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에게 보낸 60여통 편지 담아 예술과 사랑·그리움이 절절이…
1954년 3월 경남 통영 호삼다방에서 전시회를 열었을 당시 이중섭 모습. |
양억관 옮김/현실문화/1만3800원 |
살아서는 궁핍했으나 죽어서는 신화가 된 화가. 한국이 낳은 천재 화가라는 평가를 받는 이중섭(1916∼1956)이 쓴 편지가 책으로 나왔다. 이중섭은 편지를 대부분 일본어로 썼다. 그는 6·25전쟁 중이던 1952년 일본으로 떠나 보낸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한국명 이남덕)와 가족에 대한 절절한 사랑을 글로 표현했다. 책에는 환희와 절망의 삶을 살다 간 이중섭의 예술세계, 그리고 가족을 향한 애달픈 목소리가 담긴 자필편지 60여 편이 실려 있다. 이중섭의 편지는 아내와 두 아이 태현·태성에게 보낸 게 대부분이다. 일부 지인에게 보낸 편지도 있다.
이중섭은 일본 유학 중 2년 후배인 마사코와 열애를 했다. 광복을 맞은 1945년 마사코가 원산으로 와 결혼식을 올렸다. 마사코는 이름을 이남덕으로 바꾸었다. 두 사람은 1950년 전쟁이 터지자 부산으로 피란을 갔고 이듬해 제주도 서귀포로 거처를 옮겼다. 이중섭은 가난을 견디지 못해 1952년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 마사코의 친정으로 떠나보냈다. 이때부터 편지 왕래가 시작됐다.
영양실조와 간염으로 고생하던 이중섭은 1956년 서울 서대문 적십자병원에 입원했다. 그리고 같은 해 9월6일 아무도 지켜보는 사람이 없는 가운데 쓸쓸히 숨을 거뒀다. 당시 41세였다. 사흘 후 이 사실을 안 친구들이 장례를 치르고 그의 시신을 망우리 공동묘지에 안장했다.
이중섭이 마사코에게 보낸 편지. 맨 끝에 “내 사랑하는 아내 남덕 천사 만세 만세”라는 글이 선명하다. |
“아빠는 하루라도 빨리 도쿄로 가서 엄마, 태성, 태현, 아빠 넷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일요일에는 같이 영화도 보러 가고 유원지에 놀러도 가고 교외에도 나가보고…. 아빠가 가면 반드시 태현이하고 태성이한테 자전거를 한 대씩 사줄게요. 건강하게 사이좋게 아빠를 기다려주세요. 이번에 엄마가 편지 보낼 때 태현이도 같이 써야 해요. 아빠가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럼 건강히 안녕.”
“가장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아내와 모든 것을 바쳐 하나가 되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좋은 작품을 만들어낼 수 없어요. 예술은 끝없는 사랑의 표현이라오.”
이중섭이 1954년 12월 보낸 편지 가운데 일부를 발췌한 내용들이다.
1954년 3월 경남 통영 호삼다방에서 전시회를 열었을 당시 이중섭 모습. |
이중섭이 홀로 쓸쓸히 세상을 떠난 지 60년이 다 돼 간다. 그가 남긴 편지와 그림을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비운의 삶을 살았던 한 화가의 예술혼을 이해하도록 하는 게 책 출간 목적이다. 편지를 통해 이중섭이 생의 마지막 순간 왜 음식을 거부할 정도로 절망했는지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번역자 양억관씨는 “편지에서 새로운 예술표현을 찾아 헤맨 정직한 화공이자 한 여인을 사랑한 남자였으며 두 아이를 그리워한 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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