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1941년 12월 8일 일본의 진주만 습격으로 전쟁에 참가해 태평양전쟁으로 확장되는데, 이 전장에서 미국은 중국의 국민당, 공산당과 협력하게 된다. 그러나 종전 후 중국에서는 공산당과 국민당의 내전이 진행됐고, 그 결과 대만해협을 마주보고 분단된다. 신해혁명으로 1912년 난징에서 건국된 중화민국은 대만으로 이전하고, 중국본토에는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이 건립된다. 사회주의 중국은 건국 후 바로 한국전쟁, 그리고 문화혁명시기 월남에서 미국과 직간접적으로 전쟁을 치른다.
데탕트 시기인 1960년대 초 미국, 영국, 소련은 중국 핵실험 반대를 목적으로 3자 간 조약을 체결하고, 1964년 중국의 핵실험 직전 중국이 핵개발을 계속할 경우 신장위구르 지역의 핵개발 장소는 물론 베이징에 대한 공중폭격도 불사하겠다는 전쟁위협과 ‘3차 세계대전’ 발발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그러나 중국은 1964년 10월 원폭실험에 성공한 데 이어, 1967년에는 수소폭탄을, 1970년에는 인공위성 발사까지 성공시킨다.
김진호 단국대 교수·국제관계학 |
2011년 초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주장한 ‘미국의 태평양시대’라는 선언은 중국의 부상에 대한 견제로 미국은 미·일, 한·미 등 각종 외교동맹을 강화하고 있다. 이에 중국도 아시아에서 미국과 힘겨루기에 나서며 견제와 타협의 이중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일본에 대해서는 중국역사의 경험에 비쳐진 ‘8년항전’의 연장선에서 압박을 가하고 있다.
한·중관계 발전에 중·일, 중·미관계가 중요한 작용을 한다는 점에서 2015년을 더욱 주목하게 된다.
김진호 단국대 교수·국제관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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