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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근칼럼] 인문학의 본령과 확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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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3-29 20:53:31 수정 : 2015-03-29 20:5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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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은 삶의 의미 성찰하는 학문
‘저취업’ 푸대접 말고 융합의 길 찾길
언론의 주목을 받지 않으리라고 여겨지는 인문학이 화제의 대상이 되고 있다. 화제는 환대와 우려의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환대는 ‘단군 이래로 최대의 인문학 열풍’이라는 말처럼 사회에서 인문학의 대중 강연이 활성화되고 있는 현상이다. 우려는 대학에서 인문학을 전공한 학생들이 사회에 진출하여 일자리를 잡지 못해 청년 실업이 심화되는 현상이다. 인문학이라는 하나의 대상에 대해 서로 다른 두 가지 시선이 공존하는 셈이다. 특히 청년 실업의 문제가 인문학과의 구조 조정과 관련해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대졸 취업자가 55%에 지나지 않자, 대학생은 ‘졸업생’이라는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 졸업을 미루고 있다. 이 때문에 과거 소수에 불과했던 ‘대학 5학년생’이 12만 명에 이를 정도로 대학에서 한 집단을 이루고 있다. 

신정근 성균관대교수·동양철학
인문학의 열풍과 인문학과 출신의 낮은 취업률은 모두 ‘인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일어난 현상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두 가지 현상은 인문학에 대한 서로 다른 측면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양자를 잘 구별해서 다루지 않으면 더욱더 혼동을 일으키기 쉽다. 열풍의 대상은 인문학의 본령에 해당되는 반면 취업률의 대상은 인문학의 응용에 해당된다. 인문학은 원래 사람이 자신의 삶을 부분이 아니라 전체와 대면하게 한다. 사람은 보통 아침에 일어나서 식사한 뒤에 각자의 본업에 충실하며 살아간다. 이때 우리는 몇 시에 누구를 만나고 몇 시에 무슨 일을 하고 몇 시에 어디를 찾아가는 다양한 일정을 소화하게 된다. 이러한 일정을 소화할 때 ‘나’는 개인적으로 맡은 특정한 일을 처리하는 부분적인 사람이다. 반면 큰 병에 걸려서 사느냐 죽느냐를 고민할 때 ‘나’는 내일 친구랑 만나기로 한 약속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바람직한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깊이 생각하는 전체적인 사람이다.

인문학은 사람이 부분적인 삶에 휘둘리지 않고 한 번뿐인 삶을 의미 있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성찰하도록 생각하게 만든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인문학 열풍이 왜 부는지 이해할 수 있다. 시민이 일상적으로 만나는 ‘부분적인 나’를 돌아보며 ‘전체적인 나’를 찾으려고 움직이다 보니 인문학으로 눈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인문학은 원래부터 세상과 부분적으로 만나는 부분적인 삶, 즉 취업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특성 때문에 인문학을 ‘쓸모없음’의 학문(無用之學)이라 말한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인문학자나 철학자가 될 수 없다. 사람이 인문학의 세례를 받아 전체적인 나를 만나게 되더라도 결국 부분적인 나로 돌아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나를 만난 사람은 부분적인 삶에서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다. 실례로 인문학을 배우기 전에 하나라도 많이 가지려는 ‘소유’에 혈안이 됐던 사람이 인문학을 배운 뒤에 세상을 뜻 있고 아름답게 살아가려는 ‘의미’에 관심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보면 인문학은 원래 구체적인 생업과 연관이 없기 때문에 ‘쓸모없는’ 학문이었지만 전체적인 나를 돌아보게 하므로 무엇이 쓸모 있고 없는지를 새롭게 바라보도록 만든다. 이런 특성 때문에 인문학을 ‘쓸모없음의 쓸모 있는’(無用之用) 학문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인문학이 사회적으로 확장성을 가질 수 있는 부분이다. 상품, 제품이 결국 사람이 사용하는 것이라면 전체적인 나를 말하는 인문학이 사회의 다른 영역으로 섞여 들어가서 자신의 쓰임을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상품이 기능, 디자인만이 아니라 인문학적 가치를 갖출 때 의미 있는 물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취업률이 낮다는 기준으로 인문학을 가엽게 바라볼 것이 아니라 다른 영역과 뒤섞일 수 있는 길을 찾지 못했다는 점에서 자성을 해야 할 일이다. 이렇게 보면 인문학과의 학생들은 기성세대가 찾아야 할 길을 찾지 못해 취업률이 낮다는 누명을 쓰고 있는 피해자이다. 이제 통계 수치를 들여다보기보다 길을 찾는 데 관심을 쏟아야 할 때이다.

신정근 성균관대교수·동양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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