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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와 가짜의 경계, 어느 삶이 진짜일까

입력 : 2015-03-05 20:38:17 수정 : 2015-03-05 20:3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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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상 대상 김근우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 출간 “가짜와 진짜의 경계가 모호하기 이를 데 없는 세상에서 가짜와 진짜의 문제를 이만큼 진실하게 다루기는 쉽지 않다. 작가는 한눈팔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시종여일 진실하게 따라가고 있다. 핍진한 삶의 페이소스가 여기에 더했으니, 감동이다.”

단행본으로 선보인 김근우(35)의 11회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작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나무옆의자)에 소설가 박범신이 부친 글이다. 과연 ‘진짜’라는 게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진짜인 줄 알았는데 가짜 같은 구석이 많고, 가짜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못지않은 매력이 있을 수도 있다. 엄밀하게 칼로 자르듯이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만 있다면 사는 일이 그리 복잡하지 않을 터이다. 어려운 일인데도 대개는 끊임없이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려 애쓰게 마련이다. 가짜 속의 진짜, 진짜 속의 가짜를 찾아내기 위해 본능적으로 움직인다. 때로는 가짜가 진짜보다 더 진실을 웅변하기도 하니,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일 자체가 허망하다.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는 이 난해한 문제를 속도감 있는 문장과 따스한 정서로 품어내는 소설이다.

이 작품의 화자는 서른세 살 먹은 장르작가로 이름은 없고 그냥 ‘남자’로만 나온다. 이 남자와 나란히 활약하는 여자 또한 그냥 ‘여자’일 뿐이다. 비슷한 연배인데 이 여자는 증권회사에 다니다가 회사가 합병되면서 구조조정으로 잘린 처지다. 증권투자를 하다가 쫄딱 망해 서울 은평구 반지하 월세방에 산다. 장르작가 남자는 번번이 출판사에서 원고를 퇴짜 맞아 가진 재산이라곤 4264원이 전부다. 여기까지만 듣고 나면 88만원 세대, 혹은 청년 백수들의 고통을 대변하는 작품쯤으로 예단할 수도 있지만, 초점이 이 대목에 맞춰진 건 아니다.

11회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자 김근우씨. 그는 “형식을 가리지 않고 누가 보아도 김근우의 글이라고 구별될 ‘진짜’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남제현 기자
남녀 둘 다 절실하게 돈이 필요하던 시점에 엉뚱한 제안을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는 정황 증거로 활용된 것이다. 아들과 의절하고 아내마저 저 세상으로 떠나보낸 고집불통 노인네가 그나마 정을 들였던 고양이를 잃고 나서 믿기 힘든 사실을 주장한다. 전혀 호랑이 같지도 않은 녀석에게 붙인 이름은 ‘호순’. 노인은 그 호랑이 같은 고양이를 불광천의 오리가 잡아먹었다고 분노하면서, 호순이가 ‘잡아먹힌’ 날부터 생의 의욕을 꺾은 채 오로지 불구대천지 원수인 그 오리를 포획하는 데만 전념한다. 그리하여 불광천 오리 사진을 채증하기 위해 남자와 여자가 노인의 고객으로 동원됐다. 일당 5만원. 고양이가 오리를 잡아먹었으면 먹었지, 어찌 오리가!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이 남녀는 노망난 노친네의 돈을 울궈먹는 사기꾼이라는 자괴감을 안은 채 폴로라이드 사진기를 들고 불광천을 배회한다. 여기에 맹랑하고 영악한 꼬마, 노친네의 손자까지 가세해 바야흐로 진짜 같은 가짜를 찾기 위한 노력을 펼치는 이야기다.

“‘고양이는 있지만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는 있으면 안 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고양이가 있으니까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도 있을 수 있는 이야기’인 이 소설은 ‘가능성의 불가능성’이 아니라 ‘불가능성의 가능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소설의 본질인 허구성과 인생의 의미인 희망을 동시에 문제 삼는다. 비슷한 것은 가짜이지만 진짜보다 절실한 가짜는 진짜라는 믿음과 공감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허구성’과 ‘허망’을 동시에 묻는 소설이라고 문학평론가 김미현(이화여대 교수)은 진단한다. 철저하게 혼자 남아 그나마 정붙인 ‘호순’마저 사라진 상태에서 정녕 오리는 애먼 분노의 표적일 뿐이었을까. 노인의 아들과 손자와 남자와 여자가 공모해 만든 가짜 오리 앞에서 그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역시 가짜로 만들어낸 ‘호순’은 노인의 집에서 가짜 오리와 사이좋게 살았을까, 아니면 다시 오리가 고양이를 잡아먹었을까. 노인은 자신이 주장하는 사실이 정녕 진짜라고 믿었을까, 아니면 거짓을 통해 진짜를 갈망했던 것일까.

이 소설의 마지막 쪽을 넘기고 나면 각자 달리 해석할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누구나 가슴 한구석에 고여 오르는 따스한 기운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테다. 김근우는 ‘작가의 말’에 썼다.

“거의 매일 불광천을 걸으며 생각했습니다. 난 어떤 글을 써야 하는 걸까. 생각하고 또 생각한 끝에 내린 썰렁한 결론이 진짜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진짜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답할 말이 궁하면서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장르나 형식을 떠나서 글 자체를 좋아하는 겁니다. 시, 희곡, 수필 등도 좋아합니다. 좋아하기 때문에 한번 써보고 싶습니다. 진짜 글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매일 하얀 화면에 도전하는 것, 그것이 저의 인생입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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