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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선(禪)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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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1-22 18:03:42 수정 : 2015-01-22 18:5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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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대승사 묘적암과 윤필암 겨울 풍경
성철·청담 스님 등 현대 불교계 거목들 마음 닦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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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 고즈넉하고 평화스런 정취를 찾는다면 깊은 산속의 암자를 빼놓을 수 없겠다. 아름다운 풍경만 놓고 보면 가을이 낫겠지만, 고요하고 청명한 분위기는 겨울을 따라올 수 없다. 흰 눈에 덮여 정적이 흐르는 암자는 그 안에 드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호수처럼 잔잔하게 만들어 주는 묘한 매력이 있다.

백두대간의 중심을 자처할 정도로 험준한 산이 많은 경북 문경 땅에는 예로부터 깊은 내력을 지닌 산사도 많았다. 산북면 전두리 사불산(912m)의 대승사와 그 산내 암자는 한겨울 고즈넉한 산사의 정취를 느끼기에 그만인 곳이다. 새재 도립공원과 온천, 진남교반 등 제법 알려진 여행지가 적지 않은 문경이지만, 대승사는 외지 사람 발길이 뚝 끊긴 깊은 산골에 자리하고 있다. 주변에 마땅한 숙소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간단히 요기할 식당도 한참 차를 몰고 나와야 찾을 수 있는 산간 벽지다. 깨달음을 구하던 고승이 유난히 이곳에서 많이 배출된 것도 이같이 번잡한 세상과 멀찍이 떨어져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절집은 고려 말 나옹화상의 자취가 서려 있고, 성철·청담·서암·자운·월산·금월 등 한국 불교의 거목들도 마음을 닦은 곳이다.

사불바위에서 내려다본 윤필암. 건너편 봉우리 어깨쯤에 묘적암이 앉아 있다.
대승사에는 정취가 빼어난 산내 암자가 여럿인데, 그중에서도 으뜸은 묘적암과 윤필암이다. 묘적암과 윤필암은 손쉽게 차로 올라가 닿을 수 있다. 산 아래서 대승사로 이어지는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윤필암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묘적암은 윤필암에 차를 세워놓고 다시 500m 산길을 걸어 올라가면 된다.

그러나 이렇게 차를 타고 두 암자에 닿으면 이 도량에서 맛볼 수 있는 감흥의 절반을 놓치게 된다. 대승사까지 올라가 차를 세우고 사불산 허리를 돌아가는 산길을 걸어 윤필암에 닿아야 한다. 대승사 접견실 옆으로 난 길이 1㎞의 산길은 운치가 넘친다. 눈 덮인 산길을 600m쯤 걸어가자 윤필암과 사불(四佛)바위의 갈림길이 나온다. 여기서 가파른 산길을 400m쯤 올라가야 하지만, 사불바위는 꼭 봐야 한다. 

대승사에서 묘적암으로 가는 산길 중간에 자리한 사불바위. 지금은 거의 닳아 없어진 마애불이 4개 면에 새겨진 바위로, 그 옆에 서면 백두대간의 연봉들이 물결치는 시원한 조망이 펼쳐진다.
이 암자들을 품은 사불산이라는 이름은 산 중턱 거대한 암반 위에 서 있는 사불바위에서 유래했다. 지금은 거의 닳아 없어진 마애불이 4개 면에 새겨진 바위다. 대승사 창건설화도 이 사불바위에서 유래했다. 삼국유사는 ‘붉은 천에 싸인 바위덩어리가 하늘에서 떨어졌고, 그 네 면에 불상이 새겨져 있었다. 신라 진평왕이 몸소 찾아와 예를 올리고 대승사를 창건했다’고 적고 있다.

사불바위 옆에 서면 거칠 것 없는 조망이 펼쳐진다. 이곳까지 뻗어있는 소백의 연봉들이 굽이쳐 흐른다. 발아래로는 윤필암 법당들이 가지런히 서 있고, 맞은편 산자락 8부 능선쯤에 손바닥만 한 묘적암이 그림처럼 들어서 있다.

대승사의 여러 암자 중에서도 가장 정취가 빼어난 묘적암.
윤필암은 수덕사 견성암, 오대산 지장암과 함께 3대 비구니 선원으로 불린다. 비구니 참선 도량답게 정갈하고 단아한 기품이 흐르는 암자다. 윤필암의 사불암 안에는 불상이 없다. 대신 전면의 커다란 유리창을 통해 눈에 들어오는 사불바위가 부처님을 대신하고 있다.

경북 문경 사불산 대승사의 산내 암자인 묘적암과 윤필암 사이에는 유려한 곡선을 그리는 돌계단이 놓여 있다. 이 돌계단은 겨울철이면 하얀 눈으로 덮여 한층 더 그윽한 정취를 자아낸다.
사불전을 돌아가는 산길을 따라 다시 묘적암으로 오른다. 사불전이 들어선 암봉을 다 돌아서자, 오른쪽으로 돌계단이 놓여 있다. 이 돌계단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는 데다 하얀 눈까지 뒤덮여 여간 아름다운 게 아니다. 돌계단을 다 오르면 6m높이의 거대한 마애불과 마주하게 된다. 이즈음 저녁 해는 정확히 가부좌를 튼 마애불 얼굴을 비춘다. 그래서 해질녘이면 마애불의 얼굴이 유난히 온화해 보인다. 

돌계단 위에 자리한 거대한 마애불.
묘적암은 약 1500년의 내력을 지닌 암자로, 나옹화상이 출가한 곳이다. 손바닥만 한 암자는 흙담에 소박한 대문을 달고 있지만, 절로 옷깃을 여미게 할 정도로 묵직한 기운이 감돈다. 암자를 홀로 지키는 동참스님에게 차 한 잔을 얻어 마시고 묘적암 툇마루에 앉자, 맞은편 봉우리의 사불바위가 정면으로 올려다보인다. 툇마루에는 ‘일묵여뢰(一默如雷)’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유마경에 나오는 말로 ‘한 번의 침묵이 곧 우뢰와 같다’는 뜻이다. 마음의 평화를 위해 찾은 고요한 산중 암자에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말도 없을 듯싶다.

문경=글·사진 박창억 기자 danie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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