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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 회항’은 욕하면서 더 큰 비리엔 왜 눈감나

입력 : 2015-03-05 20:38:43 수정 : 2015-03-05 20:3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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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 기고문 ‘진격의 갑질’ 눈길
지난해 세월호 참사를 바라보는 작가들의 에세이를 모아 ‘문학동네’에서 펴낸 ‘눈먼 자들의 국가’는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다. 인세를 모두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기금으로 헌납한 이 책자의 표제는 소설가 박민규(47·사진)가 지난해 ‘문학동네’ 가을호에 기고한 동명의 산문 제목이었다. 표제로 뽑힐 만큼 박민규의 논지는 선명했다. 세월호 참사는 “사고가 아니라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라고 잡다한 매듭을 일거에 자르는 명쾌한 글이었다. 사고는 불가피한 아픔이지만 사건은 누군가 책임져야 할 비극이다.

박민규가 지난주 발간된 ‘문학동네’ 봄호에 다시 이른바 ‘대한항공 땅콩리턴 사태’의 본질을 언급한 ‘진격의 갑질’을 기고해 눈길을 끈다.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킨 일본 작가 이사야마 하지메의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에서 제목을 따온 것인데 거인 족이 인간을 아무 이유 없이 잡아먹는 ‘먹고 먹히는’ 관계가 질펀한 작품이다. 인간들은 죽을 힘을 다해 거인들이 벽을 넘지 못하도록 벽을 쌓는다. 박민규는 현대로 올수록 역사를 통해 인간들은 그 야만을 막기 위해 벽을 높이 쌓아올려서 이나마 평화를 누리고 있다고 본다.

“여론이 그토록 분노한 이유는 이 사건이 가진 전근대성 때문이다. 직원을 노예처럼 여긴 사건이란 점을 주목했다는 법원의 판결문도 그러하다. 경우에 따라 근대의 벽은 이토록 높고 굳건하며 그녀는 결코 넘어선 안 될 벽을 넘어온 거인이었다. 하지만 나는 찜찜하다. 시범케이스로 하나를 잡고, 뜨겁게 끓어올라 욕을 퍼붓고, 한 사람에게 갑질의 십자가를 지우고, 조롱하고, 기필코 갑을 응징했다는 이 분위기도 실은 매우 전근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냉정히 말해 이것은 언론의 작품이다.”

대한항공 ‘땅콩리턴 사태’의 분노가 ‘언론의 작품’이라고 폄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진격해오는 거인을 막기 위해 벽돌을 한 장씩 쌓아 벽을 높이는 일이 전근대성과의 싸움이었는데, 정작 중요한 통로로 진격해오는 적은 막지 못한 채 상대적으로 작은 바람구멍에 호들갑을 떨고 있는 형국이 갑갑하다는 이야기다. 박민규는 말한다.

“무엇보다 우리가 이토록 갑질에 분개한다는 사실을 나는 믿지 못하겠다. 국가기관이 대선에 개입해도, 천문학적인 국고를 탕진해도 가만히 있던 사람들이 느닷없이 이 쪼잔한(상대적으로) 갑질에 분노하는 현상을 믿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얘는 까도 돼, 어쩌면 더 큰 거인의 허락이 떨어졌음을 은연중에 감지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어떤 과정과 결과가 있든 간에 우리를 뜨겁게 달군 ‘갑질 논란’은 그 자체로 하나의 벽돌이 되었다고 생각한다”고 인정하면서도 다시 경종을 울린다. 우리는 “자력으로 거인을 처단하거나 하물며 오십 미터 높이의 벽을 ‘제 손으로’ 쌓을 기회가 없었던 민족”이고 “‘평등’이라는 이름의 벽돌 한 장이, ‘민주’라는 이름의 저 벽이 그래서 얼마나 사무치게 중요한지를 자꾸만 자꾸만 잊어먹는 인간들”이라고.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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