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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일상 톡톡] "아무리 사랑해도 혼전계약서 써라"

입력 : 2015-02-28 05:00:00 수정 : 2015-02-28 13:4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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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영업을 하고 있는 김모(65)씨는 박모(56·여)씨와 재혼을 앞두고 상속 문제로 결혼을 반대하는 자녀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김씨는 자녀들을 설득하기 위해 고심 끝에 이혼시 재산분할청구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조항을 담은 혼전계약서를 박씨에게 내밀었다. 그 대신 김씨는 박씨에게 결혼 생활이 10년째 접어드는 해에 4억원 상당의 양평 전원주택을 증여하는 내용을 계약에 포함시키겠다고 했다. 박씨는 계약서를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혼인 중 발생하는 채무에 대해서는 자신의 동의를 받아야 하며, 도박이나 주식에 빠져 가정 경제를 파탄으로 몰고 갔을 때, 그리고 이유 없이 5일 이상 외박할 땐 이혼 시 자산에 대한 지분권을 상실한다는 약정도 요구했다. 과연 이러한 내용의 혼전계약서 체결이 가능할까.

요즘 결혼을 앞둔 예비 부부들 사이에서 ‘혼전계약(prenuptial agreement)’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는 각자 보유 재산에 대한 권리관계와 이혼시 재산분할 비율 등을 결혼 전 미리 정하는 계약을 말한다.

그러나 이 같은 혼전계약은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개념이었다. 유교문화가 깊이 뿌리 내린 보수적인 사회의 특성상 사랑해서 결혼하는 이들이 돈 문제를 운운하며 계약서를 쓰는 것 자체가 정서에 맞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 하지만 인구 1000명당 6.4명이 혼인하고 2.3명이 갈라서는 ‘이혼공화국’ 대한민국에서 혼전계약서는 더 이상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상황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우리나라는 부부간 재산분할 비율을 대체로 5:5로 본다. 가령 자산이 10억원이고 채무가 4억원일 경우 부부의 재산 축적 기여도가 50%씩 같다면 6억원의 절반인 3억원씩 나눠 갖는 식이다.

황혼 이혼 후 새 출발을 하려는 중장년층 자산가들이 혼전계약에 큰 관심을 보이는 것도, 재산을 지키기 위한 일종의 안전장치로 접근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실제 한 법무법인이 최근 개최한 혼전계약 관련 세미나에는 평일 낮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60여명의 고객이 참석했다.

부동산·카지노 재벌로 유명한 도널드 트럼프는 그의 저서 <억만장자 마인드>에서 성공의 법칙 중 하나로 혼전계약을 꼽았다.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결혼 전 반드시) 혼전계약서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결혼해도 이혼할 확률이 절반이 넘는 미국의 현실을 감안할 때 자신이 이룬 경제적 성취를 허무하게 날려 버리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한 현실적 조언이다.

그는 “누구나 안정된 결혼생활을 오래하겠다고 하지만 현실은 이를 방해한다”며 “(혼전계약) 얘기를 꺼내기 어렵겠지만 단지 몇 년간 함께 산 사람에게 전 재산을 줄 가능성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실제 트럼프는 3번의 결혼과 2번의 이혼을 거치는 과정에서 혼전계약을 맺어 경제적 손실을 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유명인이 혼인계약서를 썼다는 얘기는 미국이나 영국에서 나오는 게 대부분이다. 한 법률 전문가는 “영미권 국가들은 결혼을 계약에 바탕으로 한 결합으로 보고 두 사람의 의사를 존중하지만, 우리나라는 (사회제도의 성격을 강조해) 법원이 후견인으로서 깊숙이 관여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즉, 결혼제도에 대한 생각도 계약에 대한 효과도 다르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2030 젊은 세대들은 혼전계약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보이고 있을까.

결혼정보회사 듀오는 지난해 10월2일부터 12월31일까지 전국 2030대 미혼남녀 782명(남 399명·여 383명)을 대상으로 ‘혼전계약서의 필요성’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미혼 여성의 63.2%는 결혼 전 ‘혼전계약서 작성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남성 54.9%는 ‘필요하지 않다’고 답했다. ‘혼전계약서가 필요하다’고 답한 422명(남 180명·여 242명)에게 그 이유를 묻자, 과반수에 가까운 미혼남녀가 ‘결혼 후 서로의 인격 존중을 위해(46.4%)’라고 응답했다. 이어 ‘이혼 후 평등한 재산 분할을 위해(21.6%)’, ‘이혼 후 자녀의 공동 양육을 위해(12.8%)’ 순으로 답해 이혼까지 대비하는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반면 ‘혼전계약서가 필요하지 않다’고 답한 360명(남 219명·여 141명) 중 42.2%는 ‘결혼은 계약이 아닌 약속’이라 생각했다. 이밖에도 ‘사랑하니까 필요하지 않다(24.7%)’, ‘결혼할 때부터 이혼을 생각하고 싶지 않다(20.8%)’ 등의 답변이 뒤를 이었다. ‘혼전계약서’에 꼭 들어가야 할 항목으로 남녀 모두 ‘결혼 후 행동 수칙(35.4%)’을 1위로 꼽았다. 이어 남성은 ‘결혼 후 가사 분담(21.1%)’, ‘결혼 후 재산 관리(18%)’를, 여성은 ‘결혼 후 재산 관리(18%)’, ‘결혼 후 가사 분담(17.2%)’을 택했다.

이와 함께 ‘혼전계약서’ 항목 중 하나인 ‘이혼시 재산 분할 청구 금지’ 조항이 법적 효력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묻는 질문에 많은 미혼남녀가 ‘그렇다(남 63.2%·여 57.2%)’고 답했다.

김한규 법무법인 공간 변호사는 “혼전계약서는 주로 윤리적 지침에 해당하기 때문에 개인의 인격권 등을 고려할 때 법적인 효력을 부여하기는 어렵다”며 “다만 위자료 산정 등에 있어 법관이 개별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요소로는 기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계약서를 작성했다고 해서 나중에 분쟁이 생긴 경우 계약서 내용대로 100% 효력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며, 법원에서 중요한 참고자료 정도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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