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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향기가 북상한다. 빨간 홍매화가 막 겨울잠에서 깨어나고 청매화는 부푼 몽우리를 터뜨렸다. 남녘 바다를 붉게 물들인 동백은 농밀한 향기를 내뿜는다. 천리 밖 꽃향기가 코끝으로 전해지는 춘삼월이다.

어느 향기 예찬론자가 있었다. 꽃향기보다 사람 향기가 제일이라는 장광설을 늘어놓는 사람이었다. 술자리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건배사가 ‘화향백리(花香百里) 인향만리(人香萬里)’였다. 꽃의 향기가 백리를 가지만 사람의 향기는 만리를 간다는 뜻이다.

사실 꽃의 향기가 백리를 갈 턱은 없다. 그러나 사람의 향기가 만리를 가는 것은 분명한 듯싶다. 자기 한 몸을 던진 위대한 영혼이 수백 수천년이 흘러도 사라지기는커녕 더 진한 향기를 발산하는 일이 없지 않으니 말이다. 꽃에 벌과 나비가 모이듯 수많은 사람이 그의 향기를 좇고 자취를 따른다.

사람의 향기는 그가 마음속에 무엇을 품고 있느냐에 달렸다. 자기 내면에 피운 인화(人花)의 유형에 따라 내는 향기도 저마다 다르다. 꿋꿋한 지조를 가진 사람에게선 동백향이 나오고, 베풂을 실천한 사람이라면 진한 라일락향이 우러난다. 자기 삶을 아름답게 가꾸는 사람에게서는 노란 민들레향이 느껴진다.

옛날 부처가 길을 가다 바닥에 떨어진 종이를 보고는 제자에게 주워 오게 했다. 무엇에 쓰던 종이냐고 묻자 제자는 “향내가 나는 것을 보니 향을 쌌던 종이”라고 답했다. 다시 길을 걷던 부처가 이번에는 새끼줄 하나를 발견했다. “그럼, 이 새끼줄은 뭘 묶었던 것이더냐”고 했더니 제자는 “아직까지 생선 비린내가 나는 것으로 보아 생선을 묶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러자 부처가 말했다. “처음부터 이 종이에서 향내가 났을 리 없고, 새끼줄에서 비린내가 풍겼을 리 없었을 것이다. 너희도 이처럼 향을 가까이 하면 성품이 향기로워지고 악을 가까이 하면 악취를 풍기게 된다.” 마음의 보자기에 담긴 성품에 따라 사람의 향기가 달라진다는 가르침이다.

사람의 향기는 평소에는 잘 느끼기 힘들다. 그 사람이 떠날 때 비로소 진짜 향기가 나온다. 향기 예찬론자도 떠나는 모습이 아름답지 못하고 비릿하다면 인향은 어찌 만리를 가겠는가.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다’고 했던가. 화장실에서 가볍게 지나칠 글귀만은 아닌 것 같다.

배연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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