로 본 게 아니라 내 철학이자 삶, 내 자신으로 보고 표현했어요. 그 생각이 무엇일까, 그게 어려워요.”

로스코가 화폭에 삶을 담았다면 정보석은 연기에 자신을 투영한다. 로스코만큼이나 정보석이 걸어온 삶도 흥미롭다. 그는 고교 시절 운동선수였으나 부상으로 그만 뒀다. 방황을 거듭하다 잡은 책이 읽지 않고 모셔둔 셰익스피어 전집이다.

“중학교 1학년 때 샀어요. 학교에 가는데 책 하나가 아침 햇살을 받아 너무너무 이쁜 거예요. 1970년대 초반에 정가가 1만2000원이었으니 아주 비쌌죠. 할부로 질렀어요. 고등학교 때 가출하면서도 그 책은 꼭 챙겨 갔어요.”

할 일이 없어 읽은 셰익스피어는 그를 연기로 이끌었다. 중앙대 연극영화과에서 연출을 전공했다. 졸업 작품에서 연기를 못해서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1986년 첫 TV드라마 연기에 대한 평도 참담했다. 오기가 생겼다. “처음 연기 시작한 10년간은 대본을 잡으면 잠을 안 잤다”고 한다.

“그 때 영상을 보면 뼈밖에 없어요. 예민해져서 먹지도 못하고 잠도 못 잤어요. 대본을 받으면 느낌과 연기 방향을 일일이 써놓아 종이가 총천연색이었어요. 학문적으로 접근하니 연기가 경직돼 있었죠. 그렇게라도 안 하면 연기할 수가 없었어요. 재능도 없고 연기도 정말 못 했으니까요. 그러다가 2000년대 들어서면서 연기를 좀 쉽게 볼 수 있게 됐어요.”

연기에 대한 그의 자기 평가는 엄격하다. 그는 “전 지금도 (성장하는) 과정 중에 있다”며 “예리하게 보시는 분들은 제 연기가 과하다고 하시는데 굉장히 정확하게 보신 것”이라고 끄덕였다. 요즘 그가 연기를 위해 갈고닦는 건 “스스로 삶에 좀더 진실되고, 진짜로 살려는 노력”이다. 삶과 자신, 연기가 별개가 아니라 보기 때문이다.

“저는 배우로서 아직 아마추어에요. 작품이 지닌 캐릭터보다 조금 더 연기하는 것도 일종의 아마추어리즘이죠. 프로란 의식되지 않은 거에요. 연기 자체로서 삶인 거죠. 그러니 연기 공부의 가장 큰 핵심은 ‘내가 어떻게 사는가’ 같아요.”

삶이 곧 연기라 여기는 그는 ‘레드’를 통해서도 “석달이나 연습하고 공연하니 뭐가 달라져 있지 않겠는가”라고 했다.

“인터뷰를 하다보니, 얘기하면서도 문득 ‘음? 어?’하고 예전의 저와 다른 모습이 느껴져요. 단어 선택이 달라지고, 더 성숙한 느낌이네요.”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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