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사진만 전하던 삼국지연의도 실물확인…민박 ‘김태곤 특별전’

입력 : 2015-04-23 10:18:18 수정 : 2015-04-23 10:18:18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김태곤이 굿을 벌이는 현장에서 녹음하고 있는 모습. 녹음 장비를 앞에 두고 앉아 있는 이가 김태곤이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무당은 굿이 끝나면 무구(巫具)를 태워버린다. 종교적인 기능이 끝났다고 보기 때문이다. 무당을 설득해 태우지 못하게 하고 무구를 수집하는 이가 있었다. 때로는 무당과 ‘수양엄마’, ‘수양누나’의 인연을 맺어 수집에 열을 올렸다. 남강 김태곤은 그렇게 수만점의 무속 자료를 모았다. 어렵게 모은 자료였지만, 학자들이 흔히 그러듯 독점하지 않았다. 재직했던 학교의 박물관에 내놨다. 1996년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정성스럽게 자료를 보관해왔던 유족은 2012년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했다.

국립민속박물관이 6월22일까지 개최하는 특별전 ‘민속학자 김태곤이 본 한국무속’은 김태곤의 수집품을 정리하고 연구해 대중에게 공개하는 자리다. 수만점의 기증품 속에서 사진으로만 전해지던 무속화를 발견했고, 서툴지만 신실했던 민중의 신앙심을 엿볼 수 있는 자료를 얻었다.

◆사진으로만 전하던 ‘삼국지연의도’ 실물로 확인
소설 ‘삼국지’에서 조운이 황충을 구한 장면을 묘사한 그림. 동관왕묘에 걸려 있었으나 행방을 모른 채 사진으로만 전해지다가 김태곤의 기증품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실물이 발견됐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동관왕묘(보물 142호)는 관우에게 제사를 올리던 곳이었다. 관우는 장군신, 재복신(財福神)으로 숭배됐다. 이곳에 소설 ‘삼국지’의 주요 장면을 그린 ‘삼국지연의도’가 걸려 있었다. 하지만 그림은 1920년대 발간된 노르베르트 베버의 ‘고요한 아침의 나라’, 안드레 에카르트의 ‘조선미술사‘에 사진으로만 전해지고 있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김태곤의 기증품에 포함된 삼국지연의도 4점을 보존처리한 결과 두 책에서 전하던 그림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거한수조운구황충’(據漢水趙雲救黃忠·조운이 한수에서 황충을 구하다)은 베버의 책에 실린 사진과, ‘장장군대료장판교’(張將軍大鬧長板橋·장비가 장판교에서 조조 군사를 꾸짖다)는 에카르트 책에 실린 것과 같았다. 나머지 두 점도 동일 계열의 그림으로 판단해 4점의 ‘삼국지연의도’는 동관왕묘에 걸렸던 그림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가로 133㎝, 세로 230㎝의 대형 그림은 감상용으로도 제격이다.

신위(神位)에서는 민중의 소박한 신앙심이 읽힌다. 전시된 신위 중 ‘三拂諸譯’(삼불제역)이라고 쓰인 것이 있다. ‘三佛帝釋’(삼불제석·인간의 재복, 수명, 잉태를 담당하는 신)을 잘못 쓴 것이다. ‘西可世尊’(서가세존) 신위도 마찬가지다. ‘釋迦世尊’(석가세존)이 맞다. 한자에 익숙지 않아도 어떻게든 제대로 형식을 갖춘 신앙심을 표현하고 싶었던 민중들이 애를 쓴 흔적이다.

1972년을 끝으로 중단되었다가 1983년 복원할 때 고증 자료로 쓴인 ‘남이장군사당제’의 영상, 사진 자료도 만날 수 있다. 남이장군사당제는 1999년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20호로 지정됐다. 뒷면에 ‘황춘성 그림 ’이라고 적힌 ‘관운장군도’, ‘정전부인도’, ‘황금역사금이신장도’는 무신도(巫神圖)가 좀처럼 제작자를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국립민속박물관 장장식 학예연구관은 “무신도는 그림을 그리는 승려, 떠돌이 화가 등이 주로 그렸기 때문에 제작자를 알기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고집스런 학자의 자료 공유
무속인들이 사용했던 무신도.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전시장 초입에는 낡은 종이 여러 장이 전시돼 있다. 한 장을 들여다 보니 “돼지를 칼로 찔러서 거꾸로 세움”, “빈다(절을 하고)”, “돈을 놓음(돼지 등위에)”이라고 휘갈겨 썼다. 굿의 순서를 적어놓은 것 같다. 종이는 김태곤의 조사노트다. 그는 동료학자들조차 무속 자료를 모으는 것에 마뜩치 않아 하던 시절 노트 하나를 버리지 않을 정도로 고집스럽고 꼼꼼하게 수집에 열중했고, 이를 공유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김태곤이 무속 연구를 시작한 것은 1959년. 전국을 돌며 현장조사를 벌였고, 북한의 무속은 월남한 무속인들을 만나 연구했다. 말년에는 시베리아, 몽골 등을 방문해 우리 무속과의 관련성을 파헤쳤다. 현장을 돌며 모은 자료 수만점을 여러 차례에 걸쳐 박물관에 기증했다. 1978년 606점을 원광대 박물관에, 1995년에는 몽골, 야쿠츠크 등의 국외 자료 474점을 경희대 박물관에 내놨다.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한 것은 3만1000여점으로 국립민속박물관 개인 기증자 중에는 가장 많다. 국립민속박물관 관계자들은 그가 세상을 떠난 후 부인 손장연씨의 세심한 노력 덕분에 수집품의 대부분이 좋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손씨는 자택에 항온항습기를 설치해 자료 보전에 신경을 썼다.

장 연구관은 “김태곤 선생은 소멸해가는 자료를 모아 ‘무속박물관’을 건립하는 꿈을 꿨었다”며 “무신도나 녹음자료로 쓰였던 릴테이프 등은 소중한 가치를 가진다”고 평가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제나 '깜찍하게'
  • 정은지 '해맑은 미소'
  • 에스파 카리나 '여신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