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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북핵 성과 없어 전략적 인내… 中도 北에 크게 좌절”

입력 : 2015-03-05 06:00:00 수정 : 2015-03-05 07: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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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식 前 주미대사, 힐 前 차관보에 묻다 주한 미국대사를 지낸 크리스토퍼 힐 전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4일 이태식 전 주미대사와 진행한 대담에서 “김정은체제의 비핵화 전망에 대해 회의적”이라며 “북한과의 협상은 전날 합의한 내용조차 잊어버리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과 협상을 진행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답답함을 성토했다. 2005년 당시 북핵 6자회담의 미국측 수석대표를 지낸 힐 전 차관보는 “북한과의 협상에서는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며 북한에 대해 누적된 피로감을 드러냈다. 다음은 힐 전 차관보와 이 전 대사의 일문일답. 

미디어콘퍼런스 행사 나흘째인 4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비즈니스센터에서 크리스토퍼 힐 전 미국 국무부 동아태차관보(오른쪽)와 이태식 전 주미대사(왼쪽)가 대담을 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북한의 비핵화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 지난해 12월 베이징에서 우다웨이(武大偉) 중국 외교부 한반도사무특별대표를 만났다. 중국도 북한에 대해 크게 좌절하고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 중국이 김정은을 아직 초대하지 않은 점도 신기했다. 중국과 한국이 서로 많이 이해하고 관계를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모두 이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웬디 셔먼 미 국무부 정무차관의 과거사 관련 발언은 미국 정부 입장이 담긴 것으로 봐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내가 알기로 미국 정부는 그런 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는다. 미국 정부의 입장은 변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

―셔먼 차관의 발언은 한국에서 매우 혼란스러운 메시지로 다가올 수 있다.

셔먼의 발언이 알려진 것이 한국 시간으로 3·1절인 것은 매우 ‘불행한 우연’(unhappy coincidence)이었다고 생각한다. 비행기 안에서 신문을 보고 알았고 깜짝 놀랐지만 안타깝게 생각하고 뭔가 오해가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문제는 이 발언이 최근 일본 정부가 무라야마담화와 고노담화를 부정하려는 시점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한국 정부와 국민은 이 점에 대해 매우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워싱턴 주재 대사가 다시 이 점에 대해 설명했을 것이고 한국 주재 대사도 해명을 내놨을 것으로 안다. 이 문제가 이틀 이상 언급될 정도의 심각성이 없기를 바란다.

―시간이 많이 지나고 보니 북한 계좌가 있던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BDA)에 대한 금융제재 해제가 아쉬운 점이라고 말하는 시각이 있다.

어떤 사람은 내가 마치 북한에 BDA에 동결되어 있던 250만달러를 준 것처럼 몰아세우기도 하는데 그 일은 약 2년에 걸쳐 진행된 일이었다. BDA 제재는 합법적인 제재였고 어느 지점에서 멈춰야 할지에 대해 결정하기 어려웠고, 한번 내린 결정을 다시 번복할 수도 없었다. 합법적 제재였는데 그 결정을 바꾸려면 법을 개정해야 하고 이는 아주 어려운 과정이다.

―지난 20년간 북핵 문제 해결에 경주했으나 오히려 북한의 핵능력은 강화됐다. 이유가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나.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이유는 북한이 협상을 지속할 의지가 결여됐다는 점이다. 북한은 자신들에 대한 예외를 강조하면서 IAEA(국제원자력기구)의 북핵 불능화 검증 과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두 번째는 북한의 핵정책이 변화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김정일은 북핵에 대해 확신이 없었을 수도 있지만, 그의 주변에는 북한은 핵무기가 필요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었다. 북한 내 6자회담 찬성론자들은 북핵 불능화 검증을 위한 핵사찰에 대해 반대했고, 6자회담 반대론자들은 핵무기를 갖기 위한 이유로 핵사찰을 반대했다.

―1993년 1차 북핵 위기 발발 당시 북핵 검증 방식이 협상 난제로 대두됐다. 이후 2008년에 같은 문제가 반복됐다. 문제가 뭔가.

