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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의중국을보고세상을읽다] 근현대 중·일관계와 중·미관계

관련이슈 김진호의 중국을 보고 세상을 읽다

입력 : 2015-01-23 21:04:03 수정 : 2015-01-23 21: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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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최대 봉건왕조 청나라는 1840∼1842년 1차 아편전쟁에 패하는 것을 시작으로 많은 조차지를 개방하고, 메이지유신으로 변모한 일본은 1894∼1895년 청일전쟁과 1904∼1905년 러일전쟁에 승리하며 대만을 점령하고 중국 동북지역에도 진출한다. 1931년 9월 18일 일본군은 ‘만주철도 폭파 사건’을 조작해 만주 침략을 위한 병참기지로 만들며, 1932년에는 만주국까지 건설한다. 중일전쟁은 1937년 7월 7일 베이징 서남 교외의 ‘노구교사건’으로 전면전이 된다. 중국은 이때부터 제2차 세계대전 종식까지 국민당, 공산당을 포함한 모든 중국인이 참가한 ‘8년항전’(八年抗戰)을 치르게 된다.

미국은 1941년 12월 8일 일본의 진주만 습격으로 전쟁에 참가해 태평양전쟁으로 확장되는데, 이 전장에서 미국은 중국의 국민당, 공산당과 협력하게 된다. 그러나 종전 후 중국에서는 공산당과 국민당의 내전이 진행됐고, 그 결과 대만해협을 마주보고 분단된다. 신해혁명으로 1912년 난징에서 건국된 중화민국은 대만으로 이전하고, 중국본토에는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이 건립된다. 사회주의 중국은 건국 후 바로 한국전쟁, 그리고 문화혁명시기 월남에서 미국과 직간접적으로 전쟁을 치른다.

데탕트 시기인 1960년대 초 미국, 영국, 소련은 중국 핵실험 반대를 목적으로 3자 간 조약을 체결하고, 1964년 중국의 핵실험 직전 중국이 핵개발을 계속할 경우 신장위구르 지역의 핵개발 장소는 물론 베이징에 대한 공중폭격도 불사하겠다는 전쟁위협과 ‘3차 세계대전’ 발발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그러나 중국은 1964년 10월 원폭실험에 성공한 데 이어, 1967년에는 수소폭탄을, 1970년에는 인공위성 발사까지 성공시킨다.

김진호 단국대 교수·국제관계학
때를 같이해, 1969년에는 닉슨 독트린이 발표돼 중국과 미국 사이에 해빙 분위기가 형성됐다. 또한, 1970년 11월에는 유엔총회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을 받아들이고 중화민국을 밀어내자는 ‘알바니아 안’이 통과됐다. 미국의 탁구팀은 1971년 4월 중국을 방문해 ‘핑퐁외교’를 진행했고, 10월 유엔총회에서 중국의 유엔가입이 최종 승인돼 중국은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 됐다. 1971년 7월에는 미국 대통령 특별보좌관 헨리 키신저가 베이징을 방문해 미·중 교류도 시작됐다. 일본은 미국보다 더 빠르게 1972년 9월 다나카 총리의 방중과 9월 29일의 ‘중·일공동성명’으로 중국과 국교정상화를 이룬다. 미국은 1979년 1월 1일에서야 중국과 국교를 정상화했다. 중국은 1976년 마오쩌둥이 사망하고 ‘문혁’이 끝나고, 덩샤오핑에 의해 1978년부터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했다.

2011년 초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주장한 ‘미국의 태평양시대’라는 선언은 중국의 부상에 대한 견제로 미국은 미·일, 한·미 등 각종 외교동맹을 강화하고 있다. 이에 중국도 아시아에서 미국과 힘겨루기에 나서며 견제와 타협의 이중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일본에 대해서는 중국역사의 경험에 비쳐진 ‘8년항전’의 연장선에서 압박을 가하고 있다.

한·중관계 발전에 중·일, 중·미관계가 중요한 작용을 한다는 점에서 2015년을 더욱 주목하게 된다.

김진호 단국대 교수·국제관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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