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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완식이 만난 사람] “상처 보듬는 그림 한 점, 마음의 藥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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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3-23 20:24:16 수정 : 2015-03-23 20:2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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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힘’ 펴낸 차병원 김선현 교수 어둡고 추운 데서 하얀 알몸이 웅크리고 울고 있다. 얼마나 맘이 아프면 이럴까. 손과 얼굴, 어깨, 무릎 등 온몸으로 울고 있다. 영국 화가 조지 클로젠(George Clausen, 1852∼1944)의 작품 ‘울고 있는 젊은이’다. 답답하고 슬픈 이들을 펑펑 울게 만드는 그림이다. 울음은 영혼이 회복하는 첫걸음이라 했다. 울고 싶을 때 맘껏 우는 것이 최고의 스트레스 해소법인 이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비극을 보는 경험이 카타르시스를 가져다준다고 했다.

김선현 교수는 “스트레스에 찌든 현대인들에게 더욱 필요한 것은 자신과 만나는 시간”이라며 “그림은 그런 시간을 마련해 주는 좋은 매개체”라고 강조했다.
차병원 미술치료 클리닉 김선현(47) 교수는 그림의 이 같은 유용성을 모아 최근 ‘그림의 힘’(에이트포인트)을 펴냈다. 그는 책의 가장 마지막 쪽에서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비너스의 단장’을 다루고 있다. 아무리 아름다운 비너스라 해도 자기 몸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으면 자신이 예쁜지 어쩐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스러운 천사가 거울을 들어 그녀 자신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게 하고, 비너스는 거기에 도취되어 있다.

“자신의 신체에 자신이 없어 하는 이들에게 보여주는 그림이에요. 실제 신체 사이즈와 상관없이 주관적으로 부족함을 느끼는 이들에게 자신의 아름다움을 찬양받는 기분을 전달하지요. ‘너는 네 모습 그대로 최고의 존재야’라는 메시지가 전달됩니다. ‘나’를 최고로 만드는 그림의 힘이라 할 수 있지요.”

사실 우리는 오감을 통해 세상과 만나고, 스트레스 역시 오감을 통해 해소한다. 오감 중에서도 인간은 시각의 지배를 가장 많이 받는 동물이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 해도 푸른색의 그릇에 담아 내 놓으면 입맛이 당기지 않는다.

“오감 중에 시지각의 비중이 80% 정도라는 것은 시각예술인 미술의 중요성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대학에서 도예를 전공했다. 그릇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는 교육프로그램을 이끌면서 사람들이 우울증도 극복하고 삶에 활기를 되찾아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자연스럽게 미술 치료에 관심을 갖게 됐다. 동양인 최초로 독일 베를린 훔볼트대학 부속병원에서 예술치료 인턴 과정을 수료한다. 일본에서는 외국인 최초로 임상미술사 자격을 취득했고, 일본 기무라 클리닉 및 미국 MD앤더슨암센터 예술치료 과정을 거쳐 프랑스 미술치료 전문가 과정까지 마쳤다.

“그림과 그림치료의 기원은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동굴벽화는 사냥에 대한 바람과 동시에 맹수로부터의 안전을 비는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그런 갈구하는 마음들이 갈무리되지요. 그림을 그리는 아트행위이자 마음의 위안이 되는 것입니다.”

카타르시스를 유도하는 조지 클로젠의 ‘울고 있는 젊은이’
그림이라는 하나의 매개체가 부적처럼 ‘마음의 약’이 되고 있는 것이다. 시각적 이미지의 표현은 의식의 깊숙한 부분을 자극하게 마련이다.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심적 상황까지도 표출케 해준다. 그림을 보면서 감동하고, 울기도 하고, 힘을 얻기도 하고, 공감하면서 치유가 되는 것이다.

“나의 내면과의 소통 매개체로 그림만큼 좋은 것이 없습니다. 내가 나의 상태를 제대로 바라보게 해줘요. 내면으로 향한 ‘창’이 될 수 있지요.”

그래서 그는 옆에 좋아하는 그림 하나 정도는 두고 살라고 권한다. 요즘들어 부쩍 분노조절장애가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친족 간 살인행위로까지 치닫기도 한다. 스트레스로 인한 감정 조절의 붕괴라 하겠다.

“특정 감정에 빠져 있을 때 그림을 바라보면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고, 평가하고, 조절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림이 마음의 숨구멍이 돼 주는 것이지요.”

그는 화를 풀때 잭슨 폴락의 ‘가을의 리듬:넘버 30’을 꺼내 든다. 잔뜩 화가 났을 때 누가 대신해서 욕지거리를 해주면 마음이 후련해지듯, 마구 뿌려진 그림에서 그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잡힐 만한 형태랄 것도 없고, 물감이 어디로 튈지 모르니 결과를 통제할 수도 없습니다. 사실 우리 내면이란 것도 그렇죠. ‘화가 난다’ ‘기쁘다’ ‘슬프다’라는 정돈된 말들에 나의 감정이 딱 들어맞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잭슨 폴락은 이전엔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뿌리는 기법’을 동원하여 감정의 표현에 가까이 다가간 것입니다.”

검은색의 흩뿌림에서 욕과 폭력 같기도 한 끈적한 감정의 배출이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힌색이 어우러져 마음이 풀리면서 해소의 기운도 맛볼 수 있다. 

자신감을 주는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비너스의 단장’
그는 불안해하는 청춘들에게는 로버트 리드의 ‘섬머 걸’을 추천한다. 도도해 보이는 20대 여성을 표현한 그림이다. 전체 화면구도에서 여자가 완전히 중심에 있다. 그녀를 아래에서 위로 바라보게 만든 구도가 주인공의 거리낌없는 당당함을 돋보이게 해준다. 허리에 손을 얹은 균형적 자세, 탁 트인 파란 하늘과 힌 구름, 그리고 생명감 있는 초록이 주인공을 든든히 받쳐주고 있다.

“많은 청춘들이 이 그림에 마음을 놓는 이유는 어리고 미숙하지만 당당한,자신들의 삶을 가꿔 갈 수 있다는 확신이 전해지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행복이라는단어를 떠올리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핑크’다. 그는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그네’를 화제에 올렸다. 숲속의 어두운 배경으로 핑크색의 옷을 입은 그네타는 여인의 색이 더 없이 돋보이는 그림이다.

“핑크는 선천적으로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긴장을 누그러뜨리는 색입니다. 학계에서는 엄마라는 이미지와 자궁의 고유한 색상을 대변하기도 합니다. 따스함을 느끼는 모성본능에 충실한 색이라 절로 기분을 좋게 하지요.”

그는 갱년기 이후 여성들에겐 빨간색을 권한다. 에너지가 떨어졌을 때 힘을 얻는 색이기에 그렇다.

“빨간색 구두도 신어보고, 빨간색 꽃도 보고, 빨간색 액세서리와 네일아트도 하면서 충분히 컬러를 즐기는 게 중요합니다. 주위 노인분들에게 너무 야하다고 핀잔을 주는 것은 금물이지요.” 그도 친정어머니가 어느날 빨간 코트를 입었을 때 막 뭐라했던 것을 후회하고 있다.

“미술치료는 미술과 심리학, 의학이 하나가 돼 이뤄지는 통합의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요즘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나름의 길을 걸어 온 것에 대한 평가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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