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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미의 짜이 한 잔] 욕심은 금물, 오직 자연이 허락한 그곳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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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4-03 06:00:00 수정 : 2015-04-03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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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산 위를 오르는 사람들, 산 위의 독수리들
남초호수를 가는 길은 가끔 야크 떼 때문에 기다려야 한다.
한참을 지나서 길 끝에 다다랐다. 좁은 길에서 해방되니 시야가 트인 돌산이 보였다. 흙색만 있는 산 바위에 표식이 색색의 페인트로 그려져 있다. 산을 넘어가거나 돌아가야 한단다. 

모래와 돌산만으로 이루어진 위험한 곳을 가기보다는 돌아가는 편을 택했다. 돌아가는 길도 미끄러운 산길이다. 

마침내 독수리가 날고 있던 천장대에 도착했다. 

세라사원 위에는 천장대가 있어서 독수리들이 날고 있다.
세라사원이 한눈에 들어왔다. 반대편으로 내려가는 길엔 잘 닦인 도로가 있었다. 

산 위에 지어진 세라사원을 가기 위해선 새벽부터 나서야 했다.
그래도 산을 돌고 도는 길을 택한 건 잘한 일이었다. 광활한 자연을 볼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세라사원에서 만난 사람들

천장대 모습

천장대에는 독수리가 가져가고 남은 뼈가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무슨 뼈인지 알 정도로 정확한 모양새다. 옷가지와 머리카락까지 남아 있었다. 하지만 소름 끼치거나 무섭진 않았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방식일 뿐이다. 이곳에서 만난 티베트 가족 때문에 더 그랬다. 

천장대에서 만난 가족은 누군가를 추억하며 쉬고 있었다.
그 가족은 한참을 쉬면서 이곳에서 보낸 사람에 대한 추억을 곱씹고 있는 듯했다. 이들이 생각하는 믿음에 의하면, 환생이 있기에 죽음은 끝이 아니다. 천장대를 더 정확히 묘사하면 넓은 바위에 움푹 팬 곳이 몇 군데 있어서 그곳에 시신을 넣어둔다고 한다. 
천장대에서 내려오는 길에 차 한 잔을 마신 집에서 아이가 해맑게 웃고 있다.

내려오는 길에는 할머니가 사는 집에 들렀다. 할머니는 마당에서 물을 끓이고 있다가 나를 보더니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차 한 잔을 주면서 목마른 나에게 오아시스를 선물했다. 외부인을 보기 어려운 이들에게 나도 낯선 존재였을지는 모르겠지만 따뜻한 그 손길이 참 좋았다. 마을로 내려와서 버스를 타고 다시 라싸로 향했다. 
천장대를 오르는 길은 힘들지만 장엄한 풍경을 선사한다.

라싸에서 다음 행선지를 어디로 정할지 결단을 내렸다. 바로 하늘 호수라는 ‘남초(Namtso, 나무춰)호수’다. 

남초호수를 보기 위해 오른 산 정상에서는 몽환적인 기분이 들었다.
가기 힘들며, 가더라도 보기 힘든 곳으로 알려져 있다. 운전사도 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모험만으로 끝날지 설산 위에 펼쳐진 초록빛 호수를 보는 행운이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여행객끼리 합승을 해서 차 한 대로 올라갔다. 맑은 하늘 덕에 혹시나 하는 설렘을 갖고 출발했다. 아직 2월이라서 가는 길마다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길에는 말과 염소, 야크가 떼지어 다녔다. 길에서 야크 떼를 만나면 한동안 멈춰서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던 운전사가 경적기를 눌러 덩치 큰 야크들을 놀라게 했다. 야크는 귀여운 표정으로 힐끔 뒤돌아보더니 신기하게 길을 비켜줬다.
어느 순간 눈보라가 쳐서 앞이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차가 산을 오르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기만 했다. 그런데 갑자기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눈보라가 쳐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천천히 그리고 힘차게 달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길을 헤쳐나갔다. 산 정상까지 올랐을 때도 그곳이 정상인 줄도 몰랐다. 차에서 내리니 ‘5129m’라고 쓰인 돌 윗부분만 보일 뿐 세상이 온통 하얀색이었다. 다시 찾아온 고산병 탓인지 아니면 그곳의 신비로움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이 공허한 상태에 빠져들었다. 우주의 한 공간이라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느낌이다. 
눈으로 뒤덮인 산 정상은 그림 같았다.

무한대로 뻗어가는 내 공상을 깨우는 운전사의 말에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이곳에서 내려가면 남초호수란다. 하지만 도저히 내려갈 수 없단다. 합승했던 여행객 모두 그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대지가 여기까지만 허락했다면 따라야 한다.

남초호수를 눈앞에 두고도 보지 못한 아쉬움은 전혀 없었다.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욕심을 부려서도, 미련을 가져서도 안 된다. 다른 여행객이 나를 보고 빨리 내려가자고 했다. 입술이 새파랗게 변하고 얼굴이 점점 창백해졌단다. 다른 여행 때 같았으면 이렇게 몸이 좋지 않고 고산증세 때문에 힘들면 일정을 감행하지 않았다. 티베트에서는 신체가 힘들어도 힘들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그 점이 신기했다. 극한으로 치닫는 티베트 사람들의 고행을 계속 봤기 때문일 것이라고 결론내렸다.

눈을 밟고 있는 건지, 구름을 밟고 있는 건지 헷갈리던 산에서 내려와 라싸로 돌아왔다. 티베트에는 ‘티베트창’이라고 불리는 술이 있다. 허름한 술집에서 술을 마셨다. 대나무통 같은 나무 잔에 따뜻하게 데워서 나온 술에는 빨대 하나가 꽂혀 있었다. 일행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테이블에 같이 앉아서 술을 마신다. 한참을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가게 문이 닫힌다. 어리둥절해서 나가려고 했더니, 괜찮으니까 천천히 마시란다. 

경찰이 단속하기 때문에 문은 닫았지만, 안에 있는 손님들에게는 술을 계속 주고 있었다. 나갈 때는 뒷문을 이용하면 된다고 했다. 이런 광경이 익숙한 이들은 철문을 내리는 소리에도 동요하지 않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나도 평온을 되찾고 조용히 앉아서 술을 홀짝였다. 

술은 독특한 맛이다. 나무 잔에는 곡식이 한가득 채워져 있다. 우리나라 막걸리가 생각났다. 겨울에는 막걸리를 데워서 먹을 때도 있었는데 그때 생각이 나서 혼자 심취했다. 그렇게 라싸에서 마지막 밤을 보냈다.

여행작가 grimi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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