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공약(空約)'에 불신…유권자 '묻지마 투표' 여전

입력 : 2015-02-01 19:13:04 수정 : 2015-02-01 23:15:31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매니페스토 10년 暗] 10년간 ‘지방선거 유권자 의식’ 분석
2005년 세계일보 보도 이후 중앙선관위와 언론, 시민사회단체 등을 중심으로 선거철마다 매니페스토 운동이 벌어졌다. 인지도나 소속 정당만 따지는 ‘묻지마 투표’ 관행에서 벗어나 후보가 내놓은 공약 내용과 실현 가능성을 꼼꼼이 따져보고 투표하자는 취지에서다.

클릭하면 큰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바뀌지 않은 ‘묻지마 투표’ 관행

지난 10년간 매니페스토 운동은 우리나라 선거문화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을까. 세계일보가 1일 중앙선관위로부터 입수한 ‘역대 지방선거 유권자 의식조사’를 분석한 결과, 과거에 비해 정책선거의 중요성에 대한 유권자의 인식은 상당히 개선된 것으로 확인됐다. 2006년 지방선거 열흘 전 여론조사에서 “지지 후보를 선택할 때 어떤 점을 가장 크게 고려하겠느냐”는 질문에 유권자들은 인물·능력(36.1%)을 1순위로 꼽았다. 정책·공약을 선택한 응답자의 비율은 23.7%였다. 하지만 매니페스토 운동이 활발해지면서 4년이 흐른 시점부터는 정책·공약이 유권자의 최우선 고려 대상으로 올라섰다. 정책·공약을 우선 고려하겠다는 응답자는 2010년 지방선거 때 32.8%, 지난해 지방선거에서는 40.4%로 늘어났다.

매니페스토를 들어본 적이 있다는 응답은 2006년 지방선거 때 29.5%에서 지난해 지방선거 때는 33.8%로 4.3%포인트 증가했다. 소폭이긴 하지만 매니페스토라는 용어 자체의 인지도 역시 향상된 결과로 해석된다.

그러나 유권자의 변화된 인식이 실제 투표장에선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됐다. 선거 다음 날부터 실시된 여론조사를 통해 같은 질문을 해봤더니, 정책·공약을 꼽은 응답자의 비율이 선거 전과 비교해 반 토막이 났다. 선거 전에는 고려 대상 1순위였던 것이 선거 직후엔 인물·능력은 물론, 소속 정당에도 밀려난 3위로 추락했다. 정책선거의 중요성은 알고 있지만, 막상 실천은 하지 않는 유권자의 이중성이 드러난 셈이다.

투표장 들어가기 전과 후의 마음이 바뀌는 경향은 다른 전국단위 선거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2012년 총선에서 38.1%→16.1%, 같은 해 대선에서는 45.5%→27.4%로, 유권자 마음에서 정책·공약의 비중은 선거 후 확 줄었다.

◆정책 외면해도 불이익 없는 선거판

유권자가 정책을 외면하면서 후보들도 자연스럽게 매니페스토와 거리를 두고 있다. 선관위는 정책중심의 선거풍토 조성을 위해 지난해 지방선거 30일 전인 5월5일부터 광역단체장 및 교육감 예비후보의 5대 핵심공약을 정책·공약알리미 홈페이지(party.nec.go.kr)에 공개했다. 강제성이 없는 탓에 공개대상 예비후보 163명 중 34명(21%)이 불참했다. 그나마 후보들은 공약으로 각종 지역사업을 단순히 나열해놓기 일쑤다. 선거에 관심이 있는 유권자가 공약을 들춰보더라도 제대로 비교하고 마음에 드는 공약을 선별하는 게 쉽지 않다는 얘기다. 유권자가 공약을 비교·선택하기 위해선 객관적인 기관이 후보별로 정책을 평가해 점수를 매기고 등급을 부여하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 하지만 현행법은 이를 금지하고 있다. 공직선거법 제108조의2는 언론이 정당·후보자의 정책과 공약을 평가할 때 순위나 등급을 통한 서열화는 불허하고 있다.

선관위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공약검증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하는 비교·평가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며 “서열화 금지 규정 폐지에 대한 공직선거법 개정 의견을 2013년 제출했지만, 아직 국회에서 제대로 된 논의가 진행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유권자와 정치인의 인식 개선과 제도적 보완이라는 두 수레바퀴가 동시에 굴러갈 수 있어야 매니페스토가 제대로 정착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최진 경기대 교수는 통화에서 “유권자가 정책에 관심을 갖는 게 중요하지만, 그간 정치권이 매번 공약을 뒤집었고 실행돼도 국민 개개인에 별로 이득이 돌아가지 않으면서 불신이 생긴 탓도 있다”며 “대통령과 지자체장이 정치에 휘둘리지 않고 정책에 몰입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추상적이고 국민에게 와닿지 않는 경제민주화 등의 공약은 점차 관심 밖으로 멀어지지 않았느냐”며 “알기 쉬운 공약을 구체화해 유권자가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과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박세준 기자 3jun@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