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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순열의경제수첩] 버블 터진 뒤 반성문 쓰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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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3-27 21:13:53 수정 : 2015-03-27 21: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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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는 맘대로 통제할 수 없다. 공산주의 실험이 증명한다. 그들의 계획경제(command economy)는 실패했다. 시장에 맡기는 게 능사도 아니다.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은 무능했다. 질서와 번영을 가져오기는커녕 탐욕에 가득차 거품을 키우고 터뜨리며 실패를 반복했다.

과욕도 방임도 위험하다. 지나치게 끼어들면 시장은 스스로 돌아가는 능력을 잃는다. 내버려두면 탐욕이 쌓여 스스로 무너진다. 정부의 역할은 그 사이 어디쯤에 있어야 한다. 시장이 스스로 돌아가도록 하면서도 지나친 탐욕을 경계해 위기를 막는 일은 정부가 해야 하고, 정부만이 할 수 있다.

그러나 교과서적인 얘기일 뿐이다. 결정적일 때 정부는 그런 역할을 거의 하지 못한다. 반복되는 시장 실패가 말해준다. 위기를 막기는커녕 오히려 탐욕을 부추겨 위기를 만든다. 2008년 금융위기가 그랬다. 권력 쥔 자들의 시장만능주의는 탐욕을 키우고 끝내 세계 경제를 구렁텅이로 밀어넣었다.

위기가 반복되는 건 잊기 때문이다. 경제석학 폴 크루그먼은 수없이 되풀이되는 경제위기의 이유를 한마디로 정리했다. “예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망각하기 때문”이라고. 위기를 겪으면 규제를 강화했다가 탐욕과 망각의 늪에 빠져 규제를 걷어치우고 다시 위기를 맞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는 것이다. 그 중심엔 늘 단기 성과에 집착하는 조급한 정부가 있었다. 한국이라고 뭐 다를까.

대중에게 학습효과는 있다. 더 이상 정부의 큰소리가 미덥지 않다. 되레 불안감을 키우는 역설이 된다. 통계는 위험을 경고하는데 정부는 괜찮다고 한다. 가계부채가 위험하다는 건 이제 뉴스도 아니다. 소규모 자영업자 부채를 포함해 연간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64%대로 치솟았다. 미국은 금융위기 당시 이 비율이 130%대였다. 이후 디레버리징(부채감축)이 진행돼 2013년 말 110%대로 떨어졌다.

정부도 가계부채를 “우리 경제의 가장 큰 위험요인”(임종룡 금융위원장)으로 보고 있기는 하다. 그러면서도 “관리 가능하다”며 가계부채를 늘리는 정책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주택담보대출 규제의 빗장을 더 풀고 기준금리는 1%대로 끌어내렸다. 유사 이래 집을 담보로 빚 내기에 가장 좋은 환경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가계부채에 기대 경기를 띄워보려는 단기부양책, 그 핵심은 “빚 내서 집 사라”는 것이다.

그러니 가계부채가 급증하는 게 당연한데 대책은 없다. 2017년까지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비율을 5%포인트 낮추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약속(2014년 신년 기자회견)은 공수표가 될 가능성이 크다. 임 위원장은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약속 이행의 방법은 제시하지 못했다. “소득이 늘면 가능하다”는 그의 답변은 허무한 원론일 뿐이다. 저성장 기조에서 기는 소득이 뛰는 부채를 따라잡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폭발적 인기를 누리는 안심전환대출도 근본적 대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기존 주택담보대출을 2%대 고정금리·분할상환 대출로 갈아타도록 해 가계부채 구조를 개선하는 정책일 뿐이다. 뒤늦게 범정부 차원의 가계부채 협의체를 구성했다고 뾰족한 해법이 나올 것 같지도 않다. 그저 책임 분산의 장이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금융위 관계자는 “우리야 나쁠 것 없다”고 말했다.

경제에서 장담은 어리석고 위험하다. 2006년까지 18년간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을 지낸 앨런 그린스펀은 재임 중 거품경제 우려에 대해 “거품이 터지기 전엔 보이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2008년 10월 그는 미 하원 청문회에 출석해 “위기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며 반성문을 읊조려야 했다. 정부도 단기성과에 집착해 위험을 외면하는 그린스펀식 낙관론에 기대고 있는 것은 아닌가. 경제석학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통화당국의 임무 중 하나는 거품을 막아 경제 안정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했다. 작금 이 임무는 실종 상태다. 거품이 터진 뒤 반성문을 쓰려는가. 그런다고 망가진 경제가 복원되진 않는다.

류순열 경제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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