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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끝없는 사랑의 표현이라오”

입력 : 2015-04-03 21:40:44 수정 : 2015-04-03 21:4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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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이자 한 여인의 남편, 두 아들 그리워한 아버지 이중섭
가족에게 보낸 60여통 편지 담아 예술과 사랑·그리움이 절절이…
1954년 3월 경남 통영 호삼다방에서 전시회를 열었을 당시 이중섭 모습.
양억관 옮김/현실문화/1만3800원
이중섭 편지/이중섭 지음/양억관 옮김/현실문화/1만3800원


살아서는 궁핍했으나 죽어서는 신화가 된 화가. 한국이 낳은 천재 화가라는 평가를 받는 이중섭(1916∼1956)이 쓴 편지가 책으로 나왔다. 이중섭은 편지를 대부분 일본어로 썼다. 그는 6·25전쟁 중이던 1952년 일본으로 떠나 보낸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한국명 이남덕)와 가족에 대한 절절한 사랑을 글로 표현했다. 책에는 환희와 절망의 삶을 살다 간 이중섭의 예술세계, 그리고 가족을 향한 애달픈 목소리가 담긴 자필편지 60여 편이 실려 있다. 이중섭의 편지는 아내와 두 아이 태현·태성에게 보낸 게 대부분이다. 일부 지인에게 보낸 편지도 있다.

이중섭은 일본 유학 중 2년 후배인 마사코와 열애를 했다. 광복을 맞은 1945년 마사코가 원산으로 와 결혼식을 올렸다. 마사코는 이름을 이남덕으로 바꾸었다. 두 사람은 1950년 전쟁이 터지자 부산으로 피란을 갔고 이듬해 제주도 서귀포로 거처를 옮겼다. 이중섭은 가난을 견디지 못해 1952년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 마사코의 친정으로 떠나보냈다. 이때부터 편지 왕래가 시작됐다.

영양실조와 간염으로 고생하던 이중섭은 1956년 서울 서대문 적십자병원에 입원했다. 그리고 같은 해 9월6일 아무도 지켜보는 사람이 없는 가운데 쓸쓸히 숨을 거뒀다. 당시 41세였다. 사흘 후 이 사실을 안 친구들이 장례를 치르고 그의 시신을 망우리 공동묘지에 안장했다.

이중섭이 마사코에게 보낸 편지. 맨 끝에 “내 사랑하는 아내 남덕 천사 만세 만세”라는 글이 선명하다.
“이제부터는 진지하게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의 생활 안정과 예술 완성을 위해 오로지 최선을 다할 생각이니, 예쁘고 진실되며 나의 진정한 주인인 남덕씨, 이를 굳게 믿고 마음 편안히 힘차고 즐거운 미래만을 생각하며 하루하루 행복하게 지내기를 바라오.”

“아빠는 하루라도 빨리 도쿄로 가서 엄마, 태성, 태현, 아빠 넷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일요일에는 같이 영화도 보러 가고 유원지에 놀러도 가고 교외에도 나가보고…. 아빠가 가면 반드시 태현이하고 태성이한테 자전거를 한 대씩 사줄게요. 건강하게 사이좋게 아빠를 기다려주세요. 이번에 엄마가 편지 보낼 때 태현이도 같이 써야 해요. 아빠가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럼 건강히 안녕.”

“가장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아내와 모든 것을 바쳐 하나가 되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좋은 작품을 만들어낼 수 없어요. 예술은 끝없는 사랑의 표현이라오.”

이중섭이 1954년 12월 보낸 편지 가운데 일부를 발췌한 내용들이다.

1954년 3월 경남 통영 호삼다방에서 전시회를 열었을 당시 이중섭 모습.
마사코가 남편의 편지를 처음 공개한 것은 1970년 일본에서였다. 편지들은 1980년 처음 번역된 이래 꾸준히 읽히며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공개될 당시 봉투와 편지지가 떨어져 날짜가 확인되지 않은 편지가 적지 않았던 탓에 순서가 뒤섞이고 말았다. 그래서 편지 내용은 이해하기 힘들었고 오해와 억측을 불러오기도 했다. 이 책에서 편집자는 편지를 날짜 순서에 맞게 배열하고 정리해 논란을 없애려 했다.

이중섭이 홀로 쓸쓸히 세상을 떠난 지 60년이 다 돼 간다. 그가 남긴 편지와 그림을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비운의 삶을 살았던 한 화가의 예술혼을 이해하도록 하는 게 책 출간 목적이다. 편지를 통해 이중섭이 생의 마지막 순간 왜 음식을 거부할 정도로 절망했는지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번역자 양억관씨는 “편지에서 새로운 예술표현을 찾아 헤맨 정직한 화공이자 한 여인을 사랑한 남자였으며 두 아이를 그리워한 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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