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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과 俗의 모호한 경계… 故 박현기 회고전

입력 : 2015-01-27 20:19:02 수정 : 2015-01-27 20: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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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 국립현대미술관 5월25일까지 돌, 흙, 나무 등 자연의 소재를 영상매체와 결합한 작품으로 국내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박현기(1942∼2000)는 1997년 미국 뉴욕 킴포스터갤러리 전시에 ‘만다라’를 출품한다. 수많은 포르노 사진을 합성해 성(聖)과 속(俗)의 모호한 경계를 언급한 작품이다. 작품에 우주의 진리를 표현한 불화(佛畵)인 만다라를 끌어온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그의 인생과 예술을 돌아보는 기획전 ‘박현기 1942-2000 만다라’가 5월25일까지 열린다.

테크놀로지의 인간화를 추구했던 박현기의 작품은 다분히 동양적인 소재나 사상을 연상케 한다. 작가 개인의 문화적 배경과 경험이 많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박현기는 한국전쟁 당시 대구에서 피란민들이 무태고개를 넘어가며 돌탑을 쌓는 모습을 보고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서구식 교육을 받았지만 1960년대에는 대구 근교의 남평문씨 세거지(世居地)에 있는 광거당(廣居堂)에서 전통문화를 배웠다. 

1997년 뉴욕 킴포스터갤러리(Kim Foster Gallery)에서 열린 전시에 출품된 만다라 작품. 얼핏보면 기하학적 도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수한 포르노 사진을 합성한 것이다.
일본 오사카의 가난한 한국인 가정에서 태어난 박현기는 해방 이후 한국으로 건너왔다. 홍익대에서 서양화와 건축을 공부한 그는 대구에서 인테리어 사업을 하며 번 돈으로 모니터를 사 작품활동을 했다. 세계적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1932∼2006)이 주로 외국에서 활동하며 1984년 한국을 드나들기 시작한 데 반해, 박현기는 1970년대 말부터 영상매체를 작품에 활용하며 독특한 비디오 작업을 해나간 작가다. 자신이 동경했던 백남준과 국내외 전시에서 교류하기도 했다.

1980년 ‘무제’ 작품에서 작가는 돌의 영상을 담은 모니터를 실재 돌 사이에 끼워놓았다. ‘비디오 돌탑’으로도 불리는 그의 대표작이다. 회고전 성격의 이번 전시에선 2012년 기증된 2만여점에 달하는 관련 자료가 정리돼 그중 일부가 처음으로 공개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2013년 미술연구센터를 열어 아카이브 전용 수장고를 확보하고 작가들의 작업노트, 일기, 스케치북 등 수집한 자료를 정리하는 작업을 거쳤다. 박현기의 1965년 학창시절 메모부터 2000년 임종 직전 스케치까지 35년간 그의 인생과 작품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자료가 관람객들과 만난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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