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가 사위의 아파트를 매물로 내놓았다. 사위가 팔 생각이 있어서 장모에게 시세를 알아보라고 했나 보다. 곧 살 사람이 나타나 부동산중개사 사무실에서 계약을 하게 됐다. 그런데 장모가 사위의 위임장과 인감은 없이 예금통장만 갖고 왔다. 그래서 중개사는 사위의 의사를 확인하려고 했다. 그러나 사위는 외국유학 중이었고 그곳이 밤 시간대라 확인을 못 한 채 장모가 대리인으로서 매매대금 5억원, 계약금 6000만원에 계약서를 썼다. 계약금은 매수인이 다음 날 송금해 주기로 했다.
정병호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학 |
소유권을 취득하지 못하게 된 매수인은 사위, 장모, 중개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사위는 장모에게 대리권을 준 적이 없기에 책임이 없으나 중개사는 장모에게 대리권이 있는지 확인을 제대로 안 했기에 매수인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문제는 장모의 책임이다. 대리권이 없음에도 대리인으로 나서 매도한 사람은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법이다. 그런데 장모는 계약금을 받기 전에 매수인에게 계약을 해제한다고 통보했으므로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매도인이 계약금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는 계약을 해제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장모는 꼼짝없이 거액의 손해배상을 해줘야 할 처지가 됐다.
대법원의 결론은 옳다. 그러나 설명은 이해가 잘 안 된다. 법에는 계약금을 ‘교부한’ 자는 계약금을 포기하고 상대방은 계약금의 2배를 주고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대법원은 조문의 자구를 엄격하게 해석한 것이다. 그렇다면, 매도인은 매수인이 약정한 계약금을 주지 않거나 일부만 준 상태에서는 해제하고 싶어도 해제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매수인은 언제든지 계약금을 주고 해제하면 된다. 공평하지 못하다. 따라서 이 조문은 누구나 약정한 계약금만큼 주고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닐까. 장모는 약정한 계약금만큼 주지 않으면서 함부로 해제를 주장하며 계약을 파기했기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게 아닐까. 계약금은 쉬운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어려운 점이 있다.
정병호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학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