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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은 신바람이 났다. 곧 태어날 둘째 아기가 벌써 보고 싶었다. 신랑으로서 할 일을 떠올려보았다. 아내에게 약국에서 파는 철분제를 챙겨주긴 했지만 뭔가 부족했다. 집으로 향하던 신랑은 한의원으로 발길을 돌려 보약 한 첩을 샀다. 반갑게 맞이할 아내를 생각하며 룰루랄라 길을 건너다 사고를 당했다. 차에 치인 그는 숨졌다. 아내는 며칠 후 아빠를 똑 닮은 아기를 낳았다. 1992년 발생한 이 일은 ‘슬픈 시인’ 강민숙씨의 이야기다. 강씨는 일기를 기초로 시를 썼다.

“오늘은/ 동사무소에서 지환이 출생신고를 하면서/ 당신 사망신고를 같이 냈습니다/ 대기실 의자에 앉아/ 죄인처럼 고개를 떨구는데/ 당신 이름을 지운/ 빨간 가위표가/ 내 심장에 꽂혀듭니다”(‘동사무소에서’)

강씨의 시집 ‘노을 속에 당신을 묻고’(1994) 중 한 편이다. 시인의 애절한 이야기가 매스컴에 오르내리며 시집은 30만부 넘게 팔렸다. 그의 독자 중 남편과 사별한 여성들은 ‘참솔어머니회’를 만들어 서로 아픔을 감쌌다. 한때 1500명이나 됐다. 모임 때마다 회원들을 실컷 울게 한다는 시인은 운전면허 따기, 환경 바꾸기, 자기일 갖기, 단기 목표 세우기, 아빠 우상화하기 등 5대 행동수칙을 정해 홀로서기를 독려했다. 자신도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대학 강단에 섰다.

충북 청주에서 발생한 뺑소니 교통사고 피해자 ‘크림빵 아빠’ 이야기가 미담을 그리워하던 사람들의 마음을 움켜쥐고 있다. 만삭의 아내가 좋아하는 크림빵을 사들고 집으로 향하다가 교통사고로 숨진 신랑의 비극이 강씨의 사연과 많이 닮았다.

감동 1막은 피해자 아버지의 위대한 용서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참척의 아픔 속에서도 피의자를 향해 “자수해서 고맙다. 위로해주러 왔다”며 손을 내밀었다. 죄를 짓고도 죄책감을 갖지 않고, 작은 실수에도 갑질을 해대는 삭막한 세상에서 “그 사람도 한 가정의 가장일 텐데…우리 애는 땅속에 있지만, 그 사람은 이제 고통의 시작”이라고 되레 피의자를 걱정했다.

감동 2막은 “사고 당시에는 사람을 친 줄 몰랐다”는 피의자의 진술을 듣고 잠시 분노했던 아버지의 두 번째 용서다. 그는 “용서할 준비가 돼 있으니 진정으로 뉘우쳐라”고 재차 손을 내밀었다. 통 큰 용서다. 어떤 설교, 어떤 설법이 이만한 감동을 줄까. 

조정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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