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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바닷바람에 춤추는 ‘노란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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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4-17 06:00:00 수정 : 2015-04-17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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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채꽃 활짝 핀 남해 다랭이마을
‘다랑논’은 바닷가 가파른 산비탈을 깎아 만든 논이다. 그 척박한 땅에 심은 노란 유채꽃이 바닷바람에 넘실거린다.
얼마 전 한 케이블TV에서 인기리에 방송됐던 어촌체험 프로그램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바다는 풍요로운 곳이다. 애써 씨를 심어 작물을 키워내야만 하는 땅과는 달리 알아서 자라는 산물들이 지천이다. 하지만 바다는 그 풍요를 담보해주지는 않는다. 날씨가 좋지 않거나, 심지어 좋을 때라도 먹을 것 하나 구해오지 못할 수도 있다. 바다는 풍요롭지만 척박한, 아이로니컬한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다를 접하고 사는 사람들도 땅에 빚을 질 수밖에 없었다. 해풍이 불어오는 땅을 일구고, 척박한 땅에 맞는 씨를 뿌렸다. 그렇게 생겨난 것이 남해바다의 명물인 ‘다랑논’이다. 그 다랑논에 유채꽃이 활짝 피었다. 바다 사람들의 억척스러움이 만들어낸 포근하면서도 아름다운 광경이다.
다랭이마을은 바닷가 가파른 산비탈에 자리 잡은 소박한 마을이다. 그 마을 주변을 척박한 땅을 깎아 만든 수백개의 다랑논이 둘러싸고 있다.

다랑논 유채꽃밭 사이로 조성된 산책로.
다랑논과 유채꽃밭을 만나러 떠난 곳은 경상남도 남해군 가천마을이다. 아예 ‘다랭이마을’로 불리는 곳으로, 다랭이논(다랑논의 방언)과 바다가 어우러진 수려한 풍경으로 국가명승지로 지정됐다. 남해까지 멀고 먼 길을 도착해 다랭이마을에 첫발을 내디딘 순간 경탄부터 하게 된다. 
깎아지른 듯한 급경사 산비탈에 소박한 마을이 있고, 그 마을을 둘러싸고 크고 작은 논밭들이 계단식으로 늘어서 있다. 경사가 급한 산비탈을 파낸 후 땅을 골라 전답을 만들고, 90도로 곧추 세운 석축을 쌓아 그 위에 또 하나의 논을 만드는 식이다. 그 전체 개수가 계단 108개, 논 680여개에 달한다. ‘이걸 만들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유채꽃이 피는 4월 다랑논은 바다와 흙, 꽃내음이 함께하는 특별한 공간이다.

4월엔 이 다랑논에 유채꽃이 한창이다. 노란 꽃이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은 너무 아름답지만, 이 유채꽃도 마냥 보기 좋자고 심은 게 아니다. 마을 사람들은 바닷바람이 덜한 그나마 자리 좋은 논에는 남해의 명물인 마늘을 심어놓았다. 유채는 바다에 인접한 땅에나 심었다. 해풍이 불어오는 땅에서 키울 강인한 작물로 유채가 선택된 것이다. 
그렇게 키운 유채씨에서는 기름을 짜고, 줄기로는 나물을 해먹는다. 기름을 짜고 남은 깻묵은 척박한 땅을 기름지게 해줄 비료가 된다. 이렇게 살기 위해 만든 다랑논과 유채꽃밭이지만 그 둘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풍광은 일품이다. 
다랭이마을의 해안. 바닷가 풍광도 아름답지만 이곳에 서서 바라보는 마을의 풍경은 절경이다.
마을을 이룬 가파른 비탈을 한참 내려가 바닷가 갯바위 위에 올라서서 바라보는 다랭이마을의 모습은 오랫동안 기억을 떠나지 않는다. 인간의 생존력과 대자연의 합작품에 경외심까지 든다. 유채가 어우러진 바닷가 산책로를 걷는 기분도 일품이다.
다랭이마을 암수바위. 지금도 마을 사람들에게 영험한 장소로 여겨진다.

마을의 제일 안쪽에는 다정하게 등을 기댄 거대한 바위 한 쌍이 놓여 있다. 암수바위라고 불리는 곳으로 조선 시대 이 고을 현령의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가천에 묻혀 있는 나를 일으켜 세워 달라”고 부탁해 땅을 파보니 이 바위가 나왔다는 전설이 있다. 지금도 마을에서는 영험한 장소로 꼽혀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비는 제사를 해마다 올린다. 
두모마을 유채밭. 끝없이 이어진 다랑논 위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유채꽃의 향연이 펼쳐진다.

남해에는 가천마을 말고도 다랑논으로 유명한 마을들이 많다. 두모마을도 그중 하나다. 마을과 바다, 다랑논과 유채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다랭이마을과 달리 두모마을은 그야말로 유채가 지천인 광경을 감상할 수 있다. 다랭이마을을 떠나 산비탈 국도를 따라 10분 정도 달리면 두모마을을 알리는 이정표와 마을로 내려가는 진입로가 나온다. 
두모마을 유채 풍경.
그 진입로 옆 1㎞ 정도 되는 구간에 유채를 심어놓은 수많은 다랑논들이 나타난다. 층층이 이어진 다랑논 두렁 중간에 서서 돌아보면 사방이 온통 노란색이다. 풀내음, 흙내음과 섞여 날아오는 유채 향기도 아찔하다. 

유채꽃 피는 계절만이 다랑논의 전성기는 아니다. 유채철이 끝나면 다랑논은 본격적인 농사철에 돌입한다. 그 자리에는 역시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메밀을 심는다. 가을엔 다랑논에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필 것이다. 메밀꽃이 한창인 9월의 다랭이마을과 두모마을도 4월만큼 장관이라고 한다. 언젠가 하얀 메밀꽃에 둘러싸인 남해를 꼭 보러오리라 다짐한다.

남해=글·사진 서필웅 기자 seose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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