당시 한 북측 인사는 ‘검증 전에 우리가 준 검증 신고서를 받은 뒤 추가 의문이 있으면 우리에게 추가적 검증 자료를 요청하라’고 말했다. 만약 북한이 정상국가라면 이것은 정상적인 제안이겠지만, 북한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그들에게 중유를 제공하는 것처럼 아주 중요한 결정은 굉장히 어렵고 힘든 문제였다. 북한이 요구하는 방식의 검증은 동의할 수 없었고 워싱턴으로 돌아가 북한의 제안이 좋은 생각이라고 워싱턴을 설득할 수 없었다. 미국 정치는 양분되어 있었고 북한의 무조건적 항복을 받아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말처럼 쉬운 게 아니었다.

―북핵 능력은 강화됐고 버락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북핵 실험과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문제에 대한 책임을 오바마 정부에 돌리며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북한은 협상할 의사가 없어 보인다. 과거 6자회담 합의 내용을 준수하지 않으면서 무조건적인 대화 재개를 주장하고 있다.

북한의 이러한 태도는 전날 합의한 내용조차 잊어버리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상대와 협상을 진행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북한은 과거 합의를 지키고 싶지 않기 때문에 이전의 협상 진행 사항을 준수하지 않고 미사일 실험을 계속 하는 것이다.

―2008년 당시 북한 핵시설의 냉각탑을 해체시켰지만 결과적으로 북한은 속인 게 아닌가 생각된다.

당시 (영변 핵시설에 대한) 11가지 불능화 조치가 논의됐고, 핵심은 냉각탑을 다시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냉각탑을 다시 건설하고 가동하는 데에는 최소 5년은 걸릴 것으로 봤다. 냉각탑을 불능화한 뒤 BDA 제재 등 다른 제재를 가하면 최소한 5년간 협상을 유리하게 진행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시간벌기용이었다는 얘기다. 나쁘지 않은 아이디어였지만 이런 방법이 북한에는 전혀 먹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과거와 같은 방식의 북핵 협상 접근 방식은 재고해야 한다는 시각이 있다.

북핵 문제 해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을 모두 동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더 강력한 군사적 억제력을 갖춰야 한다. 미사일방어체계 기술은 북한의 미사일 개발 기술보다 앞서 있고 우리가 이길 수 있는 방식이기도 하다. 두 번째는 중국과 여러 부문에서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 한국은 북한에 비해 한국이 더 안정적인 이웃이라고 중국을 설득해야 하고, 미국은 중국에 ‘전략적 이득’을 보는 식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는 확신을 줘야 한다. 북한이 붕괴하고 한국이 한반도의 패권을 잡는 것을 중국이 미국에 대한 중국의 패배인 것처럼 ‘제로섬’ 방식으로 오해하는 인식을 바로잡아줄 필요가 있다.

―중국이 한국 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우려하고 있다.

무엇을 걱정하는 것인지 이해하지만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다. 북한이 스커드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군사전문가들이 북한이 로스앤젤레스까지 닿는 대륙간탄도미사일도 개발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런 관측이 신문 지면에 대서특필되면 미국 내 국민 여론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미국은 핵 문제를 놓고 북한과 이란에 이중적 잣대를 적용하는 것 같다. 이란과는 협상을 하면서 북핵 문제는 그냥 북한이 망하기만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는 지적이 있다.

미국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해봤지만 그 어떤 것도 효과가 없었다고 보는 분위기가 있다. ‘전략적 인내’는 다른 정책 수단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한데, ‘확실한 승자’(clear winner)가 없다. 하지만 북한과의 협상은 누구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일이다.

정리=김민서·정선형 기자 spice7@segye.com

■ 이태식 전 대사는…
 

▲외교부 통상국 국장(1997년) ▲외교통상부 차관(2005년) ▲제21대 주미한국대사관 대사(2005년∼2009년) ▲연세대학교 석좌교수(2014년∼)


■ 크리스토퍼 힐 전 차관보는…
 

▲주한 미국대사관 대사(2004∼2005년)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2005∼2006년) ▲대북정책 조정관(2006년) ▲미 덴버대학교 조셀코벨국제대학 학장(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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