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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일상 톡톡] '택배'라 쓰고 '한숨'이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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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1-26 05:00:00 수정 : 2015-02-15 16:3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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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 乙' 경비원·택배배달원에 '슈퍼 甲질'하는 부끄러운 사회

<편집자 주> 민족 최대의 명절 설이 이제 채 한 달도 남지 않았습니다. 설 연휴를 맞아 경비원 분들께 명절 선물 하나라도 드리는 건 어떨까요. 흔한 치약이나 비누 말고, 이왕이면 알차고 좋은 것으로 말입니다. 그러면서 ‘고생 많으시죠? 늘 감사합니다’라는 이 따뜻한 말 한마디가, 명절에 고향에 내려가지도 못하고 아파트를 지키느라 애 쓰고 있을 우리네 경비원들의 피로를 조금이나마 풀어줄 것입니다.

#1. 서울 종로구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근무하는 정모(66)씨는 지난 주말 어이없는 일을 겪었다. 자신이 맡고 있는 아파트 동 주민이 부재중이라 대신 택배물건을 받았는데, 잠깐 순찰을 나갔다 온 사이 물건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정씨는 “잠깐 주차장 순찰을 다녀온 사이에 없어졌다”며 “일은 일대로 하고 이런 데까지 휘말리게 되니 정말 씁쓸하다”고 울먹였다.

#2. 분당신도시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김모(67)씨는 설과 같은 명절이 두렵다. 몰려드는 택배와의 이른바 ‘전쟁’을 치러야 하기 때문. 아파트 100여가구 입주자에게 배달되는 택배의 뒤처리는 모두 김씨의 몫이다. 보통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끊임없이 택배 물건이 도착하는데, 김씨는 청소를 하거나 순찰을 돌다가도 택배물건이 오면 경비실로 곧장 돌아가 수령일지를 작성해야 한다. 그는 “사실 택배 수령은 우리의 고유업무가 아닌데, 요즘에는 택배가 모든 업무 중 가장 많고 또 고된 일”라고 하소연했다.

#3. 강원도의 한 전방부대에서 직업군인으로 근무하다 전역한 뒤 수십년째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는 박모(69)씨는 “저녁 7~8시가 되면 경비실에 택배물건이 가득 차 꼼짝도 못할 정도”라며 “여기서 세 끼 밥을 해먹고 새벽에는 쪽잠도 자는데 택배물건을 이고 지내야 할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4. 10년차 경비원 최모(65)씨는 “간혹 입주자들이 부탁을 하거나 무거운 택배물건이 도착하면 직접 옮겨주기도 한다”며 “잠깐 눈을 부치는 새벽시간에 물건을 찾으러 오는 경우도 종종 있어 깜짝 놀랄 때도 있지만, 입주민들을 위한 배려라 생각하고 묵묵히 일한다”고 밝혔다.

#5. 강원도 소재 한 아파트 경비실에서 일하는 이모(63)씨는 택배물건의 틈에 끼어 제대로 앉지도 못한 상태에서 얼마 전 한 입주민이 선물로 준 락앤락 플라스틱 반찬통에 담긴 김치와 나물로 겨우 끼니를 해결한다. 이씨는 “특히 명절 때 6㎡(약 2평) 남짓한 경비실은 사람보다는 택배물건을 위한 공간에 가깝다”며 한숨을 내쉰다.

◆ 명절 다가올수록 경비원들 택배 스트레스 ↑

‘민족의 명절’이라는 설이 다가오면서 아파트 경비원들은 ‘택배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명절 때마다 몰려드는 택배물건으로 인해 경비원들이 몸살을 앓기 때문. 낮 시간에 택배물건을 보관했다가 저녁때가 되면 일일이 돌아다니면서 배달해주거나 전화(인터폰)를 해야 한다. 택배물건으로 경비실이 비좁아져도 이 상자를 밖으로 내놓을 수 없다. 한파에 경비실 앞에 쌓아둔 과일이 얼어버려 입주민에게 항의를 받은 경험이 몇 번 있어서다.

이처럼 아파트 경비원들은 기본적인 경비업무뿐만 아니라 택배물건 임시보관 일까지 사실상 도맡아 하고 있다. 특히 근무교대 시간이 되면 업무 인수인계 과정에서 택배물건이 분실될 수도 있기 때문에 더욱 예민해진다. 또 자칫 입주민의 심기를 건드리면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어 불평과 불만의 목소리를 내기도 어려운 처지다. 관리사무소와 이들 사무소가 위탁한 경비업체, 그리고 ‘슈퍼 갑(甲)’인 입주민 사이에서 힘없는 ‘만년 을(乙)’인 경비원들의 시름만 깊어지고 있다.

◆ "네가 뭔데 택배 가져가라고 하는 거야"

이런 가운데 실제 택배물건을 가져가달라고 전화를 한 경비원이 폭행 당한 일도 있었다. 광주 한 아파트에서 택배물건을 가져가라는 전화에 화가 난 30대 입주민이 60대 경비원을 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관할 경찰서는 아파트 경비원을 폭행해 상해를 입힌 혐의(상해죄)로 입주민 박모(34)씨를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박씨는 지난 4일 오후 8시경 광주 북구의 한 아파트 경비실에서 경비원 조모(65)씨의 목을 조르고 발길질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결과 박씨는 택배물건을 찾아가라는 조씨의 재촉 전화에 짜증이 나 경비실로 찾아가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박씨는 폭행 직후 관리사무소로 찾아가 조씨에 대한 해고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조씨는 박씨에게 사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조씨가 6일 고소장을 접수하자 상황은 달라졌다. 조씨는 2주짜리 진단서를 끊어 박씨를 고소했고, 박씨는 조씨를 찾아가 사과했다. 박씨는 형사처벌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게다가 조씨는 박씨의 강력한 처벌을 원하고 있다고 경찰은 전했다.

