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정말 자기 인생을 한 치 앞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국회에 와서 일하게 될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벌써 3년이나 지나고 있어요.” 밀리언셀러 시집 ‘접시꽃 당신’의 도종환(61) 시인이 19대 국회에 민주통합당(현 새정치민주연합) 비례대표 의원으로 입성하게 된 건 본인으로서도 뜻밖의 일이었다. 공천심사위원들이 심사를 다 끝내고 발표하기 직전까지 갔는데 살펴보니 여야를 통틀어 법조계 인사들은 차고 넘치는 데 반해 교육·문화예술계 대표는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급히 수소문한 결과 교사 출신으로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까지 지낸 도종환 시인이 맞춤한 인물로 포착됐다. 자신이 추천한 사람을 하나라도 더 국회에 보내기 위해 노심초사하던 최고위원들의 반대에 부닥쳤지만 당 공식의결기구 투표까지 거친 끝에 당무위원 30명의 압도적 찬성으로 시인의 국회 입성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가 국회에 들어와 문화예술계 대표로 고군분투하며 이루어낸 성과는 만만치 않다.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의 죽음을 계기로 만들어진 ‘예술인복지재단’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동분서주했고, 최재천 의원이 발의해놓고 상임위를 옮긴 뒤 국가가 책값까지 관여하느냐는 비판으로 표류할 위기에 놓인 도서정가제 법안을 총대를 메고 관련 단체의 이해를 조정해가며 통과시켰다. 그가 최근 역점을 두고 있는 법안은 ‘문학진흥법안’이다.
19대 국회에서 문화예술계 대표로 일하고 있는 도종환 시인. 그는 “누구나 내 안에 시인을 모시고 있지만 그이를 잘 대접하느냐 홀대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며 “시인은 연민의 시선으로 세상에 정직하게 반응하는 자”라고 말했다. |
모든 문화산업의 기초라 일컫는 문학이 갈수록 외면당하고 소외당하는데도 문학 환경을 살리는 쪽에는 기실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형국이었던 셈이다. 그나마 한국문학을 해외에 알리기 위해 따로 조직돼 분투해온 한국문학번역원조차 기획재정부가 편의대로 출판문화산업진흥원과 합치려고 한다는 하소연까지 들리는 형국이다. 도종환 시인은 “한마디로 문학을 출판의 관점에서 보기 때문에 생기는 오류”라고 단언한다. 피폐한 문학 환경을 지원하기 위해 더 키워도 모자랄 판에 행정 편의만으로 있던 조직까지 통폐합하려는 발상은 문학을 바라보는 시각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소월 시집 ‘진달래꽃’이 문화유산으로 등록되고 한용운이나 윤동주의 시집들도 같은 반열에서 평가돼야 하는 건 출판물 차원의 가치보다 문학이 국민 정서에 미치는 큰 영향 때문임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난주 금요일(13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문학진흥법 발의를 위한 전문가 간담회가 열렸다. 문화체육관광부 실무자들을 포함해 이시영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문정희 한국시인협회 회장 등 문단 관계자 30여명이 참석한 자리였다. 이 자리 말미에 문정희 시인은 “도종환 시인인 줄만 알았는데 좋은 법안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 감격했다”면서 “국회의원에게 이렇게 호의적 발언을 한 건 생애 처음인 것 같다”고 말해 좌중을 미소짓게 했다. 최종 결과가 나오기까지 넘어야 할 고비가 많지만 과정에서 충분히 자신의 주어진 소임을 다하는 도종환 국회의원의 모습은 충분히 평가할 만한데, 시인 도종환은 정작 언제 시를 쓸까. 시심이 생길 짬은 있을까.
“국회에 들어오니 시인 도종환은 이제 끝났다고 검은 근조(謹弔) 리본을 매단 화분을 보낸 문인이 있더군요. 다른 축화 화분은 모두 아름다운가게에 기증했는데 이 근조 화분만은 3년째 책상 위에 올려놓고 출퇴근할 때마다 바라보며 자신에게 묻습니다. 정말 나는 끝났는가.”
그는 늘 자문하는 그런 질문들이 내면에서 시로 발효된다고 했다. 바쁜 와중에도 ‘세월호’ 같은 비극이 시를 쓰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을 만든다고 했다. 올봄 계간지 ‘창작과비평’에도 해장국에게 위로받는 시편을 발표했다. 그는 시인은 자신의 눈물뿐 아니라 타인의 눈물에도 정직하게 공감하고 반응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했다.
“나를 잔잔하고 고요한 강물 같은 사람이라고 많은 독자들이 말합니다. 맞습니다. 자갈로 막혀 있는 물길을 지나가야 할 때는 격류로 흐르고, 벼랑을 만나면 폭포로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김수영 식으로 말하자면 곧은 소리가 곧은 소리를 부르는, 온몸을 던져 살아야 하는 그런 때도 있는 거지요. 바다에 생을 인계하기 전까지 강물의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은 순례의 길과 비슷합니다. 어떤 길이 나에게 예비돼 있을지 모르지만, 그 길을 언제 다 지나가게 될지 모르지만 가능하다면 길게 멀리 봐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시인은 언제 어디에서 어떤 옷을 입고 있든 시를 쓸 수밖에 없다고 했다. 논산훈련소에서는 진흙탕 속에서 군용수첩에 썼고, 감옥에서는 젓가락 포장지에 썼다. 구비져 흐르는 삶의 강물을 흘러가면서 누군가 ‘너는 이제 끝났다’고 말할 때마다 그는 자신에게 묻고 대답하면서 시를 써왔다. 안현미의 시 한 구절에 촉발돼 썼다는 그의 시 ‘저녁 구름’은 이렇게 흘러간다.
“언제쯤 나는 나를 다 지나갈 수 있을까/ 어디까지 가야 나는 끝나는 것일까/ 하루가 한 세기처럼 지나갔으면 하고 바라는 저녁이 있었다/ 내가 지나가는 풍경의 배경음악은/ 대체로 무거웠으므로/ 반복적으로 주어지는 버거운 시간들로/ 너무 진지한 의상을 차려입어야 하는 날이 많았으므로/ 슬픔도 그중의 하나였으므로”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