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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 시집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입력 : 2015-04-17 02:30:48 수정 : 2015-04-17 02:3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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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하게 가슴 덥히는
잘 빚은 맑은 술 처럼
자연과 삶의 풍경 묘사
문태준(45·사진)의 새 시집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창비)에 실린 시들은 잘 빚은 맑은 술 같다. 맑다고 알코올 도수가 낮은 게 아니듯 그의 정제된 짧은 시편들도 읽는 이의 가슴을 자주 따뜻하게 짠다, 시인의 엄마처럼.

“엄마의 스웨터는 얼마나 크고 두터운지 풀어도 풀어도 그 끝이 없네 엄마는 엄마가 입던 스웨터를 풀어 누나와 나의 옷을 여러 날에 걸쳐 짜네 봄까지 엄마는 엄마의 가슴을 헐어 누나와 나의 따뜻한 가슴을 짜네”(‘두터운 스웨터’)

이 어머니는 자식들 가슴을 짜다가 ‘귓가에 조릿대 잎새 서걱대는 소리’ 들리는 아침이면 한 알 전구가 켜진 부엌에서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조리로 아침쌀을 일구었다. 시인은 그런 날 “겨울바람은 가난한 가족을 맴돌며 핥고 있다”고 ‘내 귓가에’ 썼다. 시인의 정조는 추억을 넘어서서 이 생의 자연과 죽음 너머로 이어진다.

그에게 ‘소낙비’는 “나무그늘과 나무그늘/ 비탈과 비탈/ 옥수수밭과 옥수수밭/ 사이를/ 뛰는 비”이지만 ‘가을비’는 “나를 떠나려네// 야위어서 /흰 뼈처럼 야위어서// 이젠 됐어요/ 이젠 됐어요// 보잘것없는/ 나/ 툭툭 내던지는/ 비”로 떨어진다. 한갓 빗줄기에서도 시인의 투명한 시선과 깊은 관조는 가슴을 덥힌다. 그의 관조는 생과 사를 허물어 깊어진다.

표제작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에서는 “서리가 빛에 차차 마르듯이 숨결이 마르고 있네/ 당신은 평범해지고 희미해지네/ 나는 이 세상에서 혼자의 몸이 된 당신을 보네/ 오래 잊지 말자는 말은 못하겠네/ 당신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네/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을 보네”라고 쓸쓸한 연가를 부르다가, “무덤 위에 풀이 해마다 새로이 돋고 나는 무덤 위에 돋은 당신의 구체적인 몸을 한바구니 담아가니 이제 이 무덤에는 아마도 당신이 없을 거예요”라고 짐짓 덤덤하게 ‘망실(亡失)’을 이야기한다.

추억과 죽음과 쇠멸과 생성의 시간 속에 여일한 것은 늘 그 자리 그 시간을 비추는 햇살이다. 이 투명한 생의 조건을 시인은 또한 관조한다. “서럽고 섭섭하고 기다라니 훌쭉한 햇살은 쏟아지네/ 외할머니의 흰 머리칼에 꽂은 은비녀 같은 햇살은 쏟아지네/ 이 시간에 이 햇살은 쏟아지네/ 찬 마룻바닥에 덩그러니 앉으니 따라와 바깥에 서 있네”(‘이 시간에 이 햇살은’)

이번 시집을 일별해 보면 문태준 시인이 ‘나는 내가 좋다’고 노래한 근거가 그리 과장된 것 같지는 않다. 시인은 “볍씨 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는 나의 눈이 좋다/ 물을 실어 만든 촉촉한 못자리처럼/ 눈물이 괼 줄을 아는 나의 눈이 좋다/ 슬픔을 싹틔울 줄 아는 내가 좋다”고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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