◆ 정신적인 폭력 > 육체적인 피로

하지만 경비원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육체적인 피로보다 정신적인 폭력이다. 다시 말해 주민들과 상대하면서 받는 마음의 상처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아파트 경비원 10명 중 적어도 3명이 주민들로부터 폭언을 들은 경험이 있었다. 새누리당 김태원 의원실도 입주민들로부터 경비원이 폭행과 폭언을 당하는 사례가 매년 급증 추세를 보인다고 밝혔다. 주당 평균 61.8시간의 격무와 박봉도 모자라 비인격적 대우까지 더해져 이들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 경비원이 일부 주민들의 비인격적 대우에 시달리다 분신자살을 시도한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여론이 들끓은 적도 있었다. 모멸감을 느낄 정도의 인격 무시와 폭언이 반복, 약자인 경비원을 극단적 선택으로 몰고 간 것이다.

◆ '甲-乙' 관계개선이 우선…정부 차원의 관리·감독도 필요

이 같은 경비원들의 처우나 고용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용역업체와 경비원 사이의 ‘갑(甲)-을(乙)’ 관계개선이 최우선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보통 용역업체는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에 최저가를 제시해 선정되는데, 이는 경비원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 된다. 특히 근로기준법상 근로 기간이 1년 이하인 경우 퇴직금을 주지 않아도 돼 경비원 계약기간이 최근 3~6개월 단위로 짧아지고 있는 추세다. 이 때문에 재계약을 위해 부당한 대우에도 목소리를 높이지 못하는 경비원들이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정부 차원의 관리·감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한 노무사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용역업체는 무급 휴식시간을 늘리는 등의 꼼수를 부리고 있지만 실상 이 시간에 쉬는 경비원들은 거의 없다”며 “정부가 용역업체의 투명성과 노무관리, 근로계약서 등을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경비원의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직접 경비원을 고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한 인권단체 관계자는 “최근 서울 외곽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 임금 상승을 우려해 15% 경비원을 부당해고하는 사례도 발생하는 등 경비원들의 근로 환경이 더욱 열악해지고 있다”며 “위탁업체를 통한 간접고용이 아닌 직접고용을 통해 고용불안정을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택배배달원 '가슴앓이'…명절선물 분실한 고객 항의 ↑

올해 5년차 택배배달원인 채모(33)씨는 “평소에는 하루 100~150개 정도 배송하는데 명절 때는 200~250개까지 늘어나고, 새벽 5시30분부터 일하는데 자정이 넘어야 일이 끝날 정도”라며 “늦게 배송됐다고 화를 내는 고객이나 (고객의) 요청에 따라 집 앞에 물건을 두고 갔는데 이게 없어졌다면서 책임지라는 고객을 상대할 때면 정말 힘이 빠진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15년째 택배배달원을 하고 있는 유모(45)씨는 “며칠 전엔 물량이 너무 밀려 수취인 사인받는 것을 깜박하고 경비원에게 맡겨놨는데 택배가 분실됐다면서 물어내라고 고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며 “말 한 마디 못하고 물어줘야 할 판”이라면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경비원 못지 않게 명절에 택배로 ‘가슴앓이’를 해야 하는 사람들이 또 있다. 바로 택배배달원이다. 설을 앞두고 배송물량이 크게 늘어 몸은 힘들지만 보람은커녕, 고객들의 모욕적인 항의까지 참아내야 하기 때문.

설 명절이 다가올수록 감당하기에 벅찰 정도의 엄청난 물량에 치여 택배물건 분실에 대한 고객 항의가 늘어나면서 택배회사들도 택배물건 안전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택배업계 관계자는 “모든 택배물건은 집하장에서 터미널과 차량 등 모든 이동과정에서 위치추적이 가능하다”며 “수취인 부재인 택배물건의 경우 반송을 원칙으로 해 최대한 분실을 막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인력 부족과 배송 지연을 최대한 막기 위해 본사 직원을 최소한만 남기고 현장 배송작업에 투입했으며, 일부 개인 트럭운전자와 계약을 통해 배송차량을 추가로 배치시켰다”고 덧붙였다.

한편, 택배회사들이 2월 설 연휴를 앞두고 명절선물 특별수송 준비에 한창이다. CJ대한통운은 오는 2월2일부터 25일까지 4주간을 설 선물 특별수송 기간으로 정하고 비상체제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CJ대한통운은 현재 택배차량을 정비하고 폭설을 대비한 제설장비 등을 점검하고 있다. 한진택배 역시 설 선물 택배물건이 본격적으로 증가하는 2월9일부터 설 연휴 다음날인 2월23일까지를 비상운영 기간으로 정하고, 차량확보와 인력충원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설 선물을 안전하고 정확하게 전달하려면 물량이 집중되는 기간을 피해 2월 첫째주에 발송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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