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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디지털시대의 지식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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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4-17 21:32:03 수정 : 2015-04-17 22: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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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책을 연결시켜 주는 전자책
독자에 맞는 지식저장고 구축 가능
책 만드는 입장에서는 디지털 시대의 콘텐츠를 생산하는 일이 새로운 난제다. 전자책이니 앱북이니 기존 방식의 종이책 만들기와는 차원이 달라 시행착오가 많다. 사실 콘텐츠 제작에 앞서 곤혹스러운 것은 독자가 누구인지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희뿌연 바다 가운데 배를 띄우는 심정이랄까.

종이책은 가상의 독자 한 사람을 선명하게 떠올리면서 만들어왔다. 전자책의 독자는 누구인가. 우선 종이매체가 아닌 웹이다 보니 젊은 층이 선호할 것이라는 편견이 작용한다. 주제나 소재의 세분화를 떠나 젊은 독자를 상상하게 한다. 문제는 젊은 독자의 경우 무료 정보나 단편 지식을 제공하는 웹이 거의 무한정 열려 있는 세계에 익숙하다는 것이다. 전자책을 즐기라고 하기에는 경제적인 문제도 만만치 않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시인
이래저래 전자책 만드는 일의 난감함 속을 헤매다가 며칠 전 도쿄 히토츠바시대학교 강당에서 열린 ‘전자독서의 가능성’ 심포지엄에 다녀왔다. 이 심포지엄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전자책 제작의 신기술이나 미래 전망 등이 아니었다. 바로 ‘읽기’로서 전자책에 대한 것이었다. 박사 논문을 쓰기 위해 온갖 논문과 학술 서적을 전자책으로 읽었던 한 도쿄대 정치학 전공자 발표는 막연한 내 걱정과 감상을 거두어 갔다. 검색과 간단 정보, 단편적인 지식이 만연한 디지털 시대에 독서의 가능성을 우려하던 내게 ‘지식 편집’의 의미는 새로웠다.

출판사는 저자 원고에 편집력을 발휘해 하나의 세계가 온전히 담긴 책을 낸다고 믿고 있다. 그런데 독자 입장에서 한 권의 책은 해당 지식의 부분일 수 있다. 결국 책과 책은 연결돼 거대한 지식의 세계를 이루어간다. 발표자는 자신이 써야 할 논문 주제를 중심으로 횡적, 종적으로 책 목록과 주요 부분을 편집, 인용해 개인적인 아카이브를 구축하며 이른바 지적인 연마를 했다고 고백했다.

아직 한국에서 상용되지 않은, 전자책 독서 프로그램인 ‘무위’(wuwei) 도움으로 지식을 쉽게 자신만의 방식대로 편집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종이책의 부피감과 찾아보기의 어려움 등을 뛰어넘은 전자책의 날렵한 매체 특성을 잘 관리하면서 자신만의 독서 편집, 지식 로드맵을 그렸던 것이다. 책의 맥락과 친연성, 깊이와 넓이를 아우를 수 있었다는 것.

전자책 독서를 종이책 독서보다 폄하하고 가볍게 여겼던 출판인으로서 나는 생각을 수정했다. 다변하고 복잡한 현대사회의 지식을 체계적으로 편집하는 힘은 독자의 능력과 주체성에 달려 있다. 아날로그 방식의 독서 카드를 만들어 읽은 책과 읽어야 할 책의 지도 그리기를 했던 추억도 떠올랐다. 한 권의 책이 또 다른 책을 불러오는 마법의 독서 카드였다. 책 한 권에서 비롯한 질문에 다른 책이 답을 하기도 했다.

디지털 시대, 지식의 연마나 전달의 새로운 풍경을 보며 나는 희망을 품게 됐다. 전자책 독서의 새로움이 있다면 만들기에도 희망이 있는 법. 개인적인 아카이브를 만들어 나갈 인문교양서 독자에게 앞으로 어떤 책을 안겨줄 것인가. 원대한 직업적인 책임감과 소망이 솟았다.

“독서 속에서 상상력의 발휘뿐만 아니라 독서라는 행위 그 자체에 대해서도 다양한 상상력이 요구되는 현재, 그야말로 카오스 속에서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시점이 아닐까요.”

발표자는 우리 시대의 전자책 독서 행위에 대한 즐거움, 지식 편집의 새로움을 이렇게 표현했다.

세상은 끝날 때까지 끝나는 게 아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이 필요하고 그 지식의 연마는 다양한 책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단편 정보가 아닌 체계적인 책을 통해 얻는 지식은 전자책 시대에도 가치를 발휘할 것이다. 디지털 시대는 결코 가볍기만 한 휘발성 문화를 만들지 않았다. 보다 주체적인 독자를 필요로 할 뿐이다. 그리하여 우리 시대의 지식 편집은 더욱 정교하고 매력적으로 이뤄질 것이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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