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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의 나마스테!] 자유·고독·디아스포라의 삶… 언어와 국경 넘어 생명을 읊다

입력 : 2015-03-02 20:19:25 수정 : 2015-03-02 21:3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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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아바나 국제도서전 처음 참가한 시인 문정희 ‘체 게바라가 볼리비아 정글에서 마지막 숨을 거둘 때 시를 필사한 녹색 노트를 품고 있었다지요? 쿠바 혁명의 자궁 속에는 시가 들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시의 나라에 왔습니다. 두 번째 방문인데 처음에 왔을 때는 물과 화장실, 이 두 마디밖에 알지 못했습니다. 어린아이 말 같지만 생명을 유지하는 데 긴요한 단어지요. 오늘 나는 절박한 말 하나, 더 배웠습니다. 레스 키에로! 당신들을 사랑합니다!’

지난달 12∼16일 한국과는 미수교국인 쿠바의 아바나 카바냐 성에서 국제도서전이 열렸다. 올해 31개국에 199개 출판사, 24개국 문인 184명이 초청된 이 도서전은 쿠바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문학행사로 꼽힌다. 한국문학번역원(원장 김성곤)과 외교부 후원으로 한국 문인으로는 공식적으로 처음 문정희 시인과 소설가 오정희가 이 도서전에 참석했다. 개막 다음날 아바나 시내 호텔 나시오날에서 열린 ‘한국문학의 밤’에서 문정희 시인은 준비해간 원고를 제쳐놓고 즉흥적으로 소감을 털어놓았다.

쿠바 아바나 국제도서전에 한국 문인으로는 처음으로 소설가 오정희와 함께 참가한 문정희 시인. 그는 “글로벌 시대 시인은 좁은 지역의 사투리에서 벗어나 두려울 정도로 더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문 기자
“쿠바 국민을 절반은 만난 것 같아요. 사람들이 너무너무 많이 왔어요. 많은 해외 도서전을 가봤지만 그렇게 열광적인 반응은 처음이었습니다. 그 열기에 도식적인 연설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 원고는 던져버렸지요.”

쿠바 행사를 마친 뒤 지인들이 있는 미국으로 건너가 머물다가 지난주 수요일 밤 늦게 귀국한 문정희 시인을 이른 오전 호텔 커피숍에서 만났다. 귀국 다음 날에는 미당 탄생 100주년 시낭송회에 참석했고, 인터뷰 당일은 조찬 모임에 연사로 초빙돼 막 행사를 끝낸 참이었다. 얼굴에 피로한 기색이 보여도 시인의 목소리에는 아직 쿠바의 열기가 남아 있었다. 그는 스페인어로 번역된 자신의 시집 ‘나는 문이다’를 들고 갔는데 그날 연설 말미에 “문(moon)은 영어로는 달이지만 한국에서는 문학이자 여닫는 문이기도 하다”면서 “나는 여러분의 창문을 통해 문학을 열고 싶은데 뮤즈가 만져지거든 나를 기억해달라”고 맺었다고 부연했다.

“프랑스나 미국 같은 곳의 환대는 가부장적인 동아시아에도 우리와 생각이 통하는 당신 같은 여성 시인이 있다니 놀랍다는 반응으로 느껴집니다. 쿠바에서는 좋은 시인 그 자체에 대한 열광을 느꼈어요. 쿠바는 체제만 사회주의이지, 국민 감수성은 발랄하고 깨어 있는 편입니다. 이 나라에서는 시라는 존재가 권위 있을 뿐 아니라 성스럽기까지 하고 자신들이 사랑해야 할 본질적인 가치로 받아들이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자본주의적 시각으로 바라보면 변방의 작은 나라 도서전에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쿠바는 언어의 힘과 순수한 열정이 살아 있는 국가라고 그는 말했다. 자본주의의 문학 언어는 엔터테인먼트의 일부로 재미있어야 하는 강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쿠바는 아직도 다른 오락물이 많지 않으니 순수 문학에 자연스레 집중할 수 있는 측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문정희 시인(왼쪽)이 아바나 ‘한국문학의 밤’에서 문 시인의 시를 읽고 그림을 그려 우수상을 받은 쿠바 대학생에게 상을 주고 있다.
이번 도서전에 가지고 간 문정희의 스페인어 시집을 쿠바 출판사 두 곳에서 출판하고 싶다고 제안했다. 아바나에서 발행하는 유서 깊은 타블로이드판 문학신문은 그네의 시 10편을 게재하겠노라고 허락을 구하기도 했다. 도서전 주최 측에서는 ‘한국문학의 밤’ 행사를 준비하면서 쿠바의 대학생들에게 미리 문정희의 시 ‘집 이야기’와 ‘화장을 하며’를 읽힌 후 독후감을 그림으로 받아놓았다. 이 중 우수상 2명을 가려 행사장에서 문 시인이 직접을 시상을 했는데 라틴 특유의 화려한 색감과 판타지가 가미된 수작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여자들은/ 몸 안에 한 채의 궁전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래서 따로 지상의 집을 짓지 않는다/ 아시다시피 지상의 집을 짓는 것은 남자들이/ 철근이나 시멘트나 벽돌을 등에 지고/ 한 생애를 피 흘리는/ 저 남자들의 집짓기, 바라보노라면/ 홀연 경건한 슬픔이 감도는/ 영원한 저 공사판의 사내들/ 때로 욕설과 소주병이 나뒹구는/ 싸움을 감내하며/ 그들은 분배를 위한 논리와/ 정당성을 만들기 위한 계락을 세우기도 하지만/ 우리가 사랑하는 남자들은/ 이내 철거되고야 말 가뭇한 막사 한 채를 위하여/ 피투성이 전쟁터에서 생애를 보낸다”(‘집 이야기’)

