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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괴는 것 하나도 정성… 완공 땐 보람”

입력 : 2015-04-17 19:42:53 수정 : 2015-04-18 01:3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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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근로자 사연공모전’ 당선 72명 제주 나들이 “여기 오니 먼지 안 먹어서 살 것 같네요.”

밀감밭이 노랗게 익은 지난 15일 밭을 돌아다니며 연신 사진을 찍던 오숙자(57·여)씨가 ‘제주도 바람’을 들이마시며 말했다. 오씨는 전남 광주에서 7년째 일용직 건설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공사현장에서 청소를 도맡아 하는 오씨는 먼지 마시는 것과 화장실 청소가 가장 힘들다고 털어놨다.

오씨는 “요즘에는 한국 인부들만 있는 게 아니라 중국이나 동남아에서 온 인부들도 많다”며 “위생 개념이 부족해 공사현장 아무 데나 대변을 봐 코를 쥐고 청소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오씨 얘기를 듣던 또 다른 일용직 건설노동자 윤성복(65)씨가 “아, 그럴땐 말렸다가 삽으로 뜨면 똑 떨어지지”라고 받아쳤다. 조용했던 밀감밭이 웃음바다가 됐다.

15일 제주도 천제연 폭포 앞에서 건설근로자 가족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건설근로자공제회 제공
건설현장에 몸담고 있는 72명의 건설근로자와 그의 가족들이 지난 14일부터 2박3일간 일용직에게는 꿈만 같은 제주도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고용노동부 산하 건설근로자공제회의 ‘건설근로자 사연공모전’을 통해 뽑힌 이들이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이들은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을 나누며 금세 가까워졌다.

30년째 건설노동자로 일하는 김정식(61)씨의 아내 전창순(56)씨는 “5시에 별 보면서 나가는 거 보면 마음이 짠하다”며 “집에 와서 별 말을 안 하니 이 사람이 아픈지 힘든지 알 수가 없고, 흐린 날이면 걱정이 많이 된다”고 말했다.

40년째 공사현장에서 일해온 윤씨는 “우리들은 현장만 만들어지면 전국 어디든 간다”며 “타지에서 먹고 자는 게 일상이라 가족들과 많이 떨어져 지낸다”고 말했다. 그는 “남들이 ‘노가다꾼’이라고 우습게 보지만 돈만 생각하면 이 일을 오래할 수 없다”며 “건물 올라가는 것 보면서 자부심 느끼고 돌 괴는 것 하나에 정성을 다해야 시간도 빨리가고 일도 즐겁다”고 말했다.

현장의 고단함 말고 이들이 겪는 어려움은 또 있었다. ‘일용직’이라는 특성상 주먹구구식으로 이루어지는 행정처리, 정보의 부족 등이 문제로 꼽혔다.

3년 전부터 설비업을 이어온 박인규(55)씨는 “근로명세서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 문제”라며 “분명히 세금은 내는데 어디에 얼만큼 내는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박씨는 “명세서를 달라고 회사에다 말을 하면 눈치가 보인다”며 “공사현장에는 소장·반장과 인부들의 갑을 관계가 뚜렷해 잘못 찍히면 일을 안 준다”고 말했다.

박씨의 아내 정영숙(47)씨는 “우리는 글이라도 쓸 줄 알아 이렇게 사연 공모전에 응모라도 했는데, 글 모르는 분들은 이런 여행도 못 온다”며 “가족 없고 하루 일당 못 벌까봐 무서워 못 오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제주=이지수 기자 v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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