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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천천히 마시듯… 삶도 찬찬히 음미하는 것

입력 : 2015-01-30 21:55:28 수정 : 2015-01-30 21:5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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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마시는 사람은 마음 느긋, 무엇인가 생각할 여유가 생긴다”
철학자·언론인 등의 ‘커피 예찬론’
스콧 F 파커·마이클 W 오스틴 외 지음/김병순 옮김/따비/2만2000원
커피, 만인을 위한 철학/스콧 F 파커·마이클 W 오스틴 외 지음/김병순 옮김/따비/2만2000원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은 모두 최근에 유행하는 커피라고 하는, 이교도들이 즐기는 그 혐오스러운 술을 지나치게 많이 마시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우리 남편들은 성불구자가 되었고, 그렇게도 온화했던 애인들은 무력한 남성이 되고 말았다.”

1674년 영국 런던 여성들이 단단히 뿔났다. 그녀들이 작성해 정부에 제출한 ‘커피하우스에 반대하는 여성들의 청원서’는 뜻밖에도 커피가 남자의 성적 능력을 감퇴시킨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과연 그럴까. 여자들이 커피를 술의 일종으로 여긴 건 일리가 있다. 부인들 보기에는 남편이 술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나 커피하우스, 즉 카페에 죽치고 앉아 있는 것이나 별반 차이가 없을 테니까. 그렇게 밖으로만 나도니 자연히 부인과 가정에 소홀해졌을 테고, 결국 성불구자나 다름없게 되었다는 뜻이리라.

재미난 건 당시 영국 왕 찰스 2세가 여성들의 하소연을 받아들여 1675년 ‘커피하우스 금지 포고문’을 발표했다는 점이다. “커피하우스가 놀고 먹으면서 정부에 불평만 하는 자들의 거대한 놀이터로 전락했다. … 상인들도 일은 내동댕이치고 거기에 죽치고 앉아 있기 때문에 1676년 1월10일부터 모든 커피하우스를 전면 폐쇄한다.”

이웃 나라 프랑스와 비교하면 영국 정부는 확실히 선견지명이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파리, 빈, 베를린 같은 유럽 대륙의 대도시도 커피하우스가 사회적 활동과 의사소통의 중심지로 빠르게 자리 잡아갔다. 특히 파리 지식인들은 이 흥미진진한 새로운 시설을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오늘날 파리를 ‘카페의 본고장’쯤으로 여기는 이가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18세기 파리의 명소는 열띤 토론이 벌어졌던 ‘카페 드 푸아’였다. 1789년 7월14일 이 커피하우스에서 나온 일단의 프랑스 혁명가들이 바스티유 감옥으로 돌진했다고 한다.” 

요즘은 스타벅스가 커피, 또는 카페와 동의어처럼 쓰이는 시대다. ‘커피, 만인을 위한 철학’의 공저자들은 스타벅스가 지배하는 미국 사회를 돌아보며 “스타벅스 커피는 슈퍼마켓 커피보다 정말 더 맛있을까?” 같은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프랑스는 물론 세계의 운명을 뒤바꾼 프랑스 혁명도 커피, 그리고 카페의 영향을 참 많이 받았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책은 총 21명의 미국인이 공저자로 참여해 커피와 철학의 관계를 논하고 커피 예찬론을 펼친다. 커피를 사랑하는 철학자부터 커피 전문가, 언론인, 역사학자까지 배경도 다양하다. 다들 커피 없이는 단 하루도 못 사는 애호가들이다. 대체 커피의 어떤 점이 이토록 치명적인 매력을 발산하는 걸까.

“(처음 커피를 마셨을 때) 시와 노래가 저절로 입에서 흘러나왔다. 앞으로 다시는 결코 피곤해지거나 화내는 일이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커피는 대개 천천히 마신다. 따라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은 마음이 느긋해져서 대화를 나누거나 책을 읽거나 무엇인가 생각할 여유가 생긴다. 또한 커피는 주의력을 모아주고 창의력을 높여 철학적 사유에 도움을 준다.”

그러니 마르크스나 사르트르 같은 철학자가 커피를 즐긴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계몽주의의 선구자 볼테르도 하루에 무려 60잔의 커피를 소비했다고 한다.

물론 철학자라고 다 커피를 좋아한 건 아니다. 책에 따르면 칸트와 니체는 커피를 전혀 마시지 않았다. 철학, 또는 인문학에 정을 붙이려고 입맛에 맞지도 않는 커피를 억지로 가까이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애당초 커피를 마시며 토론하는 곳으로 출발한 카페의 진화가 눈부시다. 북카페, 애견카페, 고양이카페처럼 커피 이외에 ‘플러스 알파’를 제공하는 카페가 늘면서 커피를 즐기는 대중의 삶도 갈수록 풍성해진다. 사진은 어느 북카페의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철학을 논하는 토론장으로 출발한 카페에서 요즘은 혼자 커피를 홀짝이는 젊은이를 종종 만나게 된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거나, 스마트폰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때로 낄낄 웃는다.

이처럼 카페 안에서 말로 하는 대화가 사라졌다고 해서 ‘커피와 철학이 멀어졌다’고 여기는 건 섣부른 단정일 게다. 대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음미되지 않는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없다”라는 격언을 남겼다.

삶은 꿀꺽 삼키는 게 아니라 찬찬히 음미하는 것이다. 그러니 홀로 커피를 주문해 마시며 조용히 앉아 있는 남녀 한 명 한 명이 다 철학자 아닐까.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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