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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푸는 삶이 진짜 인생” 고대 로마 철학자 세네카의 사유

입력 : 2015-03-21 01:38:06 수정 : 2015-03-21 01:3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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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지음/김혁, 오명석, 홍석준, 안승택 옮김/눌민/1만8000원
베풂의 즐거움/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지음/김혁, 오명석, 홍석준, 안승택 옮김/눌민/1만8000원


신간 ‘베풂의 즐거움’은 국내에 처음 번역 소개되는 세네카(BC 4 추정∼AD 65)의 명저이다. 고대 로마의 대표적 철학자 세네카가 인생 말년에 접어들 무렵 쓴 책이다. 인간 삶에서 가장 중요한 행위인 베풂과 은혜와 관련한 모든 것을 다뤘다.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세네카가 생의 주제로 삼았던 테마들이 알알이 들여다보인다.

이 책 원제는 ‘De Beneficiis’로, 직역하면 ‘은혜에 대하여’다. 모두 7권인데, 1∼4권은 폭군 네로의 스승이자 최측근이었던 세네카가 권력 정점에 오른 서기 56년에 썼다. 5∼6권은 그가 모든 관직에서 물러나기 직전인 62년에, 7권은 죽음을 맞이한 65년에 완성했다. 세네카는 부침이 심했던 정치역정만큼이나 인생살이도 기구했던 모양이다. 철저한 개인주의자였던 세네카가 이웃과 함께하는 베풂과 은혜에 대해 고심한 것은 모순이기도 하다. 

진심으로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거나 도움을 줬는데도 오히려 경멸이나 비아냥을 들을 때가 많다. 가장 친하다고 믿은 누군가의 도움을 애타게 바랐지만 매몰차게 거절당하기도 한다. 반면 정말 작은 친절을 베풀었는데 너무나 큰 보답을 받는 경우도 있다. 베풂의 역설이다. 베풂 속에 인간 관계의 신비로움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세네카는 이를 특유의 논리로 풀었다.

“파비우스 베루코수스는 거친 사람이 무례하게 베푸는 은혜는 모래가 들어 있는 빵과 같다고 했다. 배고픈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그 빵을 받겠지만 삼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은혜를 베푼 사람은 베푼 은혜를 잊어버려야 하며, 절대로 교만한 태도로 베풀지 말아야 한다. 해가 될 선물은 하지 말고 위선적인 은혜는 절대 베풀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받은 것들을 지키는 일은 우리가 줄 것들을 지키는 일보다 더 많은 부지런함을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실은 받는 일이 주는 일에 비해 더 어려운 것이다.”

세네카는 로마의 폭군 칼리굴라의 미움을 받아 죽을 위기를 넘겼고, 다음 황제 클라디우스는 그를 코르시카 섬으로 추방했다. 서기 41년에 로마로 돌아온 세네카는 어린 네로의 가정교사를 맡아 성심껏 교육시켰다. 54년 클라디우스가 암살당하자 네로를 황제에 앉히는 데 성공하고 권력 정상에 올랐다. 그러나 네로의 거듭된 폭정과 정치적 동지의 죽음 등으로 더 이상 권력을 유지할 수 없음을 깨닫고 물러났다. 65년에 그는 황제 암살 모의가 발각되면서 네로로부터 자결하라는 명령서를 받아들었다. 세네카는 발의 동맥을 끊어 죽으려 했으나 실패하자 평소에 숭앙했던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모방해 독약을 마시고 죽었다. 베풂과 은혜에 대한 세네카의 철학은 기구한 정치 이력에서 기인한다. 정치와 권력의 무상함, 인간관계의 비정함을 실감한 세네카는 철학에 심취해 화를 삭이고 마음을 달랬다. 결국 남을 위한 삶이 진짜 인생임을 뒤늦게 깨달았다.

정승욱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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