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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의문학노트] 양철북의 행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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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4-17 21:38:08 수정 : 2015-04-17 21:3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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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양심 일깨운 귄터 그라스처럼
부조리한 세상 향해 경종의 북소리 울릴
우리시대 양철북은 정녕 없는 건가요
오스카는 세 살 때 스스로 성장을 멈추기로 작정한 존재다. 육체의 성장은 포기했지만 정신조차 미숙한 건 아니다. 태어날 때 이미 정신적 성장이 완결된 총명한 갓난아기였다. 태어나 보니 60와트 전구 아래 나방이 북 치는 소리를 내는 고독한 풍경이었다. 아이는 인생을 시작하기도 전에 삶에 대한 욕망을 잃어버려 다시 자궁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이미 탯줄을 잘라버린 뒤라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어머니가 세 번째 생일날 양철북을 선물해주겠다는 말이 위안이었다.

오스카는 세 살 때 양철북을 받았고 어머니의 불륜을 목격하면서 더 이상 크지 않기로 작정해 지하실로 굴러 떨어진다. 세상에 대한 혐오가 그렇게 만들었다. 이후 오스카는 부조리한 현실에 부딪쳐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를 때마다 미친 듯이 북을 두드린다. 누군가 그에게서 북을 빼앗으려 하면 고성을 지르는데 그 소리는 주변 유리창을 깨는 파괴력을 발휘한다. 양철북은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오스카의 일부가 되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주초(13일)에 타계한 독일의 양심 귄터 그라스(1927∼2015)의 대표작 ‘양철북’에 대해 말하는 중이다. 그라스는 독일의 1차 세계대전 패배의 상징인 단치히 자유시에서 태어나 청년기에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현대사를 통과했다. 이 과정을 고스란히 소설로 담아낸 작품이 20세기 마지막 해에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양철북’이다. 단치히를 무대로 독일의 파행적인 20세기 초·중반의 역사를 통렬한 반어와 역설과 풍자로 담아내 전후 세계문단에서 열광적인 호응을 얻었다. 한편에서는 신성 모독이요 지나치게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격렬한 거부감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이 작품이 생산된 1959년 이후 전개된 자유로운 풍조를 감안하면 작가의 선견지명이 오히려 돋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오스카의 양철북은 행진곡이나 찬가를 다른 리듬으로 변형시켜 행진이나 분열식을 망가뜨리고 연설까지 헷갈리게 만들어 히틀러의 선동에 부화뇌동하는 단치히 시민들의 집회를 예닐곱 차례나 망치게 한다. 어머니는 목요일마다 시내로 오스카를 데려가 불륜의 공범자로 만들고 토요일에는 가톨릭 교회의 차가운 타일 바닥으로 그를 데리고 갔다. 성당에서는 오스카가 직접 양철북을 두드리지 않았다. 성모상 아래 소년 예수의 목에 자신의 북을 벗어 걸어주고 북채를 쥐어주었다. 직접 시범까지 보였지만 소년 예수에게서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신은 응답하지 않았다. 그라스는 오스카의 입을 빌려 말한다.

“나를 닮긴 했으나 가짜이므로 무덤 속으로나 들어가야 할 그와는 이제 작별이다. 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북을 칠 것이다. 다만 기적 같은 건 더 이상 바라지 않을 것이다.”

신성 모독의 빌미를 충분히 제공하는 대목이지만 적어도 작가 귄터 그라스는 오스카의 이 다짐을 죽을 때까지 방기하지 않았다. 전후 독일 사회에 “그 모든 행위와 범죄들을 끊임없는 야옹 소리와 함께 과거의 역사로 돌려버리려는 고양이”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과거 역사에 대한 철저한 반성을 촉구했다. 그이 또한 17살에 나치 친위대에 입대하여 복무했던 사실을 후일 회고록 ‘양파 껍질을 벗기며’에 고백하면서 양심의 재판대에 스스로 올라갔다. 그는 이스라엘의 핵이야말로 세계평화를 저해하는 것인데 나치의 범죄와 반유대주의라는 비판이 두려워 이스라엘을 비난하지 못했다고 반성하기도 했다. 숨길 게 없고 비판하지 못할 성역도 존재하지 않았다.

한국 사회에도 양철북을 두드려 세상에 경종을 울리고 대중을 위무하던 지성과 양심의 사표가 살아 있던 시절이 있었다. 이를테면 말년에 보수 시비에 휘말리긴 했지만 김수환 추기경의 발언은 민주화운동 국면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둔중한 북소리였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거릴 만한 문인들도 그러한 역할을 했고 받아들여지던 시절이 있었다. 이즈음은 누가 무슨 말을 하든 공허하게 소음으로 흩어지는 양상이다. 오스카는 아비를 묻기 위해 파놓은 구덩이에 북을 버렸다. 우리 시대 양철북은 어디에 버려져 있을까. 진영논리의 블랙홀일까, 분열과 무관심의 무덤 속일까.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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