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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 나누며] "탈북아동 보살피는 게 통일의 희망 살리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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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2-27 20:42:12 수정 : 2015-02-27 20:4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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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청소년 그룹홈 ‘우리집’ 14년째 운영 마석훈씨 경기도 안산에 있는 ‘우리집’은 탈북 아동을 위한 그룹홈이다. 이곳에서는 가족이 없거나 방치된 탈북 아동들(남자 8명·여자 6명)이 모여 산다. 초등학교 2학년부터 대학교 4학년까지 연령대도 다양하다. 여자아이들은 주택 2·3층에서, 남자아이들은 4층에서 생활한다. 사회복지사 5명이 항상 이들을 돌본다. 지금까지 70명 정도의 탈북아동들이 우리집을 거쳐갔다. 이곳에는 자신은 손사래를 치지만 아이들이 아빠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다. 2002년부터 14년째 이곳을 운영한 마석훈(45) 우리집 시설장이다.

마 시설장이 탈북 아동들과 인연을 맺게 된 때는 2001년부터다. 그는 2남1녀의 맏아들이자 경북대 법학과 90학번으로 가족과 친지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그러나 운동권 출신인 그는 시위전력 탓에 갈 곳이 없었다. 1997년부터 시민단체에서 일하다 한 대안학교 교장의 추천을 받고 하나원에서 탈북 아동들을 가르쳤다. 마 시설장은 “하나원에서 1년 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교육보다 함께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17살 탈북자가 아무것도 모른 채 한국에 혼자 산다면 어떻게 되겠는가”라고 말했다. 

마석훈 탈북 아동 그룹홈 ‘우리집’ 시설장은 지난 11일 “한국 사람들이 탈북 아이들을 얼마나 잘 키웠는지 북한에 알리겠다”며 “이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통일의 희망을 살리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안산=이재문 기자
그는 2002년 서울시 강북구 수유동에 우리집을 열었다. 과정은 험난했다. 집세 낼 돈이 없어 1년 동안 경기도와 서울 등을 전전했다. 2003년쯤 집값이 싼 경기도 안산 본오동에 지금의 집을 얻었다.

마 시설장은 탈북 아동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보육원에 가면 부모가 없는 아이들은 무기력하고 아무것도 스스로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모가 있는 아이들은 다르다. 엄마를 편하게 하려면 공부를 하거나 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모가 있다는 것은 어려운 현재를 이겨내는 힘”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우리집은 가족이 있지만 경제적 문제로 방치될 수밖에 없는 아이들이 부모와의 관계가 끊어지지 않도록 도와준다. 가족이 없는 아이들을 위해 대안 부모도 찾아준다. 지난 8일에는 친부모와 아이를 연결해 주는 행사도 벌였다. 이날 행사에는 가족 12쌍이 다시 만났다.

그룹홈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마 시설장에게는 이별도 일상사다. 올해 초 우리집에서 10년 이상 생활했던 탈북 청소년 세 명이 독립했다. 박철민(19·가명)씨와 김혜은(26·가명)·혜정(24·가명)씨 자매다. 철민씨와 혜은씨는 각각 회사원과 간호사가 됐다. 세 명 모두 부모가 없어 이곳에서 대안가족도 얻었다. 고아였던 철민씨는 2003년 한 탈북자 부탁을 받은 브로커 손에 이끌려 한국으로 건너왔다. 그러나 유전자 검사 결과 브로커가 아이를 잘못 데리고 온 것으로 밝혀졌고 철민씨는 다시 버려졌다. 마 시설장은 “철민이는 처음에 이름도 없었고 호적도 없었다. 5살인지 8살인지 알 수도 없어 중간인 7살로 정하고 밀양 박씨로 등록했다”고 말했다. 혜은·혜정씨 자매도 엄마와 함께 탈북해 중국에서 숨어지냈지만 숙소에서 잠깐 나갔다 오겠다던 엄마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자매를 내보내니 마치 딸을 시집보내는 기분이 들었다. 다른 아이들도 이들처럼 10년 이상 키울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설날 같은 명절은 한국인들에게는 기쁜 날이지만 우리집 아이들은 아니다. 이때만큼은 아이들도 텔레비전을 끈다. 마 시설장은 “명절에 텔레비전을 틀면 가족들이 한복을 입고 차례 지내는 모습이 많이 나온다. 그걸 보면 아이들이 운다”고 말했다. 이웃집에 친척이 찾아오는 것도 보기 싫어 방에만 틀어 박혀 있는다. 결국 그는 2005년 설날부터 아이들과 함께 차례를 지내고 있다. 신주 단지에는 아이들이 한 글자씩 ‘우리집 식구 조상님 신’이라고 적는다. 조상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함께 음식도 만든다. 그래도 우울한 아이들을 달래느라 마 시설장은 집을 비울 수가 없다. 올해를 포함해 10년째 설날에 고향에도 못 내려갔다.

그는 탈북아동들을 보살피는 게 통일의 희망을 살리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마 시설장은 “한국 사람들이 탈북자들을 짐처럼 생각하면 북한 사람들이 통일이 돼도 우리와 함께 살려고 하겠느냐”며“한국 사람들이 5000원, 1만원씩 모아서 탈북 아이들을 얼마나 잘 키웠는지 북한에 알리겠다”고 말했다. 실제 그는 아이들이 처음 한국에 왔을 때부터 기록한 사진과 글들을 모아놓는다. 그러면서 통일이 되면 이 책을 북한 사람들에게 보여주겠다고도 밝혔다. 통일준비는 정부에서만 하는 게 아니었다. 안산의 작은 탈북아동 보호시설에서도 이미 통일의 꿈이 시작되고 있었다.

염유섭 기자 yuseob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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