문정희는 여성성과 야성의 생명력이 넘치는 시 세계를 구축해왔다. 태어날 때부터 생명을 키우는 ‘궁전’을 지니고 나온 여성에 비해 평생 집 한 채 구하기 위해 투쟁하며 살아야 하는 남성을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집 이야기’는 그네의 작품세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명편이다. 시인 자신조차 해독할 수 없을지 모를 난해한 관념어를 나열해 놓고 한 울타리 속 이른바 전문가들의 엄호 아래 문학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스타일에 비하면, 좌고우면할 필요 없는 생생함이 오히려 투박하게 느껴지는 시편이다.

“한국 시의 수준은 굉장히 높은 편입니다. 한국인만의 사투리에 갇혀 있을 필요는 없어요. 우리는 한국에 살지만 지구에 사는 글로벌 시인이기도 합니다. 국경은 더 이상 무의미해요. 작년에 일본에 갔을 때 미시마 유키오의 연인이었던 시인이 당신의 국적은 ‘시의 나라’라고 말해 감동한 적이 있습니다. 아무리 글로벌 시를 지향해도 한국인의 생래적 지문과 나이테는 그대로 남을 테니 걱정할 것 없습니다. 진정 좋은 작품은 번역을 뛰어넘고 작은 오역조차 소통에 방해될 것 없다고 봅니다.”

문정희 시를 그림으로 그린 쿠바 대학생의 수상작.
문정희는 일 년이면 최소 서너 번 이상은 해외 각지의 도서전이나 시낭송축제에 초청을 받아 세계 무대를 누비는 중이다. 재작년에는 프랑스의 봄을 여는 유명한 ‘프랑스 시인들의 봄’에 초청받았고 비엔나, 베를린, 튀빙겐 등지를 돌아 지난해에는 일본에서 중국 시인 베이타오, 신경림 시인들과 더불어 시를 교류했고 사마천학회 초대로 시안에 가서 자신이 썼던 사마천 시의 무대를 직접 돌아보기도 했다. 올 4월에는 스페인 마드리드 대학에, 여름에는 러시아어 번역시집 출간에 맞춰 모스크바에 간다. 영어 불어 스페인어를 포함해 인도네시아어, 알바니아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언어로 여러 나라에서 그네의 시집이 번역됐다. 연전에는 스웨덴에서 시카다 상까지 받았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한국시인협회 회장으로 취임해 바쁜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지난달 시인협회 신년회 겸 봄맞이 행사에 문정희 회장은 회원들에게 의상에 초록 깃털을 꽂고 나오라고 사발통문을 보냈다. 문 시인은 이제 죽음의 터널에서 빠져나와 생명의 모드로 전환하자는 의지의 상징으로 녹색 드레스코드를 주문했다고 한다. 그는 지금 이 시대 문학이 껴안아야 될 강력한 주제는 바로 ‘생명’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여행을 하면 좀 더 온몸으로 살아야겠다는 생에 대한 강렬한 의욕이 생겨요. 더 이상 주저하고 멈칫거리거나 수식을 많이 달지 않으려고 해요. 시간이 없습니다. 생명을 포효하기에도 아까워요. 사실 나의 내면은 늘 팽개쳐진 아웃사이더요, 노마드였습니다. 떠도는 이산의 삶, 디아스포라 그것이었죠. 내가 가고 있는 (문학의) 길이 맞다고 믿는 일이 힘들었습니다. 여기까지 온 건 기죽지 않고, 내가 나를 믿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겁니다.”

시인은 “내가 먹어야 할 유일한 푸드는 고독, 마셔야 할 유일한 공기는 자유”라고 말미에 덧붙였다. 자유, 고독, 디아스포라의 삶. 언어와 국경을 넘나들며 생명을 포효하는 시인의 높고 가난한 남은 양식